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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림의 왕 수니 Jun 12. 2024

밥만 잘 먹더라, 남편 세끼.

나는 출산, 너는 식신.

  2022. 07. 그녀의 탄생일.


  담당교수의 조언으로 제왕절개를 결정하고 당일이 되었다. 더운 여름이었지만, 아침부터 몸이 떨렸다. 일주일 전부터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지만 좀처럼 긴장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얼마 후 간호사가 가져온 휠체어를 타고 수술방으로 이동했다. 걸어갈 수 있는데도 도움을 받으니 더욱 기분이 묘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수술전용 실내화로 갈아 신으니 어느새 걱정만이 남았다. 출산하러 갈 때 내가 신고 온 신발을 다시 신고 나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더니, 진짜였다. 최대한 덤덤하게 생각하려 했지만, 겁이 났다. 지켜야 할 사람이 한 명 늘었기 때문에..



  수술 후 돌아온 병실에서 흐릿하게 남편의 모습이 보였지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마취에 덜 깬 데다 생전처음 겪는 통증까지 더해져 정신이 혼미했다. 결국 진통제를 추가해 좀 더 자고 일어난 뒤 정신이 들었다.

( '밥 언제 먹을 수 있지?..' )

아기의 건강을 확인하니 바로 밥 생각이 났다. 그렇게 아픈 데에도 식욕이 있는 것을 보니, 수술은 잘 된 듯했다. 전날부터 계속된 금식에 입이 말라 물이라도 벌컥 마시고 싶었지만, 이조차 마취가 완전히 깨어야 가능했다. 그래서일까? 정상식이를 먹을 때 까지는 천만년이 남은 것 같았다. 컨디션 확인 차 담당교수가 다녀가니 어느덧 저녁 식사 시간. 복도는 덜덜거리는 배식차의 소음이 가득했고, 이어 보호자 식사가 도착했다. 음식 냄새를 맡으니 더욱 배가 고파졌다.


“쩝쩝.. 쯔왑..ㅉㅡ왑.. 쩝…ㅉ…”

( ‘하 , 진짜 시끄럽게도 먹네.’ )

평소에도 음식을 맛있게 먹는 남편은 여느 때 같았지만 유난히 거슬렸다. 남편도 이제야 먹는 첫끼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날따라 허겁지겁 먹는 소리는 나를 약 올리는 것 같았다.


  이어진 새벽, 계속된 통증도 그러려니 했지만 남편의 코 고는 소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웬만한 힙합비트는 저리 가란 듯 한 번을 안 깨고 내놓는 것을 밤새 듣자니, 남편이 간호보다 자러 온 것 같았다. 겨우 맞이한 아침에도 가스가 안 나와 미음조차 먹을 수 없었다. 먹고 자는 것이 해결이 안 되고 무통약은 다 떨어지니 예민함은 배가 됐다. 누군가가 나를 살뜰히 살펴주길 바랐지만, 정작 내 곁엔 병원에서의 3끼를 아주 맛있게 먹는 '남편 세끼'만 있었다.


“쩝쩌ㅃ... 오? 여기 밥 괜찮은데? 맛있네! ㅉ..ㅓㅂ짭..”

“안 물어봤거든? 맛집 왔어? 조용히 좀 먹어."

"아! 미안해. 빨리 먹을게. 후루룩~~ 쩝ㅉㅡ왑..쩝쩝ㅉㅓㅂ...”


자기 딴에는 얼른 먹는다고 더 쩝쩝거렸다.


"아 진짜! 어제부터 열받게 좀 하지 말라고!!!!!!! “


  나름 눈치 보며 먹었는데 날아든 호통에 꽤나 억울한 표정이었다. 필요 이상의 성질에 한편으로 미안했지만 그보다 예민함이 더 컸다. 차라리 안 보는 게 낫겠다 싶어 눈을 감았지만 이도 잠시, 간호사가 소변줄을 빼주며 스스로 첫 소변을 해결하고, 조금씩 운동을 해보라 했다. 누워있기만 해도 아픈데 일어나라니.. 대체 왜 내게 계속된 시련을 주는가 싶었지만, 오후에 아기와의 첫 면회가 있으니 가보려면 걷기 연습이 필요했다.


  모션베드를 이용해 상체를 세워보려 했지만, 조금만 힘을 주어도 느껴지는 통증에 겁이 났다. 아랫배를 절개하니 깨달은 코어의 중요성을 뒤로한 채 화장실 가기 미션을 시작했다. 일단 침대 난간까지 이동하기 위해 팔꿈치로 지탱 후 등으로 기며 용을 쓰니 영락없는 군 훈련 후방포복 자세였다. 그래도 제법 움직였지만 최종목표지까진 어림도 없었다. 최선을 다해 움직였지만 거기서 거기였다. 그렇게 산발을 한 채로 침대난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매달린 내 모습에 피식- 자조가 터졌다. 그러자 온종일 냉랭한 공기 속에서 눈치만 보던 남편은 이때다 싶었던지 농담 섞은 어조로 말했다.


"그래! 그렇게 움직이면 돼~~! 자!! 여기는 강철부대다! 가즈~~~~~아~~~~!!"

출처 : 채널A 강철부대

같은 생각을 떠올린 남편의 유머로 빵 터진 웃음은 수술로 봉합한 뱃속까지 터트릴 기세였다. 본인의 개그로 분위기가 풀어지는 듯보이자, 성취감에 젖은 남편의 눈빛을 보니 또다시 화가 치솟았다.


"나 배 아파서 웃는 것도 힘들다고!!!!ㅠㅠㅜㅋㅋ 빨리 밖에 나가!!!!"


수술한 사람에게 부축의 손길대신 농담을 내미는 저 눈치 없는 개구쟁이를 대체 어쩌면 좋을까.

반품은 어려우니 시댁에 AS라도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던 중 그가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병실로 들어왔다. 아이는 내가 낳았는데 그새 늙은 남편의 얼굴에 다시 또 웃음이 터졌고, 결국 그는 한번 더 병실밖으로 쫓겨났다.




    이윽고 찾아온 첫 면회시간.

신생아실의 열린 커튼 사이로 보이는 작은 아이의 모습은 너무나도 신기했다. 아직은 낯선 바깥세상에서 온 힘을 내어 한쪽 눈을 뜨고 입술을 오물거렸다. 처음 마주한 엄마, 아빠에게 반갑다고 인사하는 것 같았다. 멀쩡했던 심장이 고장 난 듯 세게 쿵쿵거렸다. 난생처음 느끼는 감정에 눈물이 잔뜩 고여 일렁였지만, 깜박이는 시간도 아까워 하염없이 아이를 바라봤다.

어느새 듬직하게 느껴진 남편의 손을 꼭 잡은 채로...



그렇게 그날 우리는 아이를 보며

서로만 바라보던 철없던 남자와 여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겁없는 부모가 되었다.




출처 :  https://m.newspim.com/newsamp/view/20130207000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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