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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봄날 오후에 울며

by 김영근

나른한 오후의 게으름에 한껏 빠져도 좋을 봄날입니다. 뜰엔 봄꽃들과 나뭇가지 새순들, 이제 막 푸른빛 돌기 시작하는 잔디들에게 젖 물리는 봄햇살이 아주 넉넉한 모습으로 가득합니다.


늘그막에 그 햇살 품에 안겨 나른한 졸음을 즐기려다 그만 뒤통수 호되게 처맞았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배움을 얻었던 선생님께서 내려치신 한마디 말씀 회초리였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삼 학년 때이니 1971년이었습니다. 당시 대학교수셨던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께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시며 들려주셨던 말씀이었답니다.


“내 집 서재에 앉아 한강을 바라보곤 한다. 제이한강교와 절두산과 어우러진 한강 모습은 참 아름다워. 그러다 문득 정신 차릴 때가 있지. 내가 이 아름다운 풍광을 홀로 만끽하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일까? 하는 물음이지.”


당시 박정희가 삼선개헌으로 세 번째 대통령 자리에 오르고, 이듬해 이어지는 유신개헌으로 영구집권을 꾀하던 때였는데, 당시 어린 제가 무얼 알았겠습니까마는 선생님의 고뇌 정도는 읽을 나이었습니다.


그때 그 말씀이 2025년 나른한 봄날을 즐기던 제 머리를 쳤던 것입니다.


반복되는 것이 어찌 역사뿐이겠습니까? 제 삶의 순간순간들도 종종 되풀이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곤 한답니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접한 경북 봉화에 사는 친구가 전해주는 산불 소식이었습니다. 안동을 넘어 봉화 친구집 가까이 다가오는 산불 현장 소식이었습니다.


지난 연말에 일어난 내란 이후, 그 늪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왠지 자꾸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드는 듯한 어머니의 나라, 죽을 때까지 어쩔 수 없는 나의 나라 생각으로 이어진 산불 소식에 더욱 깊어진 옛 선생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빠르게 정말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과, 차고 넘치는 전문가들과 엘리트들이 넘쳐 나는 세상에서 시골 노인이 되어가는 제가 무얼 알겠습니까마는….


그저 비노니, 잘 되면 좋겠습니다. 모두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이 봄날 햇살의 깊은 속 마음 아닐까요?


눈물로 빕니다. 정말 함께 살려는 사람들이 모두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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