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좋아하는 것 19

19. 1등

by Defie

굳이 어렸을 적부터 경쟁하지 않아도, 언젠가 경쟁을 하게되고 그 우열로 무언가들이 결정된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굳이 아이게게 '경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하지 말아야지, 라는 기본 신조? 같은게 있어서 아이에게 '이겨야지!'라던지 '1등이 최고야!'라는 이야기를 한 적은 없던 것 같은데, 아이는 언젠가부터 '1등'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칭찬받는 것 또한 좋아하는 아이라서 그런것인지, 1등= 이긴다=칭찬받는 것과 같다 이런식의 공식이 나름 이어지고 있는 듯 한데, 그게 어느순간 '좋아하는 것'을 넘어섰다.

아빠와의 가위바위보에서도, 사촌언니들과의 간단한 게임에서도 '1등'을 하지 않으면 마음을 상해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기 때문-

"져도 괜찮아. 다음에 이기면 되잖아" "1등하는 사람도 있고 2등하는 사람도 있는거야" 라고 타일러도, 다시 게임이든 가위바위보든 해서 '이기는 상황'이 올때 까지 토라져 있을 때도 있고, 입을 삐죽 내밀고 있을 때도 있다. 최근에는 울상을 하고 자기방에 들어가 버리기 일쑤-

형제 자매가 있어서 은연중 경쟁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1등이 좋아, 지는 건 나쁜거야"라고 가르친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1등을 좋아하지?" 고개를 갸우뚱 할때, 남편이 이야기했다.

"너 닮아서 그래"

"왜 이래- 오빠도 지는거 싫어하잖아"

"그치"


.... (잠시 각자의 성격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그렇다는 걸 인정하는 침묵)...


아이가 좋아하는 1등은 나와 남편에게서 고스란히 흐르고 있는, '지기 싫어하는 성격' 안에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굳이 '1등이 되어야 해'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도 무언가 잘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조금 더 잘해서 칭찬받고 싶어하는 기질이, 은연중에 나와 남편의 어딘가에서 아이에게로 전달된 것은 아닐지, 추측을 한다.


어제 아이와 카드 뒤집기 놀이를 했다. 원숭이들이 다양하고 귀여운 포즈로 4개씩 짝을 이루는 카드- 모두 보이지 않는 면으로 뒤집어두고, 두장씩 뒤집어서 짝을 맞추는 사람이 승리다. 보통은 아이보다 엄마 아빠가 이겨왔느데, 너무 방심한건지 밤이라 이미 방전된 나이든 엄마아빠의 뇌가 따라갈 수 없는지- 3 게임 연속 아이의 승리!

아이는 말해준다. "내가 1등! 그런데 엄마, 꼴등도 괜찮아"

아이가 1등을 못해서 입이 나와있을 때마다 엄마 아빠가 해줬던 말을 아이가 다시 똑같이 말해준다.

"그래, 잘했어^^ 다음에는 엄마가 이길께"

"싫어, 다음에도 내가 이길거야"

"그래, 그러면 다음에도 oo가 이겨^^"

그렇게 '아 이제 아이도 위로를 해줄 수 있게 되었구나-'라고 나름 훈훈한 에피소드로 마무리 하려고 했으나...

여기까지 쓰고 난 다음날, 오늘의 카드 뒤집기 놀이-

"카드 그림 안보이게 뒤집어서 하나씩 펼쳐놓아봐"라고 말하고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아이가 카드를 뒤집어 놓으면서 흘낏 안을 들여다보는 것을 발견했다.

"잠깐, 멈춰봐, 지금 카드 어떤 건지 먼저 본거야?"

"아니야..."라고 말하지만 아이 눈에는 '들켰다'라는 불안한 눈빛이 번진다

"oo야, 이기고 싶어서 그랬어?"

"응"

이걸 어떻게 타일러줘야하지? 정정당당하게, 공정하게 라는 말을 쓰고 싶지만....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

"서로 안 보고 해야지 올바른 게임이잖아. 엄마도 그럼 oo가 본만큼 볼거야. 뭔지 알려줘"

"싫어"

"...그러면 엄마는 안할래"

뭔가 잔뜩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챈 아이는 이제 떼를 쓰기 시작한다.

"할거야, 할거야, 할거야..."

"그래도 소용없어. 서로 똑같이 보고, 똑같이 안보고 해야 1등이 되도 기쁜거야. oo는 엄마가 몰래보고 이기면 기분 좋겠어?"

...

1등이 아무리 좋아도 편법을 써서는 안되며, 그렇게 이겨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닐것이고, 본인이 속임수로 졌다면 기분이 어떨 것인지... 5살 아이의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어렵다.

그렇지만 부모가 갈팡질팡 하지 않고 단호해야 한다는데... (라고 속으로 되뇌이면서 '아이가 고집을 꺾지 않으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함께 이어졌다)

"몇개나 봤어? 솔직하게 말해봐." (자.. 기다리자.. 기다리자....)

"다...."

"다 봤어?" (뭐지 이 제대로된 대놓고 커닝은...? 어이없는 웃음이 피식 나온다..--; 아 웃으면 안되지...)


아.. 그래서 아이가 뭘 봤는지 콕 찝어서 못했구나,...

엄마들을 위한 책에서 나온 공식같은건 머릿속에 하나도 안 떠오른다. 그저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이해하고, 스스로 바로잡기 위해 어떤 대화를 해야할지만..생각한다.. (생각해! 엄마!)

"그러면, 이제 어떡할까? 엄마도 다 볼까? 아니면 다시 섞을까? 그렇지 않으면 엄마는 oo랑 같이 놀 수가 없어."

...

"다시 섞을까..."

아이가 주저주저 대답한 후 울먹이면서 품에 안겼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엄마가 다시 섞을게"

"네..." 아이는 잘못한 순간 존댓말 모드로 바뀐다.

그렇게 시작된 원숭이 짝 맞추기 게임은 첫번째는 일부러 아이의 승리로, 두번째는 분발한 엄마와의 동점 게임으로 끝났다. 이 경우는 '둘 다 이겼다'로 정리해주면 된다.

"봐, 미리 보지 않아도 이길 수 있잖아. 기분 좋지?"

"응"


그러는 사이 아빠가 집에 도착했다.

1등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 까지는 아직 알 수 있는 나이가 아니겠지만

경쟁이든 시험이든 무언가를 할 때에는 '평등한 기회'속에서 해야하고,

그 결과가 굳이 1등이 아니어도 '최선을 다했다면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욕심이 많이 컸고, '이왕 하려면 잘해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굳이 주위에서 채찍질을 안해도 알아서 채찍을 휘두르면서 살아왔다고 해야하려나? 아이가 뱃속에 있을 무렵,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장래 이야기를 하면서, "공부? 이왕하는건데 잘 해야지?" 라는 말에 남편이 깜짝 놀라했었다.

"못할 수도 있어. 잘 하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면 아이를 몰아세울 수도 있잖아" 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아이는 나와 다르다. 그러면서도 은연중에 부모의 성격을 물려받았고, 부모의 말과 생각에 영향을 받는다.

입으로는 "1등 아니어도 괜찮아", "조금 못 해도 괜찮아" 라고 말하면서 혹 내가 온 몸으로, '잘해야돼. 잘 하는게 좋은 거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아이가 엄마의 말과 생각 사이의 커다란 틈을 느끼고 혼란스러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많은 고민이 드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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