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마작을 두면서도

마작 (1996)

by 명태

마작을 해본 적이 있는가? 마작은 중독성이 강한 게임이다.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의미를 예측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과 운과 실력의 경계가 모호해서 마작에 맛을 들이게 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둔다고 한다.


에드워드 양의 영화 <마작> 또한 이런 의미에서 제목으로 쓰여진 게 아닐까. 마작판 위의 심리 게임은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처럼 보인다. 서로 속고 속이며, 삶을 결정하듯 보이지만 그 결정이 반전되는 것은 '마작'과 같다.


삶을 마작이라 볼 때, 우리의 게임은 실상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과도기에 살고 있으니까. 세상은 끝없이 변하고 모든 선택이 늘 예상하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마작처럼.



"여긴 사랑하기 좋은 곳이 아니야."

20세기 말의 타이베이. 급속한 경제성장과 서양인들의 유입으로 혼란스러운 도시. 네 명의 청년 '홍어', '소부처', '홍콩', '룬룬'은 청년 갱단을 조직해 함께 살아간다.


막대한 빚을 남기고 잠적한 신흥 재벌의 아들인 홍어를 깡패들이 찾고 있지만, 홍어는 친구들과 자신의 사업을 하느라 바쁘다.



"사랑이 도대체 뭐가 중요한데? 감정이 없어야 돼. 감정은 피해자의 몫이야."

사업이라 함은 그저 사기와 협잡이다. 소부처는 바람잡이, 홍콩은 여자들과의 잠자리 담당, 룬룬은 운전과 통역을 하는 심부름꾼. 홍어는 자신의 아버지는 타이베이 제일의 사기꾼이라며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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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자신이 원하는 걸 몰라. 사람들은 옆에서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길 바란다고."

그러던 중 남자 친구를 찾아 타이베이에 왔다가 갈 곳을 잃은 프랑스 소녀 '마르트'가 이들의 삶에 끼어들게 된다. 마르트가 찾아온 남자는 이미 타이베이의 여성 '앨리슨'과 사귀는 중이었고, 이를 사업의 기회로 본 홍어는 홍콩에게 앨리슨과 사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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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에게 끌리는 룬룬은 그녀를 빼돌린다. 여전히 사기를 치면서도 아버지를 찾고 아버지의 복수를 노리는 홍어는 홍콩에게 또 다른 연상의 여자를 만나 자라고 강요한다. 홍콩은 결론적으로 자신이 앨리슨에게 한 짓의 역겨움을 깨닫고 토하며 오열한다.


룬룬을 홍어로 착각한 깡패들에게 마르트와 함께 납치된 룬룬. 세상 물정 모르는 줄 알았던 마르타는 총을 들어 깡패들을 역으로 협박할 줄 알았다.



아버지를 세상 제일 사기꾼으로 보고 자신도 그와 같이 되려고 했던 홍어는 아버지가 자살한 것을 발견하고 이 모든 협잡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무너진다. 소극적인 줄 알았던 룬룬은 마르타를 향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체면과 돈, 미신이 중요했던 이번 마작판은 '키스하면 재수없다'는 자신들만의 미신을 깨고 진정한 사랑만이 남는다.


모든 것이 반전된 데칼코마니처럼 전개되는 <마작>은 마작의 본질, "무슨 패를 갖느냐"가 아닌 "누구와 패를 나누는가"가 중요함을 역설한다. 모두 각자의 패를 감추고 심리 게임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듯. 영화 <마작> 속 관점은 심보선 시인의 시 <먼지 혹은 폐허>에서도 드러난다.


먼지 혹은 폐허

1
세상은 폐허의 가면을 쓰고 누워 있네. 그 아래는 폐허를 상상하는 심연. 심연에 가닿기 위해, 그대 기꺼이 심연이 되려 하는가. 허나, 명심하라. 그대가 세상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대를 상상한다네. 그대는 세상이 빚어낸 또 하나의 폐허, 또 하나의 가면, 지구적으로 보자면, 그대의 슬픔은 개인적 기후에 불과하다네. 그러니 심연을 닮으려는 불가능성보다는 차라리 심연의 주름과 울림과 빛깔을 닮은 가면의 가능성을 꿈꾸시게.

(중략)

8
내가 원한 것은 단 하나의 완벽한 사랑이었네. 완벽한 인간과 완벽한 경구 따위는 식후의 농담 한마디면 쉽사리 완성되었네. 나와 같은 범부에게도 사랑의 계시가 어느 날 임하여 시(詩)를 살게 하고 폐허를 꿈꾸게 하네.

(그대는 사랑을 수저처럼 입에 물고 살아가네. 시장하시거든, 어여, 나를 퍼먹으시게.)

한 생의 사랑을 나와 머문 그대, 이제 가네.
가는 그대, 다만 내 입술의 은밀한 달싹임을,
그 입술 너머 엎드려 통곡하는 혀의 구구절절만을 기억해주게.
오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꽃은 성급히 피고 나무는 느리게 죽어가네.
천변만화의 계절이 잘게 쪼개져,
머무를 처소 하나 없이 우주 만역에 흩어지는 먼지의 나날이 될 때까지
나는 그대를 기억하리.

9
그리하여 첫번째 먼지가 억겁의 윤회를 거쳐 두번째 먼지로 태어나듯이, 먼지와 먼지 사이에 코끼리와 태산과 바다의 시절이 있다 한들, 소멸 앞에 두렵지 않고 불멸 앞에 당혹치 않은 생은 없으리니.

10
사랑을 잃은 자 다시 사랑을 꿈꾸고, 언어를 잃은 자 다시 언어를 꿈꿀 뿐.


폐허의 가면을 쓰고 누워있는 세상 속, '심연에 가닿기 위해, 그대 기꺼이 심연이 되려 하는가'하는 물음은 <마작> 속 네 명의 청년들뿐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던지는 질문이다.


시 속에서도 그렇듯 우리는 세상이 원하는 역할대로 살게끔 자란다. 극 중에서 홍어가 '우리를 왜 태어나게 해놓고 사기꾼으로 살게 하냐' 울부짖는 모습이 이 대목에서 아른거린다. 그의 모습처럼 우리는 손에 쥔 패를 원망하면서도 주어진 패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심연의 (...) 닮은 가면의 가능성을 꿈꾸시게'처럼 결국 우린 게임의 법칙에 순응하게 된다.


그러나 '단 하나의 완벽한 사랑'을 꿈꾸는 인간의 마음이 마작 게임 같은 알 수 없는 세상에서 폐허를 만들면서도 사람을 살아가게끔 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사랑을 잃은 자 다시 사랑을 꿈꾸고, 언어를 잃은 자 다시 언어를 꿈꿀 뿐.'이란 말처럼 끝없는 마작 게임 같은 세상에서 결국 우리는 승패가 아닌 진정한 무언가를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 시점보다 더 연결된 삶을 살고 더 많은 패를 쥐고 있다고 느끼는 현시대의 삶. 하지만 현대인들은 어느 때보다 더 단절되어 있고, 패를 보았지 쥐고 있지는 못하다. 지금도 우리는 삶이라는 마작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영원한 승리 없는 이 게임 속에서 무엇이 정말로 중요할까.


진정한 마음이야말로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그 마음이 삶을 계속 살게 하는, 마작을 끝없이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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