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 실상은 하루 쉬어가는 모텔 정도의 시설이었지만 ― 프런트의 어린 여자 직원은 짤막짤막한 영어로 체크인을 시작했다. 인터넷이 느린 건지 절차가 복잡한 건지, 생각만큼 빠르게 진행되지 않아서 지연은 기다리는 동안 로비를 둘러봤다.
아주 어린 시절에 정육점에서나 보았을 법한 초록색 저울이 잔뜩 녹슬어가는 채로 호텔의 한구석을 지키고 있었다. 아이 또한 그 저울이 눈에 띄었나 보다. 한 손으로는 주머니 속의 기린을 움켜쥔 채, 저울 안의 빨간 바늘과 숫자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이렇게 낯선 곳에 데리고 나오니, 조금 긴장하기는 해도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보여서 귀여웠다. 저 나이에는 그저 모든 게 다 신기하겠지. 지연은 아들을 조용히 바라봤다.
체크인을 마치고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는 머리가 주먹만 한 할머니와 남자 두 명이 같이 탔다. 준우는 이번엔 카드키에 정신이 팔려서 그 중동 사람들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머리가 작은 사람들도 자기들끼리 대화하기 바빠서 지연과 아이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사람들이 이랬으면 좋겠다고, 지연은 생각했다.
준우는 얼핏 봐서는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서 지켜보다 보면 준우가 보통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걸 알아챌 수 있다. 아이의 그런 모습을 보게 된 사람들은, 간간이 질문을 하고 원치 않는 관심까지 주었다. 남자아이가 웬 인형을 들고 다녀? 남자애가 울면 어떡해! 씩씩하게 인사하고 대답해야지. 준우 엄마는 그러면, 준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 거예요? 아까워라, 그 좋은 회사를. 딱히 큰 악의는 없는 말들이 드문드문 이어졌고, 그것은 지연과 준우 모두에게 스트레스와 상처를 주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한 공간, 지연은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짐을 풀고 나온 지연은 근처의 작은 식당 야외테이블에서 아들과 함께 쌀국수를 먹었다. 영어라고는 한 단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직원은 손짓 발짓을 총동원한 손님에게 미안했는지, 부담스러울 정도로 공손하게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잔뜩 굽힌 허리와 움츠린 어깨, 조금은 두려워하는 듯한 태도에 측은한 마음이 든 지연은 무심결에 아들을 봤다.
준우는 직원이 그러거나 말거나, 도로를 따라 줄 서 있는 야자수를 보며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지연은 얼른 음식으로 아들의 관심을 돌렸다. 쌀국수는 제법 그럴듯했다. 한국의 체인점에서 먹어본 건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된 것이라는 걸 곧 알 수 있었다. 지연은 진한 고수 향기와 살짝 시큼하면서도 깊은 국물 맛에 만족했지만 역시나 아이는 국물 속에서 건진 고기 몇 점과 국수 몇 가닥을 먹고는 더 먹지 못했다.
준우가 지금보다 어렸을 때, 지연은 아이가 어지간한 음식엔 익숙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싫어하는 것도 억지로 먹이곤 했었다. 소심한 아이가 제대로 표현도 못 하고 얼마나 괴로웠을까 생각하면 새삼스레 미안해졌다. 식탁에서 자꾸 물을 쏟고, 젓가락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반복하는 것도 먹기 싫은 걸 피하기 위해 일부러 하는 짓인 줄 알고 더 많이 혼냈던 기억이 난다.
(5)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