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아침형 인간은 이미 글렀고

1일 1커밋 #29

by 김디트

아마 '아침형 인간' 부류의 사람들은 신체가 무척 건강할 것이다. 항상성을 늘 잘 유지하는 그 몸매는 매끈하고, 혈관은 넓고 굵을 것이며, 피부는 백옥 같겠지. 나는 내 몸, 특히 배 인근에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지방들을 위험천만한 해양 위에서 튜브에라도 의지하듯 꽉 잡아본다. 아무것도 안 잡히는 허무함보다는 한 손 가득 잡히는 두둑함이 아무래도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지만, 역시 그럴 리는 없나.


어제는 비가 내렸다. 아마 온도가 좀 더 험악했다면 비가 아니라 이번에도 눈이 쏟아졌겠지만, 온도는 겨울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올라섰다. 애인과 비 오는 거리를 걸으면서 한담을 나누었다. '비가 좋아, 눈이 좋아?' 따위의 질문을 하면서. 우리는 서른 중반과 후반의 사이에서 방황하면서도 아직 눈이 더 좋다고 앞다퉈 대답했고, 난 그 점이 참 좋았다. 애인은 내일 출근할 건지 재택 할 건지 물었는데, 나는 기온이 따스하면 회사로 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일견 절대 추워지지 않을 것 같은 날씨였기에 무조건 회사로 출근하겠다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애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에 눈을 뜨니 7시 50분이었다. 아직 조금 이르네 하는 심정으로 눈을 잠깐 감았다 떴다. 그러다 아뿔싸 싶어서 벌떡 몸을 일으키니 9시. 겨우 이 주 정도의 재택근무만에 벌써 신체 리듬은 9시에 일어나는 걸 디폴트 값으로 설정하고 만 것이다. 8시에 일어나서 씻고 준비해서 나서야겠다는 계획은 그렇게 한 시간이나 미뤄졌다. 사실은 코로나로 인해 출근 시간이 매우 유동적으로 변한 덕분에 한 시간 미뤄진 건 그렇게 크리티컬 한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씁쓸해진다. 이거 조금 더 잔다고 해서 몸이 기똥차게 건강해지는 것도 아닌 데다가, 왠지 아침 시간을 손해 본 것 같은 찜찜한 기분. 왠지 오늘 또 조금 더 늙어버린 기분.


서둘러 씻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일어나자마자 날씨를 확인해 봤는데, 영하는 커녕 영상 안에서 배회하는 오늘 기온.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오래간만에 가벼운 복장을 입을 수 있으니까. 금세 마음이 단단해진다. 그리고 그 간만의 복장을 잘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왠지 아침의 공기란 건 어김없이 상쾌해야 마땅할 것만 같은데. 상큼함은 내가 지나가면 금세 몸을 숨기는 고양이들처럼 꽁꽁 숨어 버린 채였다. 그 대신 여기저기 고여있는 습기들이 물안개와 함께 내 몸에 붙어 질척거린다.


나는 버스 시간을 재차 확인하면서 서둘러 언덕길을 내려갔다. 다행히 버스 시간이 5분가량 남은, 조금 이른 시간에 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숨을 고르면서 정류장 벤치에 앉았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 건물들, 심지어 버스를 기다리는 내 옆의 이름 모를 이까지 모두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는데 그제야 마음이 안심된다. 저들도 아침형 인간이 되기엔 글렀구먼 싶으면서.


나보다 먼저 내 나잇대를 통과한 사람들은 의례히 서른 살을 지나면서 몸이 급격히 안 좋아진다고, 각오하는 게 좋을 거라고 으름장을 놓곤 했다. 겨우 1, 2년의 차이로 그렇게 몸이 안 좋아진다고? 그런데 사실이었다. 서른한 살쯤이 되자 몸의 각 부위들은 서로 합이라도 맞춘 듯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전방을 향해 5초간 함성! 따위의 신호를 주고받은 게 분명하다. 그 신호의 발원지가 누군지, 아니 어떤 부윈지 모르지만 두고 보자. 발견하는 즉시 운동할 때 그 부위를 집중적으로 조져야겠다 하는 마음을 꾹 누른다. 아무튼 이제는 서른 살이 지난지도 꽤 되었고, 그 때문에 나도 이제 서른 살 인근에서 얼쩡거리는 후학들에게 같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 동생도 서른 살에 진입했다. 나는 '몸 금방 망가진다' 따위의 말을 언제 쏘아붙일 수 있을까 기대하며 기회를 놓칠세라 동생의 투덜거림을 귀를 쫑긋하며 쫒게 된다.


요새는 특히 경추 쪽이 자주 후끈거린다. 어릴 때는 간혹 목이 얇아서 부럽다는 말을 듣곤 했는데 목이 얇아서 좋은 점은 그런 말을 이따금 들을 수 있었다는 점뿐일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 전반에서 나의 얇은 목뼈, 닭 모가지 같은 그 경추는 누워서 책을 읽는다거나 노트북을 한다거나 하는 둥의 혹사를 쉼 없이 겪어왔고, 그 결과 필연적이랄까, 서른이 넘어가면서 파업 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악독 사장처럼 피눈물도 없는 양 굴게 된다. 그야, 경추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내 안의 작은 사회가 당최 굴러가질 않으니까 말이다. 나는 다시 파업하지 못하도록 운동 후에는 꼭 폼롤러로 경추를 잘 달래주게 되었다. 그렇다고 경추만 잠잠해지면 나머지는 다 괜찮으냐, 그것도 아니다. 무릎도 이따금 시큰하고, 손목도 뻐근하다. 앞서 언급했듯 아침에도 영 개운하지 못하다. 아마 혈압의 문제일까. 즉, 인생의 순간순간이 통증으로 몸 군데군데 남아있는 셈이다.


종합적으로 이제 와서 '아침형 인간'이 되긴 영 글렀다. 그래서 나는 있는 몸이나 잘 건사하자, 아침형 인간이 되는 대신에 인간이 되자, 하고 되뇌면서 버스를 탑승했다. 그러면 어떡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가방에서 책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경추를 혹사시키며 회사에 출근한 것이다.


21. 0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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