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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무늘보 Oct 20. 2024

오늘부터 우리는 (5)

  오늘도 준우는 물컵을 쳐서 물을 흘리고는 당황해하기만 하면서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럴 땐 말로 가르쳐야 한다, 천천히, 아이가 알아듣기 쉽게.


  “준우야, 여기 휴지 있어. 이걸로 닦아 봐.”

  “엄마, 어떻게 닦아요? 물이 너무 많아요.”


  답답한 마음을 간신히 누르고 지연이 휴지 몇 장을 내밀었지만 그나마도 준우는 제대로 닦지도 못했다. 결국 뒤처리는 엄마의 몫이지만, 준우는 민망해하지도 않는다.


  이런 식의 잦은 실수와 눈치 없는 행동이 이어지면서 지연은 준우 친구와 친구 엄마들이 함께하는 모임에 나가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몇몇 교양있는 엄마들은 상황을 알아채고 적당히 이해하려 하는 것 같았지만, 아직 어린 준우의 친구들은 아이의 반복되는 실수와 부족함을 받아주려 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의도치 않은 부주의함으로 친구를 자꾸 치게 된다든가 혹은 게임의 규칙을 혼자서만 이해하지 못한다든가 하는, 그런 부분들.


  학교에서는, 준우가 반 친구들에게 딱히 피해를 주지는 않으며 크게 도드라지는 것 없이 그럭저럭 지낸다고는 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학교 밖에서의 사적인 교류가 쉽지 않았다. 지연은 아들의 친구가 되어야만 했다.


  “준우야, 이제 밥 다 먹었는데 엄마랑 동네 구경할까?”

  “과자 사 주세요. 아까 과자 봤어요.”

  “과자? 무슨 과자?”

  “저쪽 가게에 있는 과자.”


  호텔에서 나오는 길에 옛날 시골 동네 구멍가게 같은 잡화점이 몇 개 있는 걸 봤는데, 준우도 그런 곳들을 본 것 같았다. 아이 손에 이끌려 간 그곳에는, 역시나 익숙한 한국 과자들이 걸려 있었다. 가게는 밖에서 보기보다 꽤 넓었다. 창고같이 생긴 널찍한 공간에 과자며 샴푸며 할 것 없이 여러 물건이 그득하게 쌓여있었는데, 구석에 매달려 있는 몇 개의 돼지저금통 위에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걸 보고 지연은 순간 어릴 때 학교 근처의 문방구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았다. 낯선 나라의 한 동네 슈퍼에서, 코끝이 살짝 매워 온다.


  카운터에서는 몸집이 작고 순박하게 생긴 여자가 조그만 아기를 안고 웃으며 준우를 바라보고 있다. 잠든 아기를 보며 지연은 준우가 저만할 때를 떠올렸다. 준우도 저 아기만큼이나 얌전하고 향긋하고 예쁜 아기였다. 주변의 많은 사람이 지연과 남편과 그들의 가정을 부러워했다. 그때 지연은 본인의 인생이 절정에 올랐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런 순간이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기 준우를 안고 있던, 지금보다 젊고 당당하던 자기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지연은 자신도 모르게 순한 얼굴이 되어, 여자를 향해 짧게 물었다.


  “So cute! How old is your baby?”

  “Umm…. 3 months.”


  조금 더듬긴 했어도 여자는 꽤 매끄러운 발음으로 대답했다.



(6)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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