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타고 등교했다가 퇴근하기
1일 1커밋 #64
이제는 시간 엄수적인 측면에서나 활동 반경의 기준점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 같은 것들 때문에, 무엇보다도 버스와 비교하여 취사선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곤 하지만, 내가 가장 먼저 접했고 가장 거리낌 없이 이용해왔던 교통수단은 버스였다. 무엇보다 아직도 버스는 괜찮은 선택지다. 지하철로는 빙빙 돌아서 갈 길을 버스는 그래도 최단거리에 가까운 경로로 가곤 했으니까. 당연히 진짜 최단거리를 이용하려면 자차를 이용해야 하지만 나는 운전을 싫어라 한다. 애인은 자기 어머니의 말을 인용하며 '못하니까 싫어하지!'라는 둥의 말을 하곤 했는데 사실이었다. 못하니까 싫고 싫어서 선택지로 삼고 싶은 마음이 잘 들지 않는다. 그 교통체증과 실타래처럼 베베 꼬인 길들 사이에서 배회하는 것도 싫지만 무엇보다 운전에 신경과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싫다.
회사로 갈 때는 주로 버스를 이용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하철로 다니면 너무 돌아가는 이유로. 게다가 요새는 친절하게도 버스 노선에 따른 시간까지 핸드폰으로 정확히 알려준다. 정말 좋은 시대구나, 가끔 이렇게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버스가 그렇게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은 아니었다. 난 오랫동안 버스를 무서워했다. 국민학교와 초등학교 사이를 건널 때의 이야기다. 나의 세계는 우리 동네,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곳들이 전부였고 그 외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엄청난 모험심과 탐구심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심하고 작은 일에도 심장 떨려하던 내가 그 위험천만한 경계를 혼자서 넘을 생각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 경계의 안팎을 가로지르는 버스는 어른의 영역에만 있어야 할 것이었다. 실수로라도 몸을 싣고 떠나버리면 영영 이 작은 동네, 하지만 나의 모든 것이었던 그 세계를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난 버스가 검은 매연을 꼬랑지에 달고 부릉 지나갈 때마다 몸을 사려야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버스에 몸을 사릴 수만은 없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학교가 우리 동네의 바깥에 위치하게 되면서 나는 반강제로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엄마는 나에게 신신당부했다. 신라중학교 앞에서 하차해라. 황성공원을 지나서 몇 정거장 후에 내리면 된다. 내리기 전에는 하차벨을 눌러라. 꼼꼼했다. 하지만 충분하진 않았다. 아마 어떤 설명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지금보다 더 연약했던 그 시절의 나는 처음을 맞이하는 것에 더더욱 취약했다. 나는 몸을 바르르 떨며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버스정류장에서 빳빳하지만 조금 크게 산 새 교복을 입고 초조하게 51번 버스를 기다렸다. 엄마는 내 첫 버스 승차를 위해 함께 버스 정류장에서 내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새벽이 나와 엄마의 어깨에 내려앉아 있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어떻게 버스를 타고 내렸는지는, 처음을 겪는 모든 사람들처럼 아마 정신없이 해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버스와의 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참 재미있다. 사실 나는 어른이 되면 자차를 몰거나 여건이 안된다면 적어도 택시를 자유자재로 타고 다닐 줄 알았다. 버스 같은 건 거들떠도 보지 않을 줄로만 알았다. 버스를 타게 됐다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꿰뚫게 된 양 굴었던 그 시절의 내 세계도 실은 그 정도 그릇밖엔 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아직 내가 경주에 거주하면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내가 봐왔던 엄마 아빠의 모습처럼. 하지만 서울은, 경기도는, 그렇게 살기엔 너무 크고 넓고 복잡한 도시였다. 그런 이유로 난 아직 버스에 몸을 싣고 있다. 물론 지금 타고 다니는 건 광역버스로, 경주에서 타고 다니던 시내버스랑은 이동 거리도, 형태도 다르지만.
내가 살던 경주는 시내버스가 입석과 좌석 버스로 나뉘어 있었다. 좌석은 앉는 좌석이 많은 대신 가격이 조금 비쌌다. 나는 정말 불의의 일을 당하지 않는 한 좌석 버스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불의의 일이란 예컨대 정말 시간이 촉박한데 좌석 버스가 먼저 왔다던가. 아니면 시내 밖으로 나가야 한다던가.(이 경우엔 좌석 버스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겨우 몇백 원의 차이였지만 그 겨우 몇백 원이 빠져나가는 것이 눈물 나게 아까웠다. 그랬건만. 지금은 그 시절엔 있는지도 몰랐던 광역 버스를, 이천 원이 넘는 돈을 주고 타고 다니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으니. 세월은 내 세상을 너무나 크게 확장시켜 버리고 만 게 아닐까.
하지만 이제 와서는 가격이 얼마든, 거리가 어떻든, 버스는 버스일 뿐이다. 나의 출퇴근 시간을 잘 가용할 수 있게 해주는 움직이는 서재 같은 것이나 다름없다. 아마 책 읽는 시간이 없어지는 것이 내가 출퇴근 운전을 꺼려하는 가장 큰 이유겠지. 조금 운전을 못해서 싫어하는 것이라는 말에 대한 변명처럼 보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