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엔 유독 기상에 대한 걱정이 짙었나 보다. 처음 새벽 4시 30분 기상을 결심했던 때처럼 잠이 든 지 2시간 만에 불쑥 일어나 시계를 보았고, 꼭두새벽 어스름히 돌아와 버린 의식을 애써 억눌러 잠이 드는가 했더니 다시 눈이 떠지는 바람에, 아니 도대체 몇 시야? 하고 시계를 보니 다시 잠이 든 지 겨우 20분밖에 지나지 않아 뜨악했다. 아직도 내가 스스로가 일어날 수 있을지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여전히 나는 '이 시간에 일어나는 게 맞나?'라고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 여를 어떻게든 잠을 잔 뒤 울리는 알람에 온몸의 반동을 일으키며 벌떡 일어났다. '운동하러 가자!' 내가 이 시간을 기다려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준비운동을 하고, 물을 마시고. 만반의 준비를 한 뒤 <마이마운틴>에 오른다. 심박수 130 정도의 아주 평범한 강도로 시작해 점차적으로 강도를 늘려가다 보면 어느새 심박수가 160을 훌쩍 넘어있다. 오늘은 평소에 미리 먹어두던 물로는 부족했는지 운동 말미에 들어가자 심한 갈증이 찾아왔다. 과감히 운동 기구에서 내려와 물 한 컵을 들이켠 뒤 다시 올라갔다. 갈증이 해소됐으니 기운을 내 조금 전의 강도보다 좀 더 높게, '라스트 스퍼트'를 해 본다. 그렇게 오늘 하루 1시간의 운동이 끝이 났다.
유산소 운동을 좋아한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아직까지도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할까 봐 전정긍긍해 하면서도 기어코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고야 마는 것은, 역시나 좋아하는 것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적절한 시간을 비워 몸을 움직이는 것이 좋고, 특히 내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만 움직이는 게 좋다. 각종 숙련된 기술을 꾀하는 운동들보다 무념무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걷기나 러닝, 등산을 좋아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하지만, 객관적인 지표로 바라보았을 때 나의 러닝 속도, 또는 산을 타는 스킬이 남보다 더 뛰어난가요? 하고 물으면 사실 할 말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객관적인 운동 실력은 평소 그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지만, 같은 기간을 두고 보면 그다지 특출난 실력은 아니기 때문이다.
SNS 속의 은둔 고수들은 얼마나 많은지, 그들의 각종 예체능 기록을 보다 보면 도대체 같은 운동을 하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의심이 든다. 게다가 해당 운동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이미 매일매일 산을 타고(?), 이래 봬도 10년 이상의 러닝 경력(?)을 가지고 있는 나는 성적도 못 내밀 정도로 엄청난 사람들이 많아, 괜스레 나의 운동 경력을 숨기고 싶어지곤 한다.
잘하고 싶은 마음 < 좋아하는 마음 =< 오랫동안 하고 싶은 마음
시간이 날 때마다 운동을 한다고 얘기하면, 사람들은 으레 이렇게 반응하곤 한다. "와, 그럼 운동 진짜 잘하시겠네요!" 하지만 내 대답은 소극적이다. 맨몸운동을 열심히 해 왔지만 딱히 플랭크도, 팔굽혀펴기도 잘하는 건 아니고, <마이 마운틴>을 내 고향처럼 올라가긴 하지만 그렇다고 등산을 즐겨 다니며 스킬을 연마해 온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저 땀을 좀 더 흘리는 것, 또는 몸을 좀 더 움직이는 것일 뿐이고, 사실 그것을 '잘'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그리 없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무언가를 잘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 과정에서는 남과의 비교를 피할 수가 없고, 그러다 보면 무리를 하게 되며, 그 끝에는 좌절 또는 (과한 움직임으로 인한) 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몸을 쓰는 일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빨리 뛰고 싶다는 생각에 무리해서 달리기를 하다 족저근막염을 얻었고, 심폐지구력을 얻겠다고 계단 뛰기 연습을 하다 또다시 발바닥 통증 재발을 경험했다. 한 번 다친 발은 나아지는 듯싶다가도, 조금만 욕심을 부릴라치면 귀신같이 존재감을 발휘했다. 그래, 내가 운동선수도 아닌데 한두 명 보다 더 잘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어? 나는 기록과 추월에 대한 욕심을 과감히 포기했다. 대신 한 가지 욕심만은 버리지 않았다.
꾸준히, 자주, 오래 하는 것.
메이저한 취미 마이너하게 좋아하기
한때는 나도 누군가에게 내 취미를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도 나름 대중적인 취미를 가지고 있으니까. "취미는 달리기고요, 목표는 풀코스 완주입니다." "등산을 좋아해서 매년 한라산을 올라가요." 하지만 내가 내 취미를 즐기는 방법은 늘 무언가 조금 독특했다. 달리기를 좋아하지만 절대 10km 이상은 뛰지 않으려고 하는 굳은 의지, 산을 좋아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도저히 갈 수 없는 (진짜) 산, 심지어 난 계단 오르기를 좋아해서 살고 있는 집도 무조건 고층아파트를 고집하기까지 했었는데, 사람들에게 계단 운동은 취미로조차 너무 마이너해 쉬이 공감조차 받질 못한다("아니, 그 힘든 게 뭐가 좋아요?"). 바운더리를 넓히지 않으려는 나의 다분한 노력은, 메이저한 취미들에게 한두 스푼의 마이너함을 얹어 주었다. 각종 유산소 운동이 방구석 자기만족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좋아할 필요가 있나? 취미를 더욱 즐겁게 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것 아닐까? 달리기를 좋아하지만 적당한 거리를 적당히 달리는 게 좋아요. 등산을 좋아하지만 기회가 없어서 매일 집에서 경사 머신을 타요. 계단 운동을 좋아해서 1년에 몇 번 없는 계단 오르기 대회를 제일 좋아한답니다.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조금 독특할 수도 있는 나만의 방법으로 취미 생활을 누리고 있다.
운동이 하고 싶어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유산소 운동이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매일 4시 30분에 거침없이 일어나는 것 또한 내가 취미를 독특하게 즐기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동호회 모임도 아니고, 혼자서 매일 4시 30분에 일어나서 운동한다고? 꼭 그 시간에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경사로 걷기' 일 뿐인데 그걸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남들이 보면 '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행동,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하나의 즐거움, 하루의 낙이 될 수 있는 활동.
잘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앞서나가기 위해서도 아닌, 그저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하는 활동.
그렇게 나는, 딱히 잘 하진 못하지만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고,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