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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림의 왕 수니 May 29. 2024

나 닮은 딸을 가졌다니 왠지 식은땀이 났다.

아이의 성별 힌트에 주마등처럼 스쳐간 내 인생사

(* 브런치북 연재를 위해 기존 매거진에 발행했던 글을 재업로드합니다.)


  2022. 01. 임신 16주 정기검진 날.


  아이의 성별 힌트를 받는 날이었다. 힘들었던 입덧이 줄어드며 몸의 변화에 조금씩 익숙해지자, 아이의 성별이 무척 궁금했다. 아들일 것 같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로 자연스레 아들을 상상했고, 그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진료실에서 초음파 사진을 쭉 보던 담당교수가 씨익-웃으며 첫마디를 떼었다.


아이는 분홍색을 좋아하겠네요. 무슨 뜻인지 아시죠~?
입체초음파 사진의 눈매가 엄마 닮았어요.


  출산율이 현저히 감소한 뒤, 특정 성별에 치우친 선호는 낮아진 지 오래 건 만 주변에는 딸을 조금 더 원하는 추세였다. 반면에 우리 부부는 난임으로 오래 아이를 기다렸지만, 구체적인 성별까지 원하지는 않았다. 그저 건강하게 만나기만 바랐을 뿐. 그럼에도 막상 딸이라니 육아경험이 전무한 나로선, '첫아이는 딸이 괜찮다.'는 친오빠의 조언이 떠오르며 조금 편안해졌다. 하지만 이도 잠시, 갑자기 엄마에게서 들었던 한마디가 불현듯 떠올랐다.

딱 너 같은 딸 낳아. 그럼 너도 알게 될 거야.

  자주는 아니지만 크면서 몇 번 들었던 말이다. 그럼 난 또 한마디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왜? 나 닮은 딸이면 좋지! 사고 없이 잘 컸잖아! 장학금도 다 받아와, 용돈도 벌어서 써, 얼마나 기특해?" 그러면 엄마는 한번 더 말씀하셨다. 그러니 꼭 나 닮은 딸 낳으라고 말이다. 이 말이 인디언 기우제라도 된 건지 진짜로 나 닮은 딸이라고 하니, 이상하게도 왠지 식은땀이 났다.


'나 정말 괜찮은 딸이었나?, 그동안 부모님 속상하게 한 일이 뭐가 있었지?'



  중학교 3학년, 공부로 나름 전교에서 상위권을 웃돌던 성적에 그저 영어가 좋다는 이유로 막연하게 외고진학을 꿈꿨다. 아쉽게도 지금처럼 다양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별도의 입시 전형과 이를 준비하기 위한ㅡ 이른바 '고급 정보'는 부모와 사교육 현장에 직접 찾아가 상담료를 내며 얻어야 했다. 하지만 어려웠던 형편 탓에 부모님은 생계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고, 지인도 정보도 없던 나는 자연스레 일반고 입학을 앞두게 되었다.


  이후 겨울방학 땐 약간의 선행학습을 하며 고등학교 진학 준비에 전념해야 했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나와 엎치락뒤치락하며 성적이 비슷했던 아이들은 정말 한 명도 빠짐없이 외고에 진학했고, 그러다 보니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공부도 진로도 생각하기 싫었고 그저 친구들과 매일을 놀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남중에 다니는 친구가 생겼고, 그렇게 처음으로 이성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물론 부모님에겐 비밀이었다. 하지만 어디 티가 안 날 리가 있나, 온종일 휴대폰을 쥐고 누군가와 문자를 나누는 것 하며, 이도 모자라 집의 무선전화기를 가지고 방에 들어가 한참을 안 나오던 것 하며, 사실 눈치를 못 챈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ㅡ 나 혼자만 아주 열심히 지키고 있던 비밀이었다.

먼저 알게 되신 어머니께서는 모른 척하셨지만, 잦아진 외출과 무엇보다도 갑자기 많이 나온 전화요금으로 아버지까지 아시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매우 화를 내셨다. 학생이 무슨 남자친구냐며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히 공부에 대한 걱정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치열한 생계 속에서 공부 잘하는 ㅡ 소위 ‘잘 지은 자식농사’가 매일의 유일한 동력이었을 텐데, 그것이 떨어지고 있으니 아버지 입장에선 꽤나 답답하셨을 것이다. 거기에 대고 세상 서럽게 펑펑 울며 부모님은 첫사랑도 없냐며 대들었으니... 철없는 딸에게 말문이 막혀 그저 알아서 하라는 말씀만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밤샘 이불킥을 부르는 부끄러운 멘트지만, 그때의 나는 무척이나 진지했다.


  그 후엔 정말로 한 두어 달을 특별한 말씀 없이 그냥 두셨다. 물론 못마땅해 보이는 눈빛은 여전했지만 그날처럼 화를 내신 일은 없었다. 그렇게 봄이 되어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자 야간자율학습으로 바빠졌고, 새로 사귄 친구들이랑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레 그 친구와는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땐 또 뭐가 있었더라...

수능 백일을 앞두고 공부보다 백일 파티를 신나게 즐기다 늦은밤 연락이 두절돼 부모님이 데리러 오신 거?

그리고 잘 다니던 직장을 편입공부 하겠다고 한마디 상의 없이 퇴사한 거?

그렇게 다시 간 학교를 고작 한 학기만 다니고 또다시 상의 없이 휴학 통보한 거?

심지어 그 요란했던 휴학 사건의 피날레는 지금의 남편이랑 결혼부터 한다는 것으로 장식했다.

그것도 졸업 전에.




  ‘와.. 나 진짜 꽤나 골치 아프게 했네.'


사실 이외에도 몇 가지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딸의 입장에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게 반대로 부모입장에서 떠올리니, 머리가 지끈거리는 사건이었다. 물론  ‘나 닮은 딸 낳으라’ 던 엄마의 그 말은, 비단 위와 같은 사건 때 하신 말씀은 아니었다. 그 진정한 의미는 이제 엄마가 된 내가 경험으로 알게 되겠지...


딸의 책 제목이 싸하다. '(왜 너 닮은 딸 낳으라고 했는지) 곧 알게 될 거야'처럼 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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