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규뉴 Aug 22. 2023

유산소 운동을 변호한다

그는 나에게 무게를 치라 말하고, 나는 그에게 일단 걸어 보라 말한다

우리 집 운동 기구를 소개합니다


<마이마운틴> 은, 걷기만으로는 강도가 약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인클라인 러닝머신이다. 최고속도는 8km밖에 되지 않고, 이마저도 기계의 길이가 짧기에 달리기에는 권장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높은 경사로 천천히 걷기를 권장하고, 일단 경사를 높여놓으면 어느 정도 느린 속도에도 차오르는 심박수를 느낄 수 있는 효율적인 유산소 기구다.

코로나19로 헬스장 방문이 녹록지 못한 채 홈짐 붐이 일어나면서, 웬만큼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유산소 운동' 용으로 하나씩 장만하기 시작했는데, 안타깝게도 옷걸이로만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은지 중고 시장에도 심심찮게 보이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주일에 하루 이틀이 멀다 하고 아주 요긴하게 쓰고 있는 운동 기구이기도 하다.


유산소 적정 심박수? 저, 일단 좀 올리고 볼게요


'체지방을 태우기 좋은 심박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무작정 높기만 한 심박수가 아니라, 최대 심박수의 중간(소위 zone 3) 정도의 심박수를 유지해야 체지방이 잘 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론은 이미 진작에 반박되었다. 즉 '심박수는 높으면 높을수록 체지방이 많이 타는 것이 맞으며, 비율적으로는 그러하나 심박수가 낮으면 체지방은 그만큼 적게 타는 것이 맞으니 일단 힘들게 운동하라'는 것이다. 나는 후자에 대한 이론을 좋아한다.


<마이마운틴>에 올라간다. 속도를 시속 3km로 맞춘다. 일반 러닝머신에서 3km라면 워밍업도 되지 않는 수준의 속도. 하지만, 경사를 높이면 어떨까? 시작과 동시에 경사를 32퍼센트로 올리고, 10분에 한 번씩 1퍼센트를 높여 나간다. 운동 시간 20분이 지나기가 무섭게 심박수가 zone 4로 진입하는 것을 스마트 워치를 통해 확인한다. 저녁 운동을 할 때는 zone 5까지도 과감히 올리곤 했는데, 아무래도 새벽 운동으로는 걸맞지 않고, 운동이 숙련됨에 따라 한 번 운동할 때 치솟는 심박수의 최대치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쿵쿵, 심박이 오르고 있다는 사실은 굳이 스마트 워치를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데, 어느 정도의 강도에 들어서면 이어폰에서 내 심박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그럼 새삼스레 반응한다. 아, 내가 살아있구나.


유산소운동만 하는 사람들을 '운동 잘 못하는 사람'으로 폄하하는 시류를 개탄한다


심장이 뛰는 운동을 좋아한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대부분의 운동을 좋아하는 것 같다. 러닝, 계단 오르기, 등산 등 가리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듣는 말이 있다.

"근력 하셔야죠!"

각종 건강 프로그램에서도, 헬스 커뮤니티에서도, 유산소는 '안 해도 되니까' 일단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근력 운동을 우선시하라고 말한다. 헬스장에 상주하는 '헬스 보이'들이 유산소 운동은 '근손실 나니까 안 한다'는 말을 비단 우스갯소리로만 듣기가 어렵다. 살 빼려고 하세요? 어차피 살은 식이로 빼야 돼요. 유산소 얼마나 한다고 살이 빠지겠어요? 30분에 200칼로리 소모하고 밥 한 공기 먹으면 사라져요. 우리에겐 근육이 힘이고 재산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술술 나오냐고? 그야 한두 번 들어본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초부터 걷기 운동을 좋아했던 나는 '헬스장에 러닝머신만 하러 오는 사람' 혹은 '살 뺀다고 걷기만 하는 사람' 등을 무수히도 폄하하는 인터넷 군중들에게 숱하게 회초리를 맞았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 내가 뭘 잘 못하고 있나?' 집에 덤벨을 종류별로 사모으기도 하고, 근력에 걸맞은 홈트레이닝을 이것저것 즐겨찾기 해보기도 했다. 마침내 내게 딱 맞는 근력운동을 찾아 쾌재를 부르며 한껏 빠져들기도 했다. 그러다 매너리즘이 찾아오고 잠시 운동이 지루해질 때쯤이면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외친다. "역시, 유산소가 최고야!" 그렇게 다시, 나는 걷고 뛴다.


착한 운동 나쁜 운동 따로 있나


개인 SNS가 러닝과 걷기 기록으로 가득 차자, 자연스레 알고리즘은 취미 러너들을 내게 잔뜩 소개해 주었다. 이미 아마추어의 범주를 넘어선 듯한 취미 러너들은, 각종 무게 운동을 추천하는 사람들보다는 살짝 슬림하지만, 그럼에도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쉐잎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래, 사실 대부분의 평범한 운동인들은 하루에 2시간조차도 겨우겨우 짬을 내 러닝머신이든 벤치프레스든 뭐라도 하는 건데, 거기에 잘하고 못하고가 어딨을까. 이미 어느 분야에 특출난 사람들은 '유무를 막론하고' 어느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런 분들의 발끝에는 미치지 못할지언정, 일단 내가 '운동'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 아닌가? 내가 아무리 마음을 고쳐먹고(?) "그 좋다는" 근력 운동에 사활을 걸어도, 결국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운동을 꾸준히 해온 이들을 열망할 것이다. 어정쩡한 헬스 우먼보다는 그럴듯한 러너가 되고 싶어. 빨리 뛰고 싶어 상체를 단련할 것이고, 더욱 높은 산을 오르고 싶어 하체를 단련할 것이다. 세상에 나쁜 운동이 어디 있을까? 그 모든 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난 이제 더 이상 내가 헬스보다 달리기를 더 좋아하는 사실에 대해 숙연해지지 않는다.


무산소 운동 좋아하세요? 일단 잠시 걸어보세요


나의 이러한 편파적인 변론은, '새벽에는 어떤 운동을 할 것인가?'에 대해 힘을 싣기 위한 것이다. '새벽엔 파워가 나지 않으니 유산소를 해 보세요'라는 말은 근본적인 조언이고, 나는 좀 더 감성적으로 호소하고 싶다.

생각이 너무 많았던 저녁, 또는 할 일이 너무 많아 맞이하고 싶지 않은 아침이 있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러한 날들은 매일매일 내게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심박수를 최대로 끌어올리며 운동을 한다. 이러한 운동은 마치 컴퓨터의 재부팅과 같은 기능을 한다. 컴퓨터를 껐다 켜면 사라지는 램 메모리처럼, 머릿속을 헤집는 잡념이 심장의 사정없는 쿵쾅댐과 동시에 사라진다. 비록 그것이 일시적인 감정이라 하더라도, 다시 떠오를 때쯤엔 좀 더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할 일이 너무 많을 때 스쿼트를 하고, 턱걸이를 하는 것은 힘에 부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시 시간을 내어 조금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은 오히려 힘을 샘솟게 한다.

오늘 새벽에도 나는 힘차게 걸었다. 흠뻑 젖은 수건이 내가 얼마나 열심히 땀을 흘렸는지를 알려준다. 머릿속 스위치가 부웅- 하고 재부팅되는 것이 느껴진다.


걸어보세요, 뛰어보세요. 가능하면 있는 힘껏.

이전 24화 운동 강박? 운동 습관이라고 불러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