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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들

by 김영근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은 어디서 오는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라는 물음을 안고 살기엔 늦어도 너무 늦은 나이에 들어섰다. 더더군다나 책에서 답을 구하려고 시간을 쓰는 일은 더할 수 없는 낭비다. 하나 생각과 행동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때론 낭비도 삶에 즐거움을 더한다.


심리학자 서은국교수가 쓴 <행복의 기원>을 단숨에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부제인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에 오랜 연구 끝에 그가 얻은 답을 참 쉬운 말로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는 책이다.


그는 개정판 서문에서 자기의 책이 행복을 소재로 한 다른 책들과 다른 차별점 세 가지를 이렇게 꼽고 있다. (솔직히 행복을 소재로 한 다른 책들을 거의 읽어보지 못한 내겐 바로 행복교과서처럼 다가왔다만.)


<첫째, 여타 많은 책의 주된 관심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가”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how’를 묻고 있다. 반면 이 책의 핵심 질문은 ‘why’다. …… 둘째, 이 책은 행복의 이성적인 면보다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면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 셋째, 이 책은 행복에 대한 통상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책을 읽다가 가장 크게 눈이 번쩍 떠지는 대목이었다. 바로 행복의 조건 중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조상 때문(탓 또는 덕)’이라는 그의 선언(?)이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의 선언은 아니고, <다소 극단적 표현이지만, 그래도 행복에 있어서 유전의 개입을 부인하는 학자는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학계의 정설 중 일반인들에게 가장 덜 알려진 사실이 바로 행복과 유전의 관계다. DNA가 행복을 완전히 결정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학자에 따라 다소 의견이 다른 통계적 수치지만, 학계의 통상적인 견해는 행복 개인차의 약 50퍼센트가 유전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행복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다른 모든 조건들을 다 합쳐도 ‘유전’이라는 단일 요인과 거의 맞먹을 정도일 뿐이라니, 정말 놀라웠다.


사람, 소소함, 반복 등등의 말들을 머릿속에 담아 두고 책장을 덮었다. 마음속에 담아 둔 몇 개 문장들이다.


<시카고대학의 카치오포(Cacioppo) 교수 팀의 오랜 연구에 의하면 현대인의 가장 총체적인 사망 요인은 사고나 암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유학 시절, 지도교수가 쓴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은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나는 이것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진리를 담은 문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행복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했지만, 여기서 중요한 전제 조건은 그 만남들이 나에게 즐거움과 편안함을 줄 때다.>


<레바논에 이런 속담이 있다. “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 된다.”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해 보자. 무엇을 하며 어떤 모양의 인생을 살든, 사람으로 가득한 인생은 이미 반쯤 천국이라는 뜻이리라.>


<행복의 핵심을 사진 한 장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의 내용과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랑.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행복은 결국 이 사진 한 장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The rest are details.”. 나머지 것들은 주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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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련다. 서은국의 말마따나 ‘행복에 대한 통상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서 해보는 말이다. 그 행복한 사람들과 가느다란 연을 이어 소식을 주고받는 나도 덩달아 행복한 사람이다.


오늘은 4월 16일, 어느새 열한 번째 맞는 세월호 참사일이다. 살며 이런저런 험한 꼴, 끔찍한 일들을 꽤나 겪고 보고 들으며 살아왔다만 그날의 뉴스 화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일손 놓고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던 9.11 참사 때보다도 훨씬 처참한 일이었다. 9.11은 사람들이 손 쓸 틈이 없던 참사였던 것에 비해, 그날의 일은 서서히 서서히, 설마, 설마 하는 꽤나 긴 시간 동안 손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숱한 어린 생명을 잃은 것이기에 그랬다.


그날 이후, 이 이민의 땅에서 어찌어찌 아픈 마음 서로 달래며, 참사를 당한 가족들을 위로하고 한을 풀어내는 일에 함께 하자고, 다시는 여기나 거기나 그런 황당하고 참혹한 참사가 더는 일어나게 하지 말자고 함께 해 온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 아픔을 잊지 않고 함께 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모임(필라 세사모)’의 벗들이다.


11년 사이, 서둘러 먼저 세상 떠난 이들도 있고, 멀리 타주로 이주한 사람들도 있고, 모국으로 돌아간 친구들도 있다. 그 사이 나도 밤운전하며 동네를 벗어나는 일에 매우 주저하는 지경에 이르러 필라에 올라가 친구들을 만나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그럼에도 다시 우리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련다. 진정 ‘행복에 대한 통상적 사고의 틀을 벗어’ 행복을 찾아 누리려는 꿈을 꾸며 사는 삶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으리.


참사 11주기에 세월호 가족들과 온 세상 모든 곳에서 서로서로 연을 잇고 함께 뜻 모아 사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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