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에 간다
010. 뭘 위해 일하는 걸까?
프리랜서인 남편은 자가격리가 풀리자 마자 예정되어있던 일을 하러 일찍 나갔고
아이와 둘이 아침을 맞이했다.
나 또한 9시부터는 근무를 시작해야하니, 서둘러 아이 아침을 챙겨주면서 밥먹고 나서 이걸하고, 그 다음은 이걸하고... (그래봤자 전부 놀 거리들일 테지만) 설명이 길어진다.
아이는 '일을 하러 서재에 가는' 엄마의 모습이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한 터라 건성으로 "응" "응"을 연발했다.
9시, 업무 시작- 그나마 어제는 남편이 같이 있어서 아이랑 뭐라도 하겠지 싶었는데,
많이 낫기는 했지만 아직 아픈 아이니, 신경이 안 쓰인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다.
라고 생각하기도 잠시... 자가격리중에도 일을 해야하는 회사 속 나의 상황도 만만치 않아서, 어느 순간 거실의 풍경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11시 30분-
점심을 제대로 챙겨줄 수 없다면 뭐라도 미리 시켜야 한다- 소박한 아이의 주문을 받아, 배달 어플을 꺼내 순식간에 준비를 완료했다. 다행히 늦게 주문한 것 치고는 점심시간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
아이와 열심히 봉지를 풀어서 점심을 먹었다.
아이메뉴와 내가 먹고싶은 메뉴 두가지를 골랐는데, 아이가 시킨 음식을 함께 해치우는 것으로도 이미 점심식사 완료- 왜 나는 국수를 시킨것일까... 잠시 후회했다. 나중에 불어터진 면을 먹어야겠지만 일단 냉장고로 봉인- 그러고보니 아침 식사 후에 약을 안 먹였네...
나는 후다닥 먹어버리지만 아이의 식사시간은 나보다 길어서, "입에 있는 거 다 먹고 약먹자" 라고 말했었는데 잊은 듯-
점심시간은 끝나가지만 아이의 식사시간은 끝나지 않아, 이번에도 약을 먹는 것으로 마무리는 어렵다. 그렇지만 서재에 들어가는 순간 다시 잊어버릴 수도 있으니, 아이 약 하나를 가져와 모니터 앞에 놓아두고 아이에게 한 번 더 당부를 했다. "엄마가 약 하나 가져가니까 이따가 와서 먹자" "응"
업무 시작- 그리고 30분 뒤, 모니터 앞의 약을 발견하고 잠시 화상회의 노트북 마이크를 끈 채 아이 소환, 점심약 먹이기는 성공했다.
업무는 정리를 하거나, 메일을 쓰거나, 회의를 하는 것이 대부분- 아이는 엄마를 방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어지간해서는 서재에 오지 않는데, 특히나 화상회의를 하느라 이어폰을 끼고 있을 때에는 저 문 앞에서 엄마의 눈치를 살핀다. 고마우면서도 미안하면서도..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하지만, 재택근무와 아이케어의 병행은 '배려'일 뿐 '권리'는 아니기때문에 (누구나 다 아이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어떤 식으로든 아이의 존재가, 케어가 업무에 지장을 주는 범주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재택근무에도 친정엄마가 저녁에 아이를 돌봐주시는 건 같았다.
오후 4시- 이리저리 지쳐갈 무렵, 물을 마시러 거실에 나왔더니, 피곤함이 가득한 멍한 눈으로 아이가 TV를 보고 있었다. 밖에서 한참 뛰어놀아도 모자를 낮시간에 옆에 있어도 있는것 같지 않은 엄마를 벽 하나 사이에 두고, 아이는 혼자 TV, 코로나, 그리고 떨어지는 약기운에 방치되어 있었다.
물이고 뭐고, 아이의 머리를 만져보니 살짝 뜨끈한게 열도 있는 것 같아, 아이를 꼭 껴안아 방에 데려가 눕혔다. 담배를 피우는 것도 근무 중에 커피를 마시는 사람도 아니라서, 한 번 자리에 앉으면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내리 일만 하는 편이니, 이정도는 괜찮은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했다. 아이는 내 옆에서 10분도 안되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 전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무 바빠서 입학식을 가지 못했다.고 하소연했을 때
친구는 이렇게 답했었다.
"뭐 때문에 일하는 건데?"
"..."
머릿속에서 그 말이 계속 소용돌이쳤다.
아이가 잠든 뒤 한시간 반 남짓- 서재에 앉아 소리를 질러 아이를 깨웠지만 일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이 옆에 휴대폰으로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어준 뒤 다시 서재로 돌아왔다. 노래가 자연스럽게 넘어가지 못하는 걸 보니, 일어났구나... 짐작하면서 다시 일을 지속했다.
퇴근시간은 지났지만, 정리할 것은 아직 남아있다. 그렇다고 아픈 아이 식사를 거를 수는 없으니 (아 그렇다... 나도 아직 환자다...) 일단 7시에 업무를 일단락 짓고 거실로 나왔다.
"배고파?" "아니 아직"
자고 일어나서 조금 더 쌩쌩해진 아이가 TV에 푹빠져 이야기한다.
"엄마가 고등어구워줄게" "응"
아이가 좋아하는 콩을 가득 넣어 밥을 새로 하고, 에어프라이어에 고등어를 굽는다.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이 머릿속에 잔뜩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열심히 해도 도무지 안되는 여러가지 사정들... 누군가들에 대한 원망이 지나간 뒤에는 자기혐오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뭘 위해 일하고 있니?'
라는 친구의 타박섞인 물음이 낙인처럼 박혀있다.
빨리 이 상황을 마무리 해야하는데...
그래도 도망치지 않고 잘 마무리 하고 싶은데...
일에서 책임을 진다는 것, 집에서 책임을 진다는 것-
왜 그 두가지 책임이 양립이 아닌 대립하고 있는 것인지...
가족에게 더 나은 무언가를 해주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것인데,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 고민을 하면서도
'오늘 못 끝낸 일은 이따가 아이 재우고 10시 부터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나를
나도 어찌해야할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