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준우는, 준우 같은 아이들이 보통 그렇듯, 흥미가 자주 바뀌었고 그러다 보니 한 가지 물건에 집착하지는 않았다. 기린은 그저 처음으로 정을 붙인 인형이었고, 밖에 나갈 때마다 주머니에 넣고 나가는 여러 가지 물건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제 딴에는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겠다고 뭐라도 하나씩 들고 다니면서 조몰락거리는 건데, 남편은 아들 마음은 알지도 못하면서 애꿎은 인형을 보기 싫어했다. 그게 인형이 아닌 자동차였으면 남편은 만족했을까. 자동차를 들었어도 준우는 준우였을 것이다. 지연은 남편에게, 아이를 향해 계집애 같으니 어쩌니 따위의 편견 가득한 말은 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병원에서 ADHD 판정을 받고 온 날, 남편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왜 애한테 낙인을 찍어온 거야?”
“말조심해. 낙인이라니, 준우가 뭐 죄라도 지었어?”
“소심하고 느리고 좀 산만할 뿐이잖아. 남자애들 어릴 때 이럴 수도 있다고. 크면서 나아질 텐데 왜 미리 정신과 기록을 남기는 거야! 사회생활 하면서 문제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
“필요하니까 진단받고 치료받는 거야! 왜 확대해석을 하는 건데?”
남편은 예상보다도 더 노발대발했다. 지연이 보기에 남편은 준우가 아닌 자신에게 낙인이 찍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의 출신으로 혼자 뛰어서 나름의 성공을 이룬 남편, 노력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격언의 신봉자, 그런 남편에게는 자신의 힘으로 얻어낸 갖가지 결과물 리스트에 ADHD를 앓는 아들이 추가된다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었을 거라고 지연은 추측했다.
호텔로 돌아와서 얼마 되지 않아 작은 일이 터졌다. 남들에게는 사소하지만, 준우에게는 그렇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 지연은 방에 붙은 아담한 베란다로 나가서 어두워진 하늘과 그 아래 동네의 모습을 막 감상하기 시작했던 중이었다. 어쩐지, 나른한 평화로움이 조금 꺼림칙하긴 하더라니.
늘 이런 식이었다. 마음을 잠깐 내려놓고 쉬고 있을 때, 따뜻한 욕조에 누운 것처럼 몸이 흐물거릴 때, 가볍게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정신이 느긋해지려 할 때, 희한하게도 일은 그런 때 생겨나곤 했다. 마치 지연이 긴장을 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하노이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끼니는 부실하게 때웠지만, 야자수도 보고 동네 구경을 하며 먹고 싶은 과자도 사 와서 먹고, 샤워까지 말끔히 한 아이는 기분이 좋았다. 누워서 TV를 보며 뒹굴뒹굴하던 준우에게, 인제 자야 하니 그만 주변을 정리하라고 말하고 베란다로 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를 부른 준우는 겉옷을 들고 울상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