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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뉴 Aug 12. 2023

보라, 내가 뭐든 할 상인가

새벽 운동을 마친 자의 관상은 마치 수양대군과 같다(?)

새벽 기상 결심 이틀차만에 닥친 위기


다시 새벽운동을 결심한 날, 가장 걱정한 것은 역시 수면 부족이었다. 4시 30분에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한 후, 나는 몇 시에 잠들어야 최소 수면시간 7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지 손가락을 꼽으며 세어보았다. 3, 2, 1, 12,... 8시 30분? 아무리 일찍 잠을 자도 10시가 최대일 텐데. 10시 땡 하고 잠이 들더라도 6시간 30분이었다. 평소 수면시간이 8시간이 넘는 나에겐 꽤나 도전이었지만, 다행히 무사히 일어날 수 있었고, 생각보다 버틸만한 하루를 보냈다.


문제는, 결심 이튿날인 주말 새벽 7시 기차를 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6시 30분에 출발한다 해도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는 것은 꽤나 빠듯한 시간이었다. 어쩌지? 겨우 하루 일찍 일어나 놓고 쉬어 가야 하나? 적당한 핑곗거리가 생겼다고 좋아해야 하나? 근데, 그다음 날인 일요일은 쉬어가겠다고 결심했는데(그러면서 떠오르는 각종 합리적인 이유)...


그렇게 해서, 도전 이틀째 나는 결심했다.

그래, 내일은 새벽 4시 기상이다!


그렇게까지 운동을 해야겠어?


"내일은 새벽 4시에 일어날 거야." 다 같이 모인 저녁식사 자리에서 내가 한마디 툭 내뱉자, 남편이 '진심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준비운동, 본운동, 샤워까지 한 시간 반을 확보하고 애들 둘러매고 나가려면 그 정도 시간은 돼야지. "하루 정도 쉬어도 되는 거 아냐?" 남편이 물었다.


'킹치만... 어제 겨우 하루 일찍 일어났는 걸...!' 작심삼일도 세 번은 하고 포기한다는데, 그렇게 합리적인 이유로 쉬어가고 싶진 않았다.


두근두근, 이번에는 오후 9시가 되자마자 안대를 끼고 수면 태세를 취했다. 아이들을 재운 지 얼마 안 된 시각이었다. 이쯤 되면 육퇴시간이란 게 없는 게 아닐까? 언젠간 적응되겠지 하는 맘으로 입면을 시도했다. 지난밤과 마찬가지로 쉬이 잠이 들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건 마치 일어나기 위해 잠을 자는 노릇이다. 모든 이는 잠을 자야 하지만, 내게 수면이란 힘겨운 하루를 보상받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 해." 당연한 말을 다시금 되새겼다.


새벽 4시, 일어날 시간이야


전현무 전 아나운서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그는 몇 번 새벽 당직을 지각한 후 집을 KBS 근처로 이사했고, 심지어 프리선언을 한 이후에도 지각하는 꿈을 꿨다고 했다. 살면서 알람을 듣지 못한 경험이 별로 없는 나는 그 에피소드를 웃으면서 보았다. 그런데 막상 내가 평소에 일어나지 않을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남일'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기상시간의 불안함, 안 그래도 잠이 얕은데, 수시로 뒤척이다 다시 새벽 4시 알람과 동시에 비로소 일어났다. 이미 한 시간 전인 3시 남짓 한 번 일어나 화장실까지 다녀온 상황이었다.


그렇게 기상시간을 불안해했음에도, 막상 일어나는 것이 힘들지 않은 것은 신기한 일이다. 시간이 좀 더 일렀을 뿐,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옷을 갈아입은 후 가벼운 근력운동으로 몸을 덥혔다. 시간 절약을 위해 전날 물과 이온음료를 식탁 위에 올려둔 상태였다. 거실로 나오자마자 물 반컵을 마시고, 근력운동을 끝내자마자 이온음료 500ml 한 병을 원샷했다(나는 유산소 운동 전 의식적으로 물을 아주 많이 마신다). 자, 운동 시작이다!


적막한 집안, 잠든 이는 셋


<마이마운틴>에 오르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방문을 닫지 않은 것이 보였다. 아차, 애써 그쪽은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집이 너무 밝아지면 자던 사람도 깨기 마련이니, 불은 부엌의 식탁 위 하나만 켜둔 상태였다. 빛보다 어둠의 존재감이 더 또렷했다. 몸을 움직이고 있는데, 알 수 없는 형체가 자꾸만 아른거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안돼! 공포영화에서는 늘 돌아보지 말라고 하면서, 정작 본인은 돌아보는 아이러니함! 영화와 우리 집의 다른 점이라면, 영화에서는 귀신이 나온다면 우리 집에선 진짜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언제 진짜가 튀어나올지 모른단 생각을 하며, 어른거리는 무언가를 애써 무시한 채 운동을 마쳤다. 운동을 마친 시간은 새벽 5시 25분, 어제 첫째가 나온 시간보다 약간 이르다. 혼자만의 운동시간을 확보하려면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이 직관적으로 도출된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웃었다. 5분 뒤 '진짜' 알람시계처럼 일어난 아들을 보며 진지하게 고려하긴 했지만.


나 지금 너무 행복해... 이게 진짜 행복인가 봐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는 우리 집 아이들.. 젖은 머리에 수건을 얹고 화장실을 나오니 아이들이 각자 상어와 펭귄 인형을 들고 안방 침대 옆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수족관 다녀왔니?" 우스갯소리를 하며, 산뜻해진 심신으로 외출 준비를 했다. 6시 반에 기차역에 도착해 간단한 빵과 샐러드, 그리고 음료를 산 뒤 정시에 도착한 기차를 탔다. 4인 동반석에 옹기종기 모여 각자 먹을 것을 손에 쥐었다. 샐러드를 아삭아삭 씹으며 앞에 앉은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 나 지금 너무너무 행복해.. 이게 진짜 행복인가 봐." "그래, 아침에 운동하고 건강한 걸 먹고 있으니 얼마나 보람 있겠어." 남편이 내 심중을 정확히 캐치해 주었고, 나는 한층 더 뿌듯해졌다.


자신감이 부족한가요? 새벽 운동을 해보세요


조용한 기차 안에서, 나는 오늘 한 운동 기록을 추려 sns에 올리고, 영어 공부 앱을 켜 공부를 좀 하다 습관일기를 정리했다. 그리고 그걸 계속 반복했다. 두 시간 반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자, 나는 정오가 되지 않았는데도 '운동을 한 사람, 영어 공부를 한 사람, 일기를 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굳이 '새벽 4시경'에 일어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도, 6시에 일어나도, 하물며 해가 중천에 떴을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모든 걸 내가 '시간을 쪼개서 이루어냈다'는 사실이다. 하고 싶은 것, 해야만 하는 것을 테트리스를 맞추듯 스스로 시간을 지배하여 이루어낸다는 것. 이 모든 것은 새벽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며 일정을 가다듬은 덕에 생기는 마음가짐인 것이다. 일어나 가장 먼저 몸을 움직인 나는, 이제 어떤 멘털 트레이닝에도 버틸 힘을 땅에 꽂았다. 이제 나는, 뭐든 할 상이다. 하다못해 늑대 모피를 입고 대감집에 들이닥치는 일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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