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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뉴 Aug 31. 2023

아이를 원망하지 않으려고 한다

엄마를 따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난 아이를 원망하지 않으려한다

이 글은 나의 아이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쓰는 글이다. 이렇게 글로 남겨두지 않으면 난 계속해서 나의 아이를 원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시간, 나의 여유를 자꾸만 뺏어가는 나의 아이(들). 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이의 사정, 어른의 사정


첫째 아이가 3살 정도 되었을 때, 아직 둘째가 없을 때, 분리 수면을 시도한 적이 있다. 아이가 잘 잠드는 것을 보고 안방에서 남편과 내가 자고 있는데, 5시쯤 되자 아이가 달려왔다. "조금만 더 자야지.." 그 뒤로도 아이는 계속해서 안방을 찾아 달려왔다. 3시 30분, 2시... 1시에도 달려오고, 애써 재워 두어도 하루에 두 번씩 안방을 내질러오는 아이를 보며 우리는 분리 수면을 포기했다. 지금은 둘째와 함께 재우면서 (겨우겨우) 아이들만 재우는 데에는 성공했다.

첫째는 원래부터 잠이 없었다. 낮잠을 자지 않겠다고 1시간을 울다가 겨우 잠이 드는 게 일쑤였다. 아이가 더 어릴 땐 말을 못 하니 애가 기상하는 5시~5시 30분부터 우리는 비상사태였다. 아이가 머리 끄덩이를 잡아당기면 어른은 속절없이 일어나야만 했다. 첫째가 200일이 되자마자 내가 복직해 다시 맞벌이가 된 우리 부부는 정말 고질적인 수면 방해에 시달렸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악명 높은(?) 첫째 이야기를 하느라 둘째의 사정은 적당히 둘러대곤 했지만, 잠이 얕기는 둘째도 만만치 않았다. 오빠인 첫째에 비해 낮잠도 잘 자고 아침잠이 수월한 듯했지만, 30개월이 지나면서 거의 매일을 수면 2~3시간 뒤에 깨서는 한 시간이 넘도록 큰 소리로 울었다. 신생아도 아닌데 왜 그렇게 자다가 일어나서 미친 듯이 우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아이가 이유도 없이 너무 울어대니 사정을 모르는 어른은 지쳐만 갔다. 아이를 쫓아내기도 수십 번, 어르고 달래기도 수십 번. 해가 바뀐 지금은 자고 일어나 우는 것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밤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 한 번씩 깨 안방 앞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데려다줘야만 한다.


그렇게, 나와 남편은 첫째가 태어난 이래 만 5년 6개월을 두 아이에게 수면 시간을 내어주며 살고 있다.


너를 피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기로 결심했는데, 너의 기상은 자꾸만 빨라진다


오늘로써 내가 새벽 기상을 시작한 지 정확히 3주를 채웠다. 새벽 4시에 일어났던 하루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아이들이 일어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매일매일 '오늘도 애가 깼고요, 어제도 깼는데 내일도 깰 것 같네요!'를 쓸 수 없으니 과감히 생략하거나 반대로 과장되게 말하곤 하지만, 사실 아이가 자꾸 일어나는 것은 나에게 큰 스트레스며, 내가 이 습관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하고 돌이키게 만든다. 귀신같이 잠귀가 밝은 아이들은 바깥의 인기척에도 문을 박차고 나오고, 본인들의 잠이 얕아짐이 무섭게 몽유병 환자처럼 일어나 안방에서 흐느끼거나 중얼거린다. "오늘은 제발 애들이 안 왔으면 좋겠어." 남편과 나는 매일 밤 그렇게 기도하지만, 사실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다.


이렇게 꾸준히 수면 방해에 시달리면서 어떻게든 내 삶 살아보겠다고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난 건데, 어떻게...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제 새벽 기상은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벽 4시 35분이었다. 이제 막 준비 운동을 시작했던 참이었다. 이전에도 새벽 4시 10분에 일어났던 적이 있었던 아이이니 스스로는 별생각 없었을지도 모르겠지.

"목이 아파요." 목이 아프지 않아도 일어났을 아이이지만, 어제 감기 기운이 있다고 했던 애가 마침 일어났고, 인기척이 있고, 그 와중에 목도 칼칼하니 일어났나 보다(그야말로 환장할 콜라보다). 나는 애써 못 들은 척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운동 중이었고, 지금 시각은 새벽 4시 30분이 겨우 지났고, 나의 아이는 이제 내가 맨발로 케어해야 할 연령대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게 아이는 남편을 깨웠고, 남편은 어제 야근으로 10시가 한참 지나 들어왔고, 나는 계속 모르는 척하고 있고, 아이는 계속 말을 거니 남편도 폭발하고 나도 폭발했다...


"제발 그만하라고!! 지금이 몇 시야!!"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으면 괜찮았을까? 아픈 아이를 보듬어줘야 했을까? 난 잘 모르겠다. 결국 새벽 5시도 되기 전에 4명밖에 되지 않는 가족들이 거실 한가운데에 모였고 분위기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나의 기분은 시궁창이었다. 내가 일어나니 첫째가 일어났고, 첫째가 아빠를 깨우는 소리에 둘째가 함께 일어났다. 결국 또 원인은 나였다. 내가 인기척을 내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내가...


역시, 새벽에 일어나는 일 따윈 그만해야겠어.


나에게 조금의 틈도 주지 않는 네가 너무 원망스럽다


신경질적으로 운동복을 벗어버리고 잠옷으로 다시 갈아입었다. 졸렸는데 차라리 잘 됐어. 새벽 기상이 다 뭐야 잠이 짱이지... 그렇게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1시간 여의 시간 동안 간헐적으로 인기척이 들렸다. 그렇게 깬 아이들이 잠을 잘 리가 없었다. 내가 운동하는 새벽 5시에서 6시까지도 그저 뜬 눈으로 기다리는 아이들이었다.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건 나와 그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밉다. 새벽 5시에 일어나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는 네가,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면 새벽 4시 10분에도 일어나는 아이가 너무 밉다. 이미 아이들에게 새벽을 내어줬는데, 꼭두새벽, 이른 새벽, 아니 그저 모든 나의 밤 시간을 빼앗아버리는 네가 너무 밉다. 굳이 새벽 기상을 결심하지 않았을 때에도 이미 나의 수면 컨디션은 엉망이었다. 그런 엉망인 컨디션을 새벽 운동으로 겨우겨우 세워 내고 있는 중이었는데, 더 이상 새벽 운동 "따위" 하기 싫게 만들어지는 네가 너무 밉다.


새벽 6시가 되었다. 아이들은 한 시간 전의 소동이 기억이라도 나냐는 듯 졸졸 달려와 또 방문 앞에서 소리쳤다. "6시예요~" 도대체 우리 집에 누가 저렇게 고장도 안 나는 알람을 두 명이나 둔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새벽 기상을 결심했던 3주 전을 떠올렸다. 그때의 나는,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운동할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가슴이 설렜다. 온전한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기뻤고, 늘 좋아하던 새벽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행복했다. 아이들이 자꾸만 깨서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그래도 운동이 끝나서 졸졸 아이들이 나오는 것을 반기는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오늘 하루도 해냈다는 자기 효능감을 잊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첫째의 난동으로 홧김에 운동을 관두고 침대에 누울 땐 조금 기뻤다. 그래, 이제 그만해야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집에 있는 사람들 다 깨우면서... 하지만 그 감정은 오히려 금방 사라졌다. 오히려, 회사에 출근해 멍하니 모니터를 보고 있자니 조금씩 아쉬움이 밀려왔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또 운동해야겠다. 아이들이 일어나면... 그건 어쩔 수 없지 뭐.

스스로에게도 놀라운 감정이었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은 더 이상 믿지 않으니까


"네가 일어나는 건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사람을 깨우는 건 잘못이야!"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다. 매일매일 주문처럼 하는 말이지만 놀랍게도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매일매일 나와 남편을 깨우고, 또 매일 아침 우리에게 사과한다. "깨워서 죄송해요."라고.

"네가 아침형 인간이라서 애들도 엄마 닮았나 봐~" 그 말은 칭찬도 욕도 아니다. 이젠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울 정도이고, 더 이상 듣고 싶은 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덮어놓고 부정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그래, 유전이니까! 우리 아빠도 아침형 인간이고 나도 아침형 인간이니까 내 자식이 아침형 인간인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 말인즉슨, 절대 시간은 해결해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 집 애들은 신생아일 때도, 걸음마하는 아기일 때도, 쫑알이 영유아일 때도 계속해서 (미친) 새벽에 일어났으니까. 초등학생이 되면 괜찮아지겠지? 하지만 난 알고 있다.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을. 유치원생이 되면 괜찮아지겠지? ~가 되면 괜찮아지겠지? 하지만 하나도 괜찮아지지 않았고, 해결해 줄 것이라 믿은 시간은 내 나이 삼십 대 중반이 되도록 찾아오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병적인 수면부족에 시달린다. 아이를 피한답시고 이 시대의 자기 계발러처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고 있지만 그 시간조차도 진드기 같은 아이들의 기상 시간을 피할 수 없어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애들이 더 크면 좀 더 자겠지'라는 생각을 관두련다. 그러기엔 나는 너무 많은 세월을 기대감으로 고통받았고, 좌절감으로 머리를 짜맸다. 이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련다.


그래서, 내일도 난 다시 새벽 기상을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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