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나무의 씨앗(2024)
세상 어느 곳이든 종교가 없는 곳은 없다. 세상의 신은 다양하며 종교도 다양하고 믿음도 다양하다. 무엇을 믿든 간에 사람은 (현세든 내세든) 어떤 종류의 번영과 구원을 바란다. 고로 믿는 자의 어떤 믿는 바가 무의미해지는 신앙에서 신성이란 믿는 자에게 무의미하다. 그 신성이 믿음을 실현시켜 주거나 구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보리수나무의 씨앗에 대한 경구로 시작한다. 보리수나무는 신성한 나무로 보리수 씨앗이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다. 이 보리수 씨앗은 다른 나무를 숙주 삼아 말려 죽이고 자신을 번성시킨다고 나온다. 영화에 대한 거대한 은유인 셈이다.
영화는 지금까지도 진행 중인 이란의 사회를 담고 있다. 2022년 9월,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쿠르드계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테헤란에서 히잡 규정 위반 혐의로 체포된 후 경찰 구금 중 사망했다. 이를 계기로 이란 사회는 시민 불복종 운동(히잡 강제법 반대 시위)이 크게 일어났다. 영화에 나오는 시위 장면은 모두 인스타나 유튜브 등에 올라온 실제 각 이란 시민들에 의해 현장에서 촬영된 영상이다.
영화는 이런 현실 속에서 남겨진 한 가정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런 가정이 실제로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수사판사가 된 '이만'은 이 가정의 아버지로 처음에는 죄가 명확하지도 않은 사람의 사형을 진행시키는 데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하지만 승진이라는 목표와 정부의 사상에 동화되어 탄압이 옳다고 지지하게 된다. 그의 아내이자 가정의 어머니인 '나즈메' 또한 가정의 사회적·경제적 안정을 위해 언론의 일방적인 보도를 믿으며 참상을 목도하면서도 거의 끝부분까지 아버지에 말에 순종하라고 딸들에게 강요한다. 그러나 현세대(Z세대)인 두 딸은 다르다.
두 딸 '레즈반'과 '사나'는 sns로 공유되는 시위의 현황과 도덕경찰들의 폭압과 폭력, 무분별하게 폭행당하고 체포당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도하고 분노한다. 점점 격화되는 시위 속에 레즈반의 친구가 무분별한 경찰의 폭력에 총상을 입고, 두 자매는 엄마에게 끊임없이 실상을 알리려 한다. 그러나 엄마는 섞이지 말고 모른 척하라며 아빠에게도 말하지 말라 주의를 준다.
그러나 억압 하나의 용인은 다른 억압으로 이어지는 연쇄작용일 뿐이다. 결국 직장에서 지급한 총을 집에서 잃어버린 이만은 직장 내의 입지와 승진,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편집증적 증세를 보이며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총을 훔쳐간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아내와 딸들을 심문관에게 심문을 받게 하고 외딴 고향집에 감금하고야 만다. 최종적으로 자신의 가정을 파국에 이르게 하고만 것이다.
한 가정의 이야기를 영화에선 담고 있지만 이는 이란 현 사회와 동시대 파시즘화 되어가는 사회에 대한 표상이기도 하다. 현재 사회에는 아버지 이만과 같이 가족의 안전을 지키려는 염려와 체제로 인한 죄책감 사이에서 점차 감시자이자 억압자로 변모해 버려 체제의 도구가 된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또한 두 자매 레즈반, 사나 같은 현세대도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거리의 현실을 목격하고,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 나의 일이라는 각성을 하는 사람들도.
이란의 신정일치 정부와 저항하는 세력은 아직도 대치 중이다. 신의 법을 어긴 게 국가에서 살해당할 이유가 되고, 기본적 인권의 박탈 사유가 된다는 것은 현 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아직도 가부장제가 지배적이고, 억압적 파시즘적인 체제는 세계 곳곳에서 시시각각 등장을 노리고 있는 게 현 국제 사회의 실정이다. 감독인 모하마드 라술로프는 영화 촬영 중이란 정부로부터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았고, 결국 망명을 택했다고 한다.
이란의 시위를 보며, 나희덕 시인이 쓴 <머리카락 깃발>이라는 시가 있다.
머리카락 깃발
깃발이 갈기갈기 찢어진 것은
바람 때문이 아니다
검은 머리카락을 모아 깃대에 묶고
그녀들은 외친다
더이상 때리지 말라고 죽이지 말라고
여자라는 이유로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목숨은 없다고
2022년 9월 13일 마흐사 아미니는 윤리 경찰에 의해 구금되었다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구타로 사흘 만에 사망한 그녀는 스물두 살
그녀들은 히잡을 불태우고
함께 걸어간다 머리카락 깃발을 들고
이것은 우리의 이름
이것은 우리의 얼굴
이것은 우리의 심장
머리카락은 얼마나 오래
히잡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던가
우리가 태어날 때
가장 먼저 자궁을 열고 나온 것이
머리카락이었던 것처럼
가장 슬플 때 바람에 나부끼는 것도 머리카락
더이상 찢어질 수도 없는 깃발은
허공에 펄럭이며 외친다
이 검은 심장을 이제는 가둘 수 없다고
이 영화에는 우리가 반드시 목격해야 할 영화라는 홍보 문구가 달려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이런 세상에서 눈을 돌리지 않아야 한다는 점 같다. 각 사람의 신앙과 상관없이 인류의 미래는 인류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인류사를 보면 평화만 존재하는 시기는 거의 없다. 항상 전쟁과 분쟁 중이고 투쟁이 있었다. 그로 인해 세상은 나쁘게 바뀌기도 좋게 나아지기도 했다. 보지 않고 시선을 돌린 채로, 덮어둔 채로 평화롭게 있는다는 것은 무관심하고 비-인간적인 일이지 않을까.
태어날 때도 가장 슬플 때도 먼저 나부끼는 머리카락, 더 이상 찢어질 수도 없는 그 머리카락이 깃발로 펄럭이는 광경을 우리는 과연 목격했는가. 목격했다면 우리들의 심장도 가둘 수 없다는 데에 동의하는가.
우리가 목격하지 못하고 지나친 일들은 또 무엇이 있을까. 모두가 목격하고 주목해서 결국 세상을 바꾸는 연대를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