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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뉴 Aug 30. 2023

육아 체력은 왜 항상 부족할까

육아는 체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루의 끝, 보람을 느끼는 지점은 언제일까? 새벽 운동을 끝냈을 때? 드디어 퇴근을 하고 회사 문을 박차고 나갈 때? 아이가 둘 있는 나의 입장에서는, 단연코 아이들이 모두 잠이 들고 났을 때다.

남편의 야근으로 하루의 기울임이 늘어지기 시작하는 지점, 탄산수로 아이들과 자조가 뒤섞인 건배를 하고, 온갖 좋은 말 험한 말을 뒤섞으며 밥을 먹이고, 막간을 틈타 첫째의 공부를 하고, 목이 터져라 책을 읽은 다음 겨우겨우 씻겨 마침내 아이들이 잠든 방을 몰래 나오고 나면, 그제야 속으로 생각한다.

'아,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

 

4시 55분의 운동, 5시에 마주친 그들


모든 날을 같은 초침으로 세팅해 놓아도, 모든 날이 같을 순 없나 보다. 똑같은 시간에 비슷한 자세로 일어나고 엇비슷한 루틴으로 하루를 준비하지만, 그렇다고 어제 좋은 맘이 오늘 좋지 않고, 어제 나쁜 맘이 오늘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그렇기에 매일의 기록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전날 살짝 느낀 피로함이, 다행히 금세 가신 듯했다. 준비운동에 수분 섭취까지 일사천리. 이제 운동을 시작할 일만 남았다.

호기롭게 올라간 러닝머신. 몽롱한 기분을 해소하기 위해 기분 좋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5분 여가 지났을까, 또다시 익숙한 인기척, 익숙한 소리...

아이들이 또 일어났다.

새벽 4시 30분에 애들 몰래 운동해 보겠다고 일어났더니, 새벽 5시에 귀신같이 들키는 내 인생...

제법 마피아스럽지 못하다.


엄마 너무 피곤한데? 물론 방금 전에 운동해서 그런 건 아니고...


새벽 5시에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온 첫째가 화장실 불도 끄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한 시간 내내 화장실 불빛에 시달렸고, 그 와중에 5시 35분에 마치 확인이라도 하는 듯 다시 나와 거실을 기웃기웃 거리다 (화장실의 불은 여전히 내버려 둔 채) 방 안으로 들어갔다. 러닝머신의 기계가 멈추는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방문을 열고 빼꼼히 얼굴을 내민 채 "나가도 돼요?"라고 묻는다. 여기서 "나오지 마!"라고 하는 선택지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나의 육아 출근은 새벽 5시 55분부터 시작된다.

참 이상하게도, 그렇게 하고 싶은 운동을 해보겠답시고 새벽 4시 30분에도 일어나는 주제에, 아이들이 칭얼대고 말을 걸기 시작하는 순간 지금 시각이 몇 시인지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한다. 새벽 6시도 되지 않은 시각부터, 출근 시간을 생각해도 매일 아침 2시간을 아이들과 지지고 볶아야 한다. 이럴 땐 도망칠 수 있는 회사가 있는 게 다행이란 생각까지 든다. "엄마, 배고파요, 빵 주세요." "어제 먹었던 그건 싫고 다른 거 주세요." "엄마, 어제 다친 곳이 아직 아파요." 물론 내 귀는 두 개이니 두 입이 말하는 걸 한 번에 다 들을 수는 있겠지만, 입은 하나이니 두 명에게 동시에 대답하는 건 불가능하다. 제발 조용히 해 주겠니? 엄마 숨 좀 돌리고... 물론 아이들은 저마다의 귀가 두 개씩 있음에도 내 말 한마디는 절대 들어주지 않는다.


아무리 체력을 길러도 육아 체력은 늘지 않는 나, 비정상인가요?


새벽 5시 55분, 운동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의 밥을 준비한다. 남편이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그래봤자 20분 정도이지만). 어제와 같은 새벽, 어제와 비슷한 메뉴, 옷차림조차도 어제와 비슷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역시 어제와 또 다른가보다. 그리고 나의 마음 또한 그러한지, 괜히 아이들이 내게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고깝게 들린다. "엄마, 어제 먹었던 빵 말고 다른 거 주세요." "다른 거 없어, 그거 먹어." "빵 말고 밥 주세요." "꼭두새벽부터 엄마 밥 못 해." "아빠는 밥 해주시잖아요." "엄마는 아빠가 아니라서 안 돼." 끝도 없이 이어지는 아이들의 요구를 하나하나 쳐내고 있다 보면 왠지 내가 나쁜 엄마 같기도 하지만, 세상의 모든 좋은 엄마들이 죄다 새벽 5시에 일어난 아이들을 케어하고 있는 건 아닐 테니 이 정도면 나도 나쁜 엄마는 아닐 거라고 애써 위안 삼아 본다. 도저히 멀어질 기미가 없는 기상 시간, 나는 생각한다. '이 정도 운동했으면 애들이 뭐라든 척척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내가 너무 약한가?' 하지만 스스로가 생각해도 내 생활 체력은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니, 이쯤 되면 내가 만드는 체력과 육아에 쓰이는 체력은 아예 다른 개념이 아닐지 연구가 필요하다.

새벽 운동 후 생겨나는 에너지로 아이들의 오전을 준비하고, 회사에서 출근하여 그나마 아이들에게 벗어난 뒤 가까스로 약간의 육아 에너지를 만든 다음, 퇴근과 함께 모두 소모한다. 어쩐지 여남은 에너지가 전혀 없는 듯한 느낌. 운동을 하며 아이들을 좀 더 활기차게 돌볼 수 있길 바라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해서,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을 더 잘 돌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운동을 할 땐 몇 시간을 해도, 또는 몇 시간을 들여야 해도 그저 활기찼는데, 그렇게 충전한 힘으로 아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자면, 1시간에 걸쳐 충전해 둔 에너지는 고작 10분 만에 소진되어 버리는 느낌이 든다. 이거... 너무 비효율적인 거 아닌가?


애초에 육아 체력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전 국가대표 선수 박지성 선수도 한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다. "축구 풀타임 출전보다 육아가 더 힘들어요." 야구선수 류현진 선수조차 "야구보다 육아가 더 힘들다"라고 말했다. 그래, 프리미어리거에게도, 메이저리거에게도 육아는 힘든 것이다. 그런 육아가, 나처럼 방구석 운동을 하며 만들어진 체력으로 감당이 될 것인가 하는 의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그렇기에 사실 '이렇게 열심히 운동하는데, 왜 항상 너희를 보는 게 힘이 들까?' 하는 죄책감 섞인 반성은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3시간 등산을 해도 1시간 육아는 어렵고, 10시간 하이킹을 해도, 3시간 독박육아는 죽을 맛이다. 애초에 내가 한 시간 여의 운동을 통해 생산해 내는 체력 자체가 육아에는 사용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 육아는 체력이 아니다. 정신력이었던 것이다!


남편의 야근, 퇴근 후의 정신력 육아(?)


이른 새벽부터 아이들에게 툴툴댔던 것이, 사실은 체력 부족의 문제가 아닌 정신력 부족의 문제라고 생각하니, 조금 위안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운동을 열심히 하면 자연히 아이를 돌보는 힘도 길러지겠지? 라는 예측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애초에 내가 아무리 운동을 해도, 울고 있는 아이, 칭얼대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조금 전의 기세는 사라지고 힘든 표정을 감출 수가 없다. 다만 체력 문제를 벗어나 좀 더 내면적인 문제로 들여다보면, 해결책이 보일 것 같았다.

아이들의 끊임없는 질문, 대화를 어떻게 하면 투덜대지 않고 좀 더 친절하게 대답해 줄 수 있을까? 끝이 없는 밥투정에 어떻게 반응하면 큰 소동 없이 식사를 끝낼 수 있을까? '아 아까 운동도 했는데, 이건 정말 못 견디겠다...' 또는 '이럴 땐 맥주가 딱인데...' 이런 생각 대신, '단답일지라도 부드럽게 말해줘야겠다' 또는 '아이들과 함께 탄산수로 건배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로 했다. 물론 하나의 정신 승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좀 전에 얘기했듯 아무리 체력을 열심히 길러도 마음가짐이 되어 있지 않으면 육아는 너무 힘들고, 힘들다는 마음만 안고 가기에는 세월이 너무 기니, 이렇게라도 승리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결국 체력을 길러야 정신력도 생긴다는 것


아이들을 재우고 나니, 소진되었던 체력도,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정신력도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다. 이제야 주변이 보이고, 오늘 하루를 마무리할 힘이 생기는 듯하다.

아이를 돌보는 데에는 정신력이 필요하지만, 버티는 정신력을 갖기 위해서는 결국 체력이 필요하다. 즉 체력이 있어야 정신력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체력이 있는 사람이 오랫동안 인내할 수 있는 것처럼. 운동을 통해 만들어낸 체력은 나를 위해 써야겠다. 그리고, 아이들을 조금 더 온화한 눈으로 바라보기 위해, 새벽에 일어난 아이들에게 너무 퉁명스럽게 대하지 않기 위해 조금만 더 내면의 힘을 길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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