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에 대한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 4

내 인생 신발

by 데이지

첫 번째 내 인생 신발은 플라스틱 슬리퍼였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의 일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엄마가 오로지 나를 위해 사주신 첫 번째 물건이었기에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슬리퍼는 빨간색에 발바닥 뒤쪽에 아기 꽃사슴 그림이 있었고 꼬리에 나비가 앉아 있었는데 사슴이 살짝 뒤돌아보는 그림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예쁜 그림은 처음 보았던 것 같다.


두 번째 내 인생 신발은 운동화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쯤이었다. 학교 복도 신발장에 신발의 반은 운동화였고 반은 고무신이었다. 그리고 점점 고무신이 사라지고 운동화가 늘어 갈수록 내 마음은 불안해졌다. 내가 마지막 고무신의 주인공은

결코 되고 싶지 않았다. 신발장에 고무신이 3개 남았을 때 나는 운동화를 사달라고 부모님께 떼를 쓰기 시작했다. 어린 마음에도 나는 알고 있었다.

그걸 수용한다는 것이 우리 가정에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를....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부모님은 수용하셨다. 하지만 4km의 비포장 도로를 걸어서 학교를 다녀야 했던 우리는 훨씬 자주 운동화를 교체해 주어야 했다. 어린 마음에도 부모님께 너무 죄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설레게 했던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나의 첫 운동화는 빨간색에 흰색의 작은 물방울무늬가 있었으며 윗부분에는 '금발의 제니'라고 써져 있었다.


세 번째 나의 인생 신발은 보라색 구두였다.

서울에 사시는 당고모가 명절 때 집에 오면서 사 오셨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작은언니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어쩌면 신데렐라 동화에서 처럼 사 오신 신발에 맞는 발사이즈를 가진 아이가 작은 언니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니의 구두가 너무 부러웠다. 언니는 구두를 신고 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에나멜 재질의 색과 모양만 환상적인 그 구두 역시 거친 비포장 도로를 견디지 못하고 얼마가지 않아서 밑바닥과 발의 경계 부분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 신발은 내 차례가 되었다. 찢어진 신발을 한두 번 간신히 신고 나서 완전히 찢어져 버렸다. 그런 모습이 안타까워 보이셨는지 아마도 할아버지께서 찢어진 구두를 실로 꿰매 주셨던 것 같다. 나는 1~2주 정도 더 그 신발을 신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라도 신고 싶었던 구두에 대한 나의 환상은 볼품없이 꿰매진 구두의 현실을 보며 균형잡기 힘든 묘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네 번째 나의 인생 신발은 쎄무 재질의 단화였다.

산골에서 살던 나는 6학년 겨울방학에 도시에 유학하고 있는 언니의 자취방에 놀러를 갔었다. 그때 시장에 나갔다가 쎄무로 만든 단화를 처음 보았다. 어찌나 예쁘던지 용돈을 다 털어서라도 꼭 그 신발을 사고 싶었다. 그런데 그 신발은 사이즈가 하나밖에 없었고 한 치수 작았다. 하지만 나는 신발이 아른거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국 다음날 신발을 샀다. 그 후 신발을 신을 때마다 피부가 벗겨지는 고통을 꽤 오랫동안 겪었다. 그 신발은 나의 고통과는 별개로 비포장 도로를 생각보다 아주 잘 견뎌 주었지만 첫 세탁 시 생긴 갈색얼룩은 끝내 지워지지 않아 나를 실망시켰다.

하지만 사춘기가 막 시작 될 무렵의 소녀에게 베이지색의 단아해 보이는 쎄무 신발은 첫눈에 반하기에 충분했다.


다섯 번째 나의 인생 신발은 형부가 사주신 구두였다. 언니와 결혼을 앞둔 형부가 처제에게 한 첫 선물이었다. 그 구두는 모든 면에서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나는 성인이 되었고 더 이상 비포장 도로를 긴 시간 걸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 면에서 구두가 또 얼마나 빨리 망가질지 불안해 할 필요는 없었다. 그 구두를 신었던 얼마 동안 나는 정말 행복했다. 어떤 옷을 입어도 찰떡같이 나를 빛나게 해 주는 것 같았고, 키에 비해 큰 발도 베이지색 가죽 리본모양이 예쁘게 가려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면서 구두가 흠뻑 젖어 버렸고 그 후 그 구두는 예전의 모습을 잃고 말았다.

내가 성인이 되고 타인(?)에게서 받은 첫 선물이었고 태어나서 메이커 신발을 처음 신어보았으며, 빨리 낡아질까 봐 더 이상 불안한 마음을 갖지 않고 신을 수 있었던 유일한 신발이었다.

마지막 인생 신발 역시 단화였다.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오래 사귀던 남자 친구와도 이별을 하고 인생 2막을 힘겹게 지나고 있을 때였다. 가장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지금의 남편이 나에게 해준 선물이었다.

20대는 나에게 하는 것마다 성공하는 시기였다면 30대는 하는 것마다 나에게 실패를 안겨다 주었다.

그 신발은 어려운 시기에 받은 값비싼 선물이라 더 귀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부드러운 가죽에 발이 너무 편했다. 모든 것이 불안하던 그 시기에 내가 세상을 딛고 바로 설 수 있기에 충분한 편안함을 주었고 어떤 옷을 입어도 자연스럽고 문안하게 표현해 주었다. 멋 부린 것 같지 않은 세련됨으로 나의 다른 검소한 옷들과도 잘 조화를 이루었다. 게다가 더 마음에 들었던 건 낡을수록 더 편안함이 있었고 낡아질수록 빈티지한 깊은 멋이 있었다. 그 신발은 지금의 남편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좋았을까?

충분히 오래 신고 다녀서 낡을 대로 낡았지만 버리기엔 너무 아까워서 새것으로 하나 더 사고 싶을 만큼 애착이 가는 신발이었다. 톤다운된 노란색에 가까운 가죽신발이었고 카키색의 신발끈이 메어져 있었다.

지금도 그 신발에 대한 추억은 여전히 나를 놓아주지 않고 있어 딸에게도 비슷한 신발을 사주었다. 다행히 딸도 내가 사준 신발을 마음에 들어했다.


오늘 오랜만에 남편이 신발을 사주겠다고 해서 할인매장을 갔는데 그곳에서 쎄무 신발 하나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이 단순한 신발에 자꾸 눈이 갔던 것은 추억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늘 나는 신발을 통해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걸어본다. 그때 넌 얼마나 꿈 많고 얼마나 또 가난 했었는지 그리고 너는 지금 꿈이 있는지?너는 지금 얼마나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세상에 살고 있는지!! 그래서 나는 그때보다 행복한가?

그때보다 분명 편안하지만 그때보다 행복한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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