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편백나무액을 이제쓴다
3년전, 이사한 이 집은 새로 지은 아파트다. 아이는 5살- 새집 증후군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익히들어왔던 터라 인위적이지 않은 살균제를 찾고 있다가 골랐던 게 편백나무에서 추출했다는 피톤치드 액이었다. 농약 살포에 쓰임직한 자동 살포기가 같이 딸려와서 온 집에 열심히 뿌려두었었는데, 그 덕?인지 새집냄새나 새집증후군 관련 증상? 1도 없이 두 해를 보냈다. 열심히 깔끔은 떨지만, '적당한'수준이라 몸이 알아서 적응해왔는지도 모르겠다.
단점이라면 그때 사둔 편백수가 무려 10L라는것- 1/3도 채 쓰지않고 아이가 8살이 되는 지금까지 저 한켠에 고이 자리잡고 있었다. 한 동안은 '몇 개월 간격으로 한번씩 써야겠다' '필요한 지인에게 나눠줘야겠다' 생각이 있었으나, 눈 앞에 보이지 않으니 머릿속에서도 사라져버려 그 존재 자채를 잊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온 가족에게 코로나가 왔다가 지나가는 즈음이 되고나니 집을 다시 한번 '정화'시켜야 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역시나 돈되는 일에는 유행이 빠른지, 코로나를 즉시 박멸!해주는 '소독'업체는 이미 인터넷에 성행 중- 10만원 내외의 금액이니 괜찮지 않나? 생각했었지만 '그냥 대 청소겸 우리끼리 하자'는 남편의 말에 브레이크가 걸렸고, 그 때 머릿속 저 끝에서 '우리집에 무언가가 있어'라는 작은 소리를 캐치했다.
방치되어있던 '편백수- 피톤치드'의 효능을 일단 검색! 코로나 어쩌고에 잘도 걸리는 걸 보니, 괜찮은 것 같다. 여기에 애저녁에 고장나서 사라진 자동 살포기를 대신할 안개형 분무기 구입- 빨리 사고 싶어서 쿠팡에서 골랐는데, 스마트 스토어에서 다시 보니 1/3가격이다.--; 또 스몰 호구짓을.... 오프라인으로 빨리 사 온 것이라 생각하자며 셀프 합리화를 좀 해준 뒤,
아침부터 천천히 편백나무액을 뿌려대고, 닦아대기 시작했다. 일단 문 손잡이부터 전구 스위치, 주방...
칙칙 뿌려대는 게 재밌어 보이는 지 아이가 '나도 하고 싶다'고 졸라서 쇼파에 뿌리는 걸 시켰더니 신나서 뿌려댔다.
아이의 학교가방에도, 신발주머니에도 살포 완료.
자가격리가 이제 삼일정도 남았고, 아이는 신나서 학교에 갈 터인데, 혹시나 아이 반의 아이들이 '코로나 걸렸던 아이'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던 아이'로 갈리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이 조금 있다. 2년도 넘게 아이들은 '코로나는 진짜 무서운 병이라 마스크를 꼭 써야해'라고 배워왔는데, 요 근래 '걸려도 심각한 병은 아니야,누구나 걸릴 수 있어, 집에서 치료해도 돼.'라는 인식으로의 전환이 금방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남편을 보고 기겁했듯이,...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반에 코로나를 앓았던 아이들이 최소 10명은 되는 것 같고 아이와 어린이집 때부터 친했던 아이가 먼저 앓았던 터라 왕따? 수준일 것 같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해맑음은 때때로는 잔인함으로 돌아올 때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는 있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와 코로나가 빨리 멀어지도록 하는데 뭐라도 해야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이 행동으로 잘 이어지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PCR검사하러 갔을 때 지었던 약이 다 떨어져서 전화상담으로 약을 추가 처방받았다. 자가격리기간 3일분 밖에 처방이 어렵다는 말을 듣자 이제 얼마 안남았다는게 더욱 실감이 난다.
남편은 자가격리 완료 후 일을 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깨끗하게 몸이 다 낫지 는 않았는지 기침과 소화불량 증세가 있다. 나도 아직은 깨끗한 느낌은 아니고, 아이도 미열이 가끔 고객를 든다.
분무기를 칙칙 뿌려대면서 '얼른 말끔히 나쁜 균이 사라지기'를 기원한다.
일주일째 나가지 못한 바깥세상은 정말 따뜻해졌다고 남편이 전해줬다.
창 밖으로 내리는 봄비를 보면서 우리에게도 봄이 오고 있다고 희망을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