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독교력으로 종려주일이다. 이 천여 년 전에 이 땅에서 서른 세 해 동안 살다 간 예수이야기의 절정을 이루는 한 주간이 시작되는 날이다.
그가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수많은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어 흔들며 ‘우리를 구원하소서! 제발 좀 도와주소서!’ 바로 <호산나! 호산나!>를 외치던 날을 기념하는 종려주일(棕櫚主日, Palm Sunday)이다.
예로부터 오늘까지 유대인들에게 종려나무는 그들의 꿈과 소망을 상징하는 나무다. 우리로 치자면 무궁화나 진달래 가지, 아니 소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며 어린 나귀를 타고 가는 예수를 향해 ‘좀 사는 것처럼 살게 해 달라!’고 외치던 날이다.
사람에 따라 또는 처한 상황에 따라 시간의 길이를 느끼는 정도가 다 다르게 마련이겠지만, 한 주간은 정말 짧은 시간이다. 종려주일부터 부활 직전까지의 그 짧은 딱 한 주간의 시간을 말한다. 이른바 고난주간(苦難週間, passion week 또는 수난주간(受難週間)이다.
이 한 주간 동안 예수는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성전 마당을 뒤집어엎고, 제자들과 마지막 밥상을 나누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피와 땀으로 처절한 기도를 마친 뒤에 체포 구금되어 고문과 심문을 받은 후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된다.
예수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 속에 있다. 바로 사람과의 관계 속에 있다. 그가 땅에 살며 걷던 때나 죽음을 맞이했던 순간이나 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없으면 그의 이야기는 없다. 그와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는 없다. 예수의 마지막 한 주간을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는 까닭이다.
우선 당시의 군중이다. 예수의 주변을 감싸고 ‘우리를 구원하소서(호산나!)’를 외치다가 단 사나흘 만에 ‘저 놈을 죽여라!, 십자가에 매달아 죽여라!’고 외쳤던 군중들, 그 무리의 사람들이다.
그 무리를 이룬 사람들은 여러 갈래로 서로 다르다.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를 따라온 이들도 있었고, 구경 삼아 나온 예루살렘 성민들도 있었을 것이며, 유월절을 맞이하여 전통적 관습으로 각지에서 예루살렘을 찾아온 유대 사람들도 있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로 무리를 이룬 군중들이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였다. 단 며칠 만에 바뀐 그들이 바라본 예수에 대한 관점이었다. ‘구세주에서 죽일 놈으로.’ (남 말하지 않으련다. 오늘도 나는 그들 가운데 있다.)
삼 년 동안을 예수를 따라다녔던 제자들도 그 시간을 함께 했다. 그들이 그 한 주간 동안 보여 주었던 행동의 표변은 군중의 모습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들은 곧 다가온 예수의 죽음을 결코 눈치 채지조차 못했다. 그들은 예수가 펼쳐 준 마지막 밥상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었고, 죽음을 앞에 두고 처절하게 기도했던 예수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그를 배반하거나 부인하였다.
(이 역시 남 말하지 않으련다. 오늘도 나는 그들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은 사람들이 있었다. 예루살렘 성전 체제 안에서 종교, 정치적 권력을 누리던 사람들이다. 로마의 앞잡이였던 헤롯왕가의 권력자들도 한패였다. 식민지 통치권자였던 로마의 권력은 그들의 든든한 뒷배였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들은 이런 권력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법비(法匪)들이었다. 이들이 한 통속이 되어 예수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마지막으로 예수의 죽음을 미리 예견하여 준비했고, 예수의 비참한 마지막 순간들을 곁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 있었다. 바로 ‘여인들’이다.
기록자 마태와 마가는 수난주간 예수일지를 기록하면서 예수에게 매우 값비싼 향유를 부은 여인의 이야기를 끼워 놓고 있다. 마태와 마가는 이름 모를 여자가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같은 내용인데 그 일어난 시점을 조금 달리 한 요한은 여인의 이름은 마리아였고, 그녀는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후 그녀의 머리칼로 그 발을 닦았다고 전한다.
기록자 세 사람들은 여자의 돌발적 행위에 대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 비싼 물건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줄 일이지, 왜 이렇게 낭비하느냐’고 나무랐다고 덧붙인다. 그렇게 나무라는 이들을 향해 "이것은 내 장례일을 위하여 하는 일이니 이 여자 일에 참견하지 마라.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지만 나는 언제나 함께 있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여자의 행위를 옹호하는 예수의 말을 전하는 이는 기록자 요한이다. 마리아 또는 이름 없는 여인만이 예수의 죽음을 예견하며 준비했다는 기록이다.
한편 마가의 기록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는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름들이 남겨 있는데 모두 여인들 이름뿐이다. 곧 “여자들도 먼 데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 (마가 15: 40)”
또한 기록자 누가는 초기 예수의 갈릴리 시절부터 여인들이 함께 했었다고 전하고 있는데, 그중에 많은 여인들이 병을 앓다가 나음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악령이나 질병으로 시달리다가 나은 여자들도 따라다녔는데 그들 중에는 일곱 마귀가 나간 막달라 여자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신하 쿠자의 아내인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라는 여자를 비롯하여 다른 여자들도 여럿 있었다. (누가 8: 2)”
남성, 여성이라는 성(性)의 구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 여성들은 위에서 말한 여러 계층의 사람들 – (예수를 에워쌓던 군중들, 제자들, 당시 권력자들과 하수인들) - 에 비해 가장 밑바닥 계층이었으며, 더더욱 귀신 들렸거나 질병에 걸렸던 전과자들은 가장 밑바닥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수많은 계층의 여러 사람들과 마지막 한 주간을 함께 했던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때는 기원 후 33년 즈음이라고 한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대도시였던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일이지만, 대로마 제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변방의 작은 식민지 도시에서 그 도시 사람도 아닌 갈릴리 시골 촌사람 하나가 하찮은 소요를 일으켰다가 죽은 일에 불과하였다,
기원 후 33년 즈음 한반도의 사정을 보자면 고구려, 백제, 신라가 나라를 세운 뒤 고작 두, 세 명의 왕들이 거쳐간 시기였고 김수로왕이 가야국을 세우기 전이었다. 우리 먼 조상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으며, 당시 로마와 유대에서도 곧 잊히고 마는 그즈음에 숱하게 일어났던 고만고만한 작은 사건 하나에 불과하였다.
예수가 차렸던 그의 마지막 밥상과 십자가 죽음이 세상을 뒤집어 놓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