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구멍가게 하는 사람으로서 손님들과 절대 나누지 말아야 하는 이야기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동네에 있는 동종의 이웃가게에 대한 험담을 나누지 말아야 한다. 처음 내 가게에 들어선 손님이 동종의 이웃가게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경우, 절대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서는 안 된다. 그런 손님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내 가게에 독이 된다. 물론 한 동네에서 오래 장사해 온 내 감으로 하는 말이기에 절대 옳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정치 이야기도 금물이다. 특히 정파적으로 나누어지는 이야기엔 말을 섞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종교 이야기도 그 못지않은 금기이며, 스포츠 게임의 응원도 동네 전체 분위기에 맞추어 응대하는 것이 무난하다.
동네 구멍가게 하면서 무슨 큰돈을 벌었겠느냐만, 동네에서 제일 오래된 세탁소 주인으로 오늘도 일할 수 있게 된 까닭 가운데 하나였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산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에는 언제나 예외가 있는 법이다. 이젠 사십 년이라는 숫자를 꼽게 될 만큼 오랜 내 단골손님들과는 내가 쳐 놓은 금줄은 언제나 해제되곤 한다.
오늘 질펀히 트럼프 욕을 나누다 간 Early 부인도 내 오랜 단골 중 한 사람이다. 폴란드계 이민인 Early 내외는 수더분한 성격에 매우 부지런한 양반들이다. 우리 내외는 이름이 Early여서 그들이 부지런한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Early 씨는 이젠 70대 중반으로 접어들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작지만 알찬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물론 단골이기에 나눌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트럼프에 대한 불편한 마음들을 터뜨리는 빈도가 매우 빠르고 넓게 퍼져 나가는 듯한 뉴스를 접하는 저녁이다. 이른바 “손 떼! Hands off” 집회에 대한 뉴스들이 제법 놀랍다.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트럼프 반대 운동이 내가 사는 작은 동네 곳곳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조기를 거꾸로 매달아 들고 “그(트럼프)가 이 나라를 찢어 놓고 있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절박함이 배어 있었다.
그들의 외침이라고 뉴스는 전한다.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공격은 정치적인 것이 아닌 개인적인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책을 금지하려 하고, HIV(면역결핍) 예방 기금을 삭감하고, 의사, 교사, 가족, 우리의 삶을 범죄자로 만들고 있다."
"우리는 이런 미국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존엄성, 안전, 자유가 어느 일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는 미국을 원한다."
엊그제 밤, 겨우내 묵은 체증이 싹 사라지는 듯한 한국 윤석열에 대한 대통령직 파면 소식을 접했던 기쁨도 잠깐으로 끝이 나는가 보다. 이젠 지금 여기 내가 발 딛고 사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손 떼! Hands Off!"운동이 내 삶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무릇 사람 사이를 ‘가르는 자’, ‘나누는 자’, ‘혐오하는 대상을 만드는 자’는 마귀 Satan이라는 내 오래된 고집스러운 믿음으로.
제법 세상사 고민으로 진지한 내게 아내가 다가오더니만 묻는 말.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는감?”
내 대답. “오늘….? 식목일.”
아내가 혀 차며 던진 말, “에고… 오늘이 우리가 처음 눈이 맞은 날이라네! 47년 전에….”
잊지 않고 산다는 일은 정말 소중한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