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1996)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이 천국이라면. 결국 인생의 종착역이 천국이라면. 벌써부터 벗어날 수 없는 종착지 같은 도시에 온 사람들은 이미 천국에 다다른 것 아닐까? 천국을 한 조각이라도 움켜쥐려는 이들은 모두 고국을 떠나올 수밖에 없다.
천국에도 비자가 있나 궁금해진다. 천국에는 원주민이 없을 것이다. 천국은 태어나는 곳이 아니라 모두가 가는 곳이니까. 고로 천국은 이민자들의 도시다.
그렇다면 '엔타운'도 천국이 될 수 있을까.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의 '엔타운(円都)'이라는 돈이 최고의 가치이자 성공이 되는 곳이다. 그곳으로 흘러든 이들에게는 비자가 없다. 떠날 돈도, 머무를 권리도, 일할 자격도 없다. 천국이 인생의 종착지라면, 그들은 천국에 갇힌 사람들이다. 엔타운은 천국처럼 그렇게 이민자들로 불어난다. 심지어 엔타운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비자 없이 태어날 권리가 없던 그들은 영원한 외국인이다.
엔타운에서 태어난 이름 없는 소녀가 어머니의 시신 옆에 서 있는 시퀀스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녀는 영안실에서 죽은 어머니의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폭탄 돌리기처럼 맡겨진다. 엔타운은 그런 곳이다. 골드러시의 꿈으로 부풀어 있으나 그것은 아주 소수의 것이고 장례조차 치르기 어려운 곳. 거기서 태어난 아이 하나 키우기 어렵고, 티켓값이 없어서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곳.
그 소녀는 돌고 돌다, 상하이 출신의 매춘으로 돈을 버는 '그리코'에게 맡겨지게 된다. 그리코에겐 가슴 사이의 나비 문신이 있다. 그 나비의 이름은 '아게하'. 비자도 신원도 없는 엔타운에서 자신의 ID를 몸에 새긴 것이라 한다. 그녀는 소녀에게 애벌레를 그려주며 '아게하'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푸른 하늘'이라는 고물상 겸 카센터. 여기에 그리코의 친구들인 '페이홍'과 '란'이 있다. 그들 역시 이민자다. 약간의 사기를 겸해 돈을 벌며, 저녁에는 그리코의 노래에 작은 파티를 벌이며 산다. 아게하는 이런 이들의 일상에 스며든다. 그리코의 손님이 죽는 불상사가 일어나기 전까지.
그리코의 손님으로 왔으나 아게하를 범하려고 했던 야쿠자는 옆집의 사는 전직 복서의 주먹을 맞고 유리창 밖으로 튕겨져 나가 죽게 된다. 이 시신을 모두가 함께 묻게 되고, 그 시신 안에서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한다. 그 테이프를 재생하자 나온 것은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 테이프의 노래를 그렇게 흥얼거리며 그들은 '푸른 하늘'로 돌아온다.
문제는 이 테이프는 '류 랑키'라는 위험한 엔타운의 지하 세계 지배자가 찾고 있는 물건이었다. 거기엔 위조지폐를 만들 수 있는 마그네틱 코드가 심겨 있었다. 이를 알게 된 그리코와 친구들은 그 위조지폐로 돈을 벌며 '푸른 하늘'을 떠나 번화가로 나간다.
돈이 생기면 꿈을 펼치고 싶어진다. 페이홍에겐 꿈이 있었다. 그리코가 마음껏 노래할 수 있게 하는 꿈.
그래서 그들은 위조지폐로 번 돈으로 라이브 클럽을 차린다. 그리코의 노래에 음반 회사 사람들이 와서 계약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회사의 계략으로 페이홍이 감옥에 들어가며, 그와 그리코는 이별하게 된다.
위조지폐가 돌아다니니 경찰도, 류 랑키의 부하들도, 그들을 잡기 위해 도시에 깔린다. 그리코와 아게하는 이런 위협에 결국 '푸른 하늘'로 돌아오고, 페이홍은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간다. 돈이면 뭐든 다 되는 도시에서도, 돈으로 죽은 사람은 돌아오게 할 수는 없었다.
이 과정을 다 지켜보던 아게하는 성장한다. 엔타운에서 태어난 이름 없는 소녀는 이제 또래 사이에서 보스라 불릴만큼 강단 있는 모습으로 컸다. 아게하는 자신에게도 나비 문신을 새긴다. 아게하에게도 '아게하'가,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가 새겨진다. 애벌레는 성장이란 고치를 뚫고 나와 나비가 된다.
"사람들이 마지막에 가는 곳이 천국이라면 여기가 천국인가?" 페이홍은 아게하에게 혼잣말처럼 묻는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의 인물들은 꿈을 향해 질주한다. 그 꿈은 말만 거창하고 실로 소박하다. 그들이 도착한 곳이 종착지여도 그들은 계속 꿈꿀 수밖에 없다. 그곳은 자신들이 계속 살아가야 할, 만들어내야 할 천국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주민이자 그곳의 정체성이다. 차도하 시인의 시, <입국 심사>에는 극 중 인물들이 사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입국 심사
천국은 외국이다. 어쨌든 모국은 아니다. 모국은 우리나라도 한국도 아니다. 천국에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입국할 때 모든 엄마를 버려야 한다. 모국을, 모국어를. 모음과 자음을 발음하는 법을. 맘-마음- 맘마를. 먹으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밥그릇을. 태어나고 길러진 모든 습관을.
살아가며 했던 모든 말이 적힌 책을 찢어 파쇄기에 넣는다. 나풀나풀 얇은 가루가 된 종이를 뭉쳐 날개를 만든다. 날개를 달면 거기 적혔던 모든 말을 잊어버린다.
날고 싶은 방향으로 날아간다.
그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된 사람들은 천사를 보았다 말하겠지만
천국의 주민들은 천사라는 단어를 모른다.
그것은 깃털의 일부가 되었을 따름이고 다른 단어와 같은 무게를 지녔다.
때로는 아무것도 버릴 게 없는 경우도 있다. 가진 게 없거나 이미 버리고 온 사람들.
울지 않는 아기, 비쩍 마른 노인. 머리가 산발이 된 여자.
버릴 게 생기면 다시 오세요.
천국은 그들의 머리를 떼어 지상으로 힘껏 던진다.
비가 오려나.
어떤 사람이 물방울을 맞았다.
그날 비는 오지 않는다.
그래서 한 사람이 다시 태어난다.
물방울을 맞은 사람이 낳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천국에 갈 것이고 이 시도 파쇄기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시를 쓸 것이다.
많이 쓸 것이다.
오늘의 구름은 양떼구름
외국에서는 물고기의 비늘이라고 부른다.
그래, 천국에서는 하늘과 초원과 바다가 섞여 있지만
그래도 양과 물고기는 있다.
양몰이 개와 그물은 없다.
모국어를 버리고 타국 땅에서 나풀거리는 사람들, 천국에서도 거절당하는 사람들. 그리고 모국어가 외국어인 아이들. '그러나 시를 쓸 것이다'라는 시구처럼 그러나 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살아갈 것이다. 하늘과 초원과 바다가 다 섞인 세계를. 그들의 방식대로.
시나트라의 곡, 'My way'의 가사, "I did it my way"를 주인공들은 함께 열창한다. 영화 속 모든 이들은 자기의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온전히 이기적이지 않다. 자신의 길이 타인의 길과 같이 걷는 길이기에 그런듯하다. 자신을 위해서든 타인을 위해서든, "내 방식대로 했다"라고 허공을 향해 장렬히 날았다가 곤두박질도 친다. 그들의 사랑도, 꿈도, 우정도 영원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바로 그 순간의 아름다움은 그들을 날아오르게도 추락하게도 할 만큼 진실하다.
그 나비 같은 꿈은 다시금 날아오를 힘을 준다. 종착역이 천국이라면 그들은 이미 천국에 정착했고, 천국을 자신의 천국으로 가꾸어 나갈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내 방식대로 곤두박질쳐도, 그 자체로 천국이다. "이것은 엔타운의 엔타운 이야기다"라는 나레이션처럼, 그들의 삶은 꿈꾸는 한 계속 지속될 것이니까.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는 성장, 청춘, 사랑을 디아스포라와 디스토피아 속에서 풀어낸다. 디스토피아와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우중충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낭만도 천국도 발견할 수 있다. 아니, 만들 수 있다. "I did it my way." 나는 나의 길을 간 것이지만, 다른 사람의 길을 같이 개척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각자 원하는 삶이 있고 원하는 삶의 방향이 있다. 때로는 삶의 길이 겹치기도, 따로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서로의 결과를 사랑하고 수용할 것이다. 그게 바로 끝없이 천국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리라. 오늘도 그렇게 믿으며 타인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