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와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20대 남자들 다수가 여당을 선택하지 않았다. 원인과 대책을 놓고 말들이 많은데, 사실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에 대한 20대 남자들의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이번에 갑자기 나타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2019년에 이미 이와 관련한 책도 나왔다.
당시에도 20대 남자들 사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유달리 낮은 것에 대해 20대가 보수화됐다, 이명박, 박근혜때 교육을 잘못 받아서 그렇다는 등의 분석들이 나왔는데 천관율 시사인 기자,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분석 전문 위원의 생각은 다르다.
이런 분석으로 20대 남자들의 정체성을 설명하기는 역부족이다.
두 사람이 쓴 책 '20대 남자'에 따르면 20대 남자들은 설문 조사에서 20대 여성, 30대 남자들과는 달라도 많이 다른 반응을 보였다. 많은 질문들에서 20대 여성과 30대 남자는 큰틀에선 같은 입장에 서 있는 경우가 많은데, 20대 남자는 거꾸로다.
몇가지 사례를 꼽아봤다.
한국에서 남성 차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물었다. 20대 여자는 심각하지 않다 56.3%로 미적지근했다. 30세 이상 여자는 더 시큰둥하다. 심각하지 않다가 70.1%다. 남성 차별이라는 한국 사회에서 아직 낯선 개념이다. 남자들도 30세 이상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심각하지 않다가 60.3%로, 오히려 20대 여자보다도 높다. 그런데 20대 남자로 오면 아주 다른 결과가 나온다. 심각하지 않다는 26.8%로 추락하고, 심각하다가 68.7%까지 치솟는다. 매우 심각하다라는 강한 응답만 따로 봐도 30.5%나 된다.
다음은 노동 시장에 대한 질문이다.
전체 응답자 평균은 여성에게 불리하다 49.1%, 공정한 편이다 31.2%, 남성에게 불리하다 13.7%다. 여성이 불리하다는 인식이 다수인 가운데, 공정하다는 인식도 만만치 않다. 30세 이상 남자의 응답도 이 순서다. 그런데 20대 남자로 오면 순서 자체가 뒤집힌다. 공정한 편이다 45.9%, 남성에게 불리하다 29.2%, 여성에게 불리하다 16.9%다.
결론에 대해서는 한국의 결혼 문화는 여성에게 더 유리하다는 문장을 제시하자, 여기에 동의하는 여자는 19.8%에 그쳤다. 30세 이상 남자는 동의 48.1%, 동의 안함 47%로 팽팽하다. 그런데 20대 남자는 이말에 66.3%가 동의한다. 세명중 두명이 결혼은 여자한테 유리한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20대 남성은 결혼 시장과 같은 사회 문화적 권력 관계에서도 남자가 약자라고 느낀다. 페미니즘 물결 이후로 법집행이 남자에게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20대 남자에서 폭발했다.
권력의 문제이므로 권력 게임의 상대, 즉 주적이 있을 것이다. 유력한 후보가 있다.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은 남녀의 동등한 지위와 기회 부여를 이루려는 운동이다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에 대해 대체로 부합하는 문장을 제시하고, 찬반 의견을 물어봤다. 20대 남자는 정확히 반대로 움직였다. 동의하지 않는다가 62.3%에 달했다. 그중에서도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강한 거부가 44.5%였다.
설문 조사에서 20대 남자가 정치적으로 보수화됐다는 신호는 찾을 수 없었다.
시장 개방에 대한 태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태도, 복지국가에 대한 태도 등 정치 성향을 보여주는 여러 질문에서 20대 남자는 정치적 보수화의 징후를 보여주지 않았다.
저자들에 따르면 20대 남자의 25%가 20대 남자들의 다름을 만들어낸다. 저자들은 이들을 신념형 20대 남자로 분류했는데, 이들에게 지금 시대는 여성 차별보다 남성 차별이 심각한 세상이다 .100%가 여기에 동의했다. 신념형 20대 남자 그룹에서 문재인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도는 16.7%에 그쳤다. 매우 못함이라는 단호한 응답도 58.3%나 된다.
저자들에 따르면 신념형 20대 남자들의 사고체계는 이렇게 요약된다.
20대 남자의 인식 세계에서 남성은 약자다. 능력은 남자가 뛰어나지만, 권력이 남성을 차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남성 우위 사회에서 여성 우대 정책을 역차별로 인식하던 윗세대 사람들과도 결이 다르다. 남성이 약자라는 인식, 남성이 마이너리티라는 정체성이 등장했다. 그래서 역차별이 아니라 그냥 차별이다. 젠더와 권력이 만나는 지점이 핵심이다. 둘중 하나만 사라져도, 20대 남성 여론의 특수성이 사라진다.
공정, 경쟁, 저성장, 기회축소는 여전히 중요한 키워드다. 그것들이 전제로 깔려야만 20대 남자가 보여주는 특유의 차별 의식을 설명할 수 있다. 공정이 무너졌다는 인식, 경쟁이 아니라 권력의 팔 비틀기로 여성들이 자리를 차지한다는 차별 감각, 저성장과 기회 축소가 불러오는 긴장, 소수자 밀어내기, 이런 토양이 없다면 20대 남자 현상은 등장하기 어려웠다.
반 페미니즘 정체성 집단은 여성에게 덮어놓고 가혹하다기 보다는 도움 받을 자격에 가혹하다. 그러니까 책임이 내부인지 외부인지를 결정하는 경계선이 깐깐하다는 점에서 분명하고 지속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문제처럼 보이는 것들이 알고 보면 사회 구조와 환경의 영향일 수 있다. 지능, 학습능력, 사회성 등 명백히 타고 나는 것으로 보이는 능력들조차 그렇다. 그런 맥락을 무시하고 웬만한 귀인을 다 내부로 간주해 버리는 것은 쉽고 편하다.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고 멍청해그렇다라고 간주하는데는 섬세함이 필요없다. 공정성이라는 단일 잣대만 살아남으면 이 경계선이 유난히 가혹해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납작한 공정, 맥락에 제거된 공정을 마주한다. 맥락도 구조도 증발한채 사실의 조각 몇개가 팩트 폭행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온라인 공간에서 끊임없이 복제된다.
우리 조사는 반페미니즘 정체성 20대 남성의 특수성을 몇가지로 추려낼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들은 또래 여자에게 위축되거나 피해 의식을 가졌을 개연성이 있다. 초중고 교육 과정이나 입시 경쟁에서, 또 데이트 시장에서 피해의 경험을 공유한다. 사실이든 허위든 이것이 정체성의 원재료일 수 있다. 이들은 공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특별하지 않다. 이들은 공정 그 자체외에 다른 잣대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렇게 해서 맥락이 제거된 공정이 시대 정신으로 등장한다.
이 태도가 생물학적 남성 성별과 만나면 중요한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이 조합은 여성에게 덮어 놓고 가혹하다기 보다는 도움을 받을 자격에 유난히 가혹하다. 경쟁을 피곤해 하면서도 경쟁의 가치를 건드리는 시도에 크게 반발한다. 병목 사회에서 병목을 통과하는 경쟁은 특별히 신성하다. 20여년의 생애 경험에서 피해자는 오히려 자신이지만 특별 대우를 요구할 생각은 없다. 반페미니즘 정체성 20대 남자 집단은 대입 남성 가산점 제도에 83.4%가 반대했다.
20대 남자들에서만 이같은 차이가 존재할까? 그럴듯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만큼, 책은 원인보다는 현상을 파악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 저자들의 설명. 원인과 관련해서는 천관율 기자의 말로 대신한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20대 남자 현상에 대해 이명박근혜 시대에 교육을 받아 그렇다라는 식의 말을 했다가 소동이 일어난 일이 있었죠. 이건 사실 검토할 가치가 없는 말입니다. 그말이 맞다면 전교조 전성기 시절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다 좌빨이었을테니까요. 이번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20대 남자 현상의 원인이 뚜렸하게 드러났다면 저도 좋았겠죠. 하지만 그게 아닌데도 사람들은 왜 단일 원인이 집착하고 싶어하는 걸까요? 제 생각엔 현상이 드러난 원인을 한가지로 명쾌하게 확정함으로써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 하는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하나의 원인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앞으로도 어려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