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막 도착했을 때는 현지 시각으로 오후 네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들은 지연의 손을 꼭 잡으며 낯선 풍경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지난 며칠간, 아이는 엄마와 함께 갈 여행을 기대하며 몹시도 들떠 있었다. 짐을 싸는 지연에게 이 옷을 넣어도 되냐면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티셔츠를 보여주기도 하고, 기린 인형을 가져가겠다고 설레는 목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출발하는 날 아침, 겉옷 주머니에 작은 기린부터 넣은 준우는 캐리어를 직접 끌어보고 싶다면서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공항의 통유리창 너머로 비행기를 보았을 때는 눈이 커진 채 작은 탄성을 내뿜기도 했다. 이럴 때는 누가 봐도, 그저 그 나이 또래 보통의 어린아이다. 남편은 이런 아이를 왜 그리도 못 견뎌 했을까.
아이는 색칠 공부도 하고, 태블릿에 저장해 온 애니메이션도 보면서 네다섯 시간의 비행을 잘 버텨냈다. 그래도 처음 와 본 곳에서 피부색도 다르고 쓰는 말도 다른 사람들 틈에 줄 서 있다 보니 어느새 긴장했던 것 같다. 엄마의 손을 잡은 아이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눈꺼풀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그간 잠잠했었는데, 또 나오는구나. 지연은 안쓰러운 마음에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지연의 눈길이 다다른 곳에, 양손에 각각 부모의 손을 잡고 선 여자아이가 있었다. 세 사람은 아이보리색 나이키 트레이닝복 세트를 맞춰서 입었고,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루이뷔통 백을 편하게 둘러메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장난기 어린 얼굴로 깔깔거리며 웃고 있다. 딸을 내려다보는 아버지는 한없이 자애로운 표정이었다. 넉넉한 생활에서 오는 여유와 순탄한 인생에서 나오는 너그러움, 거기에 딸에 대한 사랑까지 포근하게 뒤섞인 듯한 느낌. 지연은 옅은 부러움이 일었다.
그들은 피부색과 생김새로 보아 동남아시아 사람 같았는데, 지연은 저들을 그저 ‘동남아시아 사람’이라고 묶어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다. 남들이 자기와 준우를 어떻게 볼지도 궁금했다. 중국인 모자(母子)라고 생각할까. 푸껫에 놀러 갔을 때 ‘니하오’라고 말 거는 상인들을 하루에도 수십 번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준우가 어려서 괜찮았지만, 이제는 그런 모르는 말에 상처받을 수도 있다. 여기가 어딘지 가르쳐주고, 말을 걸어서 긴장을 좀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약하고 소심한 아이니까, 누군가 자길 보고 부드럽게 웃어도 그 이유를 몰라서 불안해하는 아이니까.
“아들, 여기 어딘지 알아?”
“몰라요. 우리 어디 왔어요?”
“여기는 베트남이야. 지금은 하노이라는 곳에 온 거고.”
“…….”
“여기서 하룻밤 자고 내일은 다른 데로 갈 거야. 내일 가는 곳에는 수영장도 있어.”
“나 수영해도 돼요?”
“그럼, 엄마가 수영복이랑 다 챙겨 왔으니까 내일 물놀이 하자.”
베트남이 뭔지, 하노이가 뭔지 알아듣지 못해서 잠깐 멍해졌던 아이는 물놀이라는 말에 생기가 돌았다. 표정이 풀어지는 와중에도 눈꺼풀의 깜빡거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