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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림의 왕 수니 Jun 05. 2024

애착인형을 샀지만, 사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출산 준비물

   2022.04. 임신 7개월 차.


  그동안 미뤄왔던 출산준비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맘카페를 통해 필요품 리스트를 찾으니, 아기용품으로애착인형 추천이 많았다. 신생아에게 굳이 필요할까 의아했지만, 침대에 두면 왠지 아기가 포근하게 잘 것 같아 한 개 정도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오가닉재질의 인형부터, 태교를 겸하여 손수 만들 수 있는 키트까지 다양한 종류의 아이템들을 애착인형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그중에 내 눈에 띈 건 유난히 보들보들한 털을 가진 토끼인형! 처음엔 다소 나른해 보였던 눈도 볼 수록 귀여웠다. 성인 팔뚝 만한 크기에 4~5만 원을 호가하는 이 녀석이 바로 '국민애착인형' 이란다.

국민애착인형이라 불리는 젤리캣 버니

  출산 준비물을 알아보면 찾을 수 있는 많은 '국민'이라는 이름의 육아 아이템들 (국민모빌, 국민젖병, 국민대문 등), 그 속에서 내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것을 구분하는 일은 초보 엄마인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문구가 붙어있으면 왠지 꼭 사두어야 할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에 주저함도 잠시, 어느새 홀린 듯 맘카페에 핫딜 알림을 등록했다.



  그 후 며칠이 지났을까? 기다리던 핫딜 알림이 울렸다. 심지어 초핫딜이란다!! 손빠르게 결정해 무려 3만원 초반에 이 귀여운 인형을 구매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평소 취향대로 연핑크색 토끼인형을 샀는데 왠지 모르게 찜찜했다. 이미 나의 주문 건은 ’배송준비 중'이었지만, 계속해서 핫딜게시판을 맴돌며 다른 엄마들이 남긴 댓글들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대부분 크림색과 베이지색의 입고를 기다렸고이번에 겨우 샀단다.


‘뭐지? 아기들은 실제 동물과 가까운 색상을 선호하나?.. 아까 베이지도 있었는데.. 어쩌지?'


  아기에게 줄 것을 내 취향대로만 고른 것 같아 취소 후 재구매를 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두 색상은 품절이었고, 그렇게 난 분명히 인형을 샀지만, 사지 않은 느낌이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습니다.?) 대체 이건 무슨 심리였을까? 모방심리였을까? 아니면 선택에 있어 우유부단한 성격 탓이었을까?

아무렴, 이 둘의 환장의 콜라보였다.


  이후 2번의 핫딜로 크림색과 베이지색 인형을 추가로구매하고 난 후에야, 무려 한 달간 계속된 이놈의 '애착인형 핫딜지옥'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 과소비, 충동소비 모두 다였다. 그리고 막상 색상별로 이 인형들을 쥐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기가 인형을 가지고 놀 나이가 되려면 한참 멀었는데, 대체 뭐가 급하다고 똑같은 것을 3개나 산 건지... (뭣이 중헌디..?)


인형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나란히 놓인 인형을 보고 있자니, 지난날의 의식의 흐름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고, 그저 웃으며 이 과정을 지켜보던 남편이 흘러가듯 한마디 했다.

당신이 애착인형이 필요했던 것 같네,
아기랑 당신이랑 하나씩 가지고, 나머지는 중고마켓 통해 보내줘~


  정말 그랬다. 어쩌면 나의 잠재된 요구에서 비롯된 일 같았다. 나는 동세대의 익숙한 스토리인 'IMF를 직격탄으로 맞은 자영업자 아버지'와 '부업으로 생활비를 보태신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이런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파생된 부모님의 예민함은 작은 일에도 늘 날이 서도록 만들었다. 그러다 그날들이 서로 팽팽하게 부딪히는 날에는 물건들이 날아다녔다. 그것도 자주. 그럴 땐 용기 내어 중재하려고도 해 보았지만, 곧 투명인간이 돼버린 무력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방에 놓인 이불속에서 작은 인형을 껴안은 채, 공포와 외로움을 달래려 엉엉 우는 것뿐이었다.



  결국 아이에게 줄 인형을 산대 놓고 계속된 핫딜지옥에 빠졌던 건…

결혼 전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그 상황에 숨어있던, 나의 결핍들을 늦게라도 채우고 싶던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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