딸이 좋아하는 것 18

18. 씽씽이

by Defie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과 의견대립이 이루어질 때가 있다.

대부분은 '아이가 좋아하는 데 왜?' vs '나중에 안좋은 습관이 들어' 의 충돌일 경우가 많은데

누구의 말이 정답이랄 것도 없이 '우선 해줘보자'와 '좀 있다가 해'의 반복이 이루어진다.

둘 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처음이고, 이 아이도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


그러나, 한가지에 관해서는 남편과 의견이 일치되는 부분이 있는데,

'갖고 싶어하는 것을 다 사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돈'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라는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저 '돈을 벌어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좋겠다'하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물건을 가지지 못해서 좌절하는 마음보다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을 때 만족감과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사고 싶은 마음 또한 생기지 않기 마련, 마트의 장난감코너는 일부러라도 들르지 않았고 더 어렸을 때에는 장난감 대여점에서 2주에 한번씩 새로운 장난감을 빌려오는 것으로 물건의 갯수를 조절했었다.

아이는 다행히 큰 저항없이 자랐고, 무언가를 사달라며 누워서 떼를 쓰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떼를 써도 안되는 건 안돼"

라고 엄마 아빠가 말 할 것을 아니까-


그런 아이에게 자전거 다음으로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 생겼다.

자전거보다 기동성이 좋고,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모두 가지고 다니는 바로 그것!

씽씽이다. 뛰어가도 잡을 수 없는 재빠른 아이들의 '자가용' 같은 것

놀이터에 갈 때마다 아이는 누군가의 씽씽이를 궁금해했고, 슬쩍 만져보기도 했었다.

'친구들이랑 놀려면 씽씽이가 필요하려나...'

주말에만 겨우 놀이터에 동석하는 나의 눈에도 '씽씽이'가 자꾸만 밟혔다.


그리고 어느날,

아이의 결정적인 말 한마디-


엄마, 친구들은 모두 다 씽씽이가 있는데,
나만 없어요.
씽씽이 사고 싶어요.



5세의 아이는 나름 자신이 생각하는 정당한 이유를 들어서 '씽씽이를 사야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갖고 싶어요'라는 말보다 내 아이가 '무언가가 없어서' 결여를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에 마음 한 구석이 조금 추워졌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사줘야 하는 것 아닐까?

아마 드러누워서서 떼를 썼거나, 잔머리를 굴렸거나 했다면 달랐겠지만,

'내 아이가 저것 때문에 소외감이나 열등감을 느낀다면, 저 정도는 사줘야하지 않을까' 까지 생각이 미쳤다.


아이의 '말 한마디'가 부모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건 왠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마침 예방접종을 해야하는 날이라 주사를 잘 맞추고, '주사를 잘 맞은 기념선물'이라는 이유를 달아 아이를 장난감 가게로 데려갔다. 핑크색, 그리고 달리면 불이 번쩍번쩍 보이는 씽씽이가 아이 것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씽씽이를 조립해주자마자 아이는 동네 놀이터 순례를 시작했다. 토요일 오전이라 놀이터에 친구들이 없는데도, 그저 씽씽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한 듯 놀이터까지 씽씽이를 타고가서 잘 세워둔 후 놀이기구를 몇개 타고 다시 씽씽이를 타고 다른 놀이터로 향했다.

지난 번 자전거와 마찬가지로 "엄마, 만지면 안돼! 잘 지켜보고 있어!" 라는 말을 연신 해대면서...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넘어지지나 않을까, '무릎보호대랑 헬맷도 사야 되는데...'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근 1시간을 씽씽이와 함께 보냈고, 저녁에도 1시간을 보냈고, 다음날 일요일에도 오전 오후를 함께 보냈다.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진작 사줄껄...' 살짝 후회가 되긴 했으나 '지금이라도 사준게 다행이지'라는 만족감이 그 기분을 덮어줬다.


주말을 씽씽이와 함께 보낸후 첫 등원길, 아이는 걸어서 5분도 채 안되는 거리에 있는 어린이집까지 씽씽이를 대동하고 나섰다. 남편이 보내준 영상에 그새 능숙하게 '씽씽이'를 타는 아이의 모습이 담겨있어 깜짝 놀랐다.



대수롭지 않은 일임에도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잘 타는 모습을 보니 부모로써 대견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

아이가 부모의 예상과 상상을 뛰어넘는 시기가 이제 온 것일까?

혹 기대를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져버리는 때가 오면 어쩌지?

희망과 기대가 큰 만큼,

혹시 다른 감정이 느껴지는 순간이 올까봐 조금 걱정이 됐다.


아이는 언젠가 자라 '자신만의 생각'을 가진 독립적인 삶을 살 테고, 그 삶은 분명히 부모가 바라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켠은 서늘하고 슬퍼지겠지...


에잇,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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