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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뉴 Aug 24. 2023

육퇴 후 맥주는 어쩌다 낭만이 되었을까

그래 이 맛이야~! 의 마법에 걸려버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육퇴 시간'이 왔다. '육아 출근', '육아 퇴근'. 썩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밤잠에 들고 진정한 자유시간이 되는 순간을 이렇게 극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는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 운동 태세를 갖추곤 했다. 하지만, 미처 육아 퇴근을 하기도 전 회사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불시에 찾아오는 감정이 있다.

'아... 술 먹고 싶다...'


일러두건대, 난 원래 그리 술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대학시절 선배들의 번개 연락에는 응답하지 않기가 일쑤였고, 졸업 후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돈이 있으니 먹고 마시던' 반짝 시기를 지나 남편을 만나고서도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면 별로 음주의 유혹을 느끼지 못했다. "맨 정신으로 만나도 재미있는 친구들인데, 왜 굳이 술을 마셔야 하지?" 나는 늘 술 없이는 친구를 만나지 않는 남편이 이상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달라졌다.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불맛 육아를 하고 나면, 나의 타오르는 스트레스를 꺼뜨릴 만한 탁월한 것이 필요했다.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도록 운동을 해도, 친구를 만나 목이 쉬도록 수다를 떨어도 해소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의 울음 데시벨이 높아질수록 음주의 참맛을 알아갔다. 남편과 은밀히 눈빛을 교환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아이들의 눈을 피해 '오늘은 맥주? 오늘은 막걸리?' 빠른 속도로 주종을 고르고, 여유 있는 사람이 배달 어플로 그날의 안주를 주문했다. 그리고는 기다리는 것이다, 그날의 안식을.


술쟁이가 되어 버린 엄마


일주일에 한 번 첫째와 편의점에 간다. 매일매일 방앗간에 가고 싶어 하는 첫째를 위해 정한 우리의 약속이다. 아이가 과자 코너를 면밀히 살피는 동안, 나는 총천연색의 맥주가 들어찬 냉장고를 살펴본다. '아, 저거 지난번에 마셨을 때 참 맛있었지...' '오, 저건 신제품인데? 한 번 마셔 봐? 아니... 역시 늘 마시던 거?' 가끔은 눈요기로 끝나지만, 또 다른 가끔은 결국 2000ml의 맥주 캔들과 함께 한다. 비닐봉지도 받지 않는 나는, 출퇴근용 백팩에 맥주 캔 4개를 차곡차곡 쌓아 아이의 손을 잡고 귀가한다.


아! 요즘 맥주는 왜 그렇게 예쁜 걸까? 담배는 해가 갈수록 못생기고 잔인해져만 가는데, 맥주 냉장고를 볼 때면 마치 팬시점에 온 것만 같다. 꽃이 그려진 맥주,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맥주, 멋들어진 노을이 그려진 맥주까지! 자주 마시던 해외 맥주만 고집하던 나는, 그렇게 디자인에 이끌려 새로운 주종을 계속해서 맛보고, 신제품 맥주를 유심히 체크했다. 그리고는 퇴근 후 만원 버스에서 이렇게 떠올리는 것이다. '아, 그때 그 맥주 진짜 먹어보고 싶은데!'


운동과 맞바꾼 음주, 음주와 손잡은 체중


두 번의 출산. 각각의 출산은 내게 10kg 언저리의 체중 증가를 가져다주었고, 나는 빠른 속도로 몸무게를 되돌려 놓았다(심지어 출산 전보다 몸무게가 더 빠지곤 했다). 집이라는 감옥에 갇혀 옹알대는 아이와 함께 보내는 것은 나를 우울증에 빠지기 충분한 기회를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육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비교적 스스로에게 알맞은 듯했다.


하지만 복직 후에는 달랐다. 저체중에 가까운 몸무게로 회사로 복귀한 뒤, 난 아주 빠른 속도로 육퇴 후 맥주의 유혹에 시달렸다. 내가 이렇게 혹독하게 회사에서 하루를 보냈는데, 집에 가서 또 육아를? (치솟는 혈압) 고혈압엔 맥주가 딱이다. 아니라고 해도 소용없다. 넘치는 스트레스를 몇 번이나 살얼음이 낄 듯 차가운 맥주로 식히곤 했으니까. 그렇게 나는 복직 후 1~2kg가량을 넉넉히 찌곤 했다.


회사의 스트레스는 회사 밖에서 풀 수 있지만, 집안의 스트레스는 집 밖으로 나가서 풀기가 어찌나 어려운지, 나는 자연스럽게 집술을 익혔다. 우습게도 대부분의 경우 운동을 쉴 때면 늘 술을 마셨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그저 그러려니 하며 쉬면 될 것을, 저녁의 여유가 어찌나 달콤한지, '오늘이 아니면 언제 마셔!' 그렇게 나는 운동을 하며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며 운동을 했다. 뒤에서 팽팽히 부여잡은 고무줄처럼 몸무게는 위태롭게 유지했지만, 그럼에도 하루 끝, 야식을 곁들인 술은 어쩔 수 없이 다음날 멋진 몸무게 증가를 보여주곤 했다.


왜 육아 위로는 술을 곁들여야 더욱 달콤한 것인지


"오늘도 정말 수고했어." 육퇴 후 맥주의 건배사는 거의 같았다. 오늘도 고생한 우리. 회사에서 치이고, 아이들에게 치이고. 머리카락이 솟구치도록 너덜너덜해진 우리에게 탄산이 톡톡 터지는 맥주를 부딪히면서 나누는 인사말만큼 와닿는 것은 없었다. 맥주 한 모금에 회사의 고충, 또 한 모금에 첫째의 고충, 세 번째 모금에 둘째의 고충을 나누다 보면 한 캔은 금세 동이 났다. 적당히 몽롱해진 상태로 남편과 함께 우린 너무 하고 있고,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은 우리 말고 또 없다며 한바탕 자화자찬을 하다 술자리가 끝난다. 아이들을 재우고 부랴부랴 술을 마시다 보니 항상 9시가 넘어 술자리가 시작됐고, 우리는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술을 들이켜고 잠자리에 누웠다.


물론 내게도 운동도, 음주도 하지 않는 저녁이 있다. 그런데 그런 날이면, 남편과 소파에 한껏 널브러져 서로의 시간을 보내기에 바쁘다. 한 잔의 곁들임과 함께 나누는 위로의 말도 없고, 서로에 대한 격려의 말도 현저히 줄어든다. 분명히 휴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맞지만, 무언가 외롭고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게 우리는 또다시 육퇴 후 맥주 한 상을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맥주는 낭만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새벽 4시 30분 기상을 위해서 제일 먼저 할 것은 당연히 일찍 잠이 드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전날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다. 새벽 운동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훨씬 컸기에 육퇴 후 술은 자연스레 잠시 미뤄 두게 되었다. 가끔 먹고 싶은 충동이 들 때면 토요일 저녁에 먹어야지~ 하고 생각을 미뤄두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술을 먹고 싶다는 사실은 오히려 옅어졌다.


술을 적게 먹게 되는 것은 좋았지만, 그러다 보니 저녁 시간의 낭만은 점점 줄어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이 잠들기를 남편과 작당하며 기다리던 느낌, 아이들 몰래 먹던 맥주와 맛있는 안주, 그리고 늦은 밤 두런두런 나누던 이야기도. 이상하게 그 모든 것은 적당한 알코올과 은은한 몽롱함 속에서야 비로소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아이를 키우면서, 자유시간이 생기면 하고 싶은 일을 항상 '퇴근 후 한강에서 맥주 마시기', '야외 테라스에서 맥주 마시기'를 꼽았다. 내일의 내 안위를 걱정하지 않고 노상에서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그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어둑어둑한 집안 거실에서 남편과 맥주를 곁들이면서도, '다음번에는 그때 그 옥상 주점에 들러보자'라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나누었다.


'키친 드링커'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다. 육아 스트레스, 남편과의 스트레스를 차마 밖에서 풀지 못하고 남몰래 혼자 술을 마시는 주부 알코올 중독자를 지칭하는 단어라고 한다. 나와 정확히 들어맞는 단어는 아니었지만, 똑같이 집을 나가지 못한 채 집안 구석에서 술을 마시는 육아 여성이라는 점에서 이상하게 공감이 갔다. 딱히 술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는데, 육아를 하며 어느새 술을 좋아하게 되어 버린 나. 술이 있어야 스스로가 '다른 젊은이'들과 같은 선상에 놓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항상 이성적으로만 있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술에서 위로를 받고 싶다고. 하지만 이 신조어가 결코 도덕적인 유래를 갖지 않은 것을 안다. 결국, 육아를 피하고, 오늘의 고됨을 피해 맥주를 찾는 것은 결코 낭만이 아니라는 것도.


오늘 밤이 되면, 나는 다시 맥주에서 찾는 거짓 낭만 대신, 다음날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운동기구에 오르는 상쾌함을 꿈꾸며 잠들 것이다. 어젯밤에 내가 맥주 몇 캔을 비웠는지, 또 얼마나 늦게까지 음식을 먹었는지 후회하는 대신, 좀 더 건전해질 내 모습을 즐겁게 기대할 것이다. 낭만은, 분명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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