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 러닝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겨우 7시가 된 시각이었는데, 아이들은 TV를 보고 있고, 그 옆에서 남편이 한껏 퀭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우리집에서는 평소 주말 아침 8시까지 TV를 틀지 않는다). 알고 보니 어제 하루종일 몇 번이나 둘째가 깨어 안방으로 달려온 탓에 결국 남편이 아이들 방으로 가 잠을 청했는데, 아이들의 뒤척임과 둘째의 끊임없는 칭얼댐에 거의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했다. 너무 급하게 일어나느라 침대에 남편이 없다는 사실도 모르고 나갔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어차피 애들 TV 보니까 좀 누워 있어. 내가 얼른 씻고 애들 옆에 있을게. 남편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안방으로 들어갔고, 곧 빠른 속도로 잠에 드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느긋하게 버스를 타고 귀가했는데, 집에 돌아온 나는 젖은 운동복을 벗을 시간도 없었다. 아이들이 어지간히도 칭얼댔는지, 먹던 음식들이 식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남은 아침을 먹이고, 서둘러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내가 스스로를 다듬는 동안, 누군가는 희생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우리 부부의 역할은 마치 수평자 같다. 한 사람의 짐이 덜어지면 누군가는 그만큼의 짐을 짊어지고 있다. 서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선 자연스럽게 나의 스케줄을 비워야 한다. 남편의 야근이 나에게 한 보따리의 짐이 된다면, 나의 야외 운동이 남편에게 또 다른 짐이 된다. 그렇기에 한 번의 약속도, 한 번의 운동도 내 마음이 닿는 대로 정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선택할 수 없는 야근에 대해 늘 미안해했다. 나는 그렇게 불시에 찾아오는 남편의 야근 시간 동안 육아를 도맡아 하는 대신 운동과 다른 일로 육아를 비우는 것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그렇다곤 해도 강제되는 야근과 선택적 외출을 동일한 무게로 둘 순 없었다. 나는 개인 일정을 점점 더 줄였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 부모가 되고, 우리는 부모를 관둘 수 없다(그래선 안되기도 하고). 그렇기에 개인의 욕심을 죄 억제하고 살 순 없었다. 남편과 나 모두 점진적으로 대외 시간을 늘리게 되었다. 남편의 경우 대부분이 늦은 저녁이었고, 나의 경우는 대부분 이른 아침이었다. 문제가 있었다. 저녁 시간의 경우 퇴근 후 육아로 인한 피로도는 있을지언정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자유시간이 되지만, 아침 시간의 경우 내가 늦게 자리를 비우고, 늦게 돌아오면 올수록 육아 시간은 점점 더 커졌다. 일찍 집을 비워도 집안 사정에 대해 전전긍긍하게 되는 이유이며, 내가 주말에도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성공한 사람은 육아를 하지 않는다
최근 '이른 기상'에 대한 자기 계발서를 종류별로 읽고 있다. 오래간만에 스스로의 결정에 대한 확신과, 조언을 얻기 위해서이다. <아침형 인간>, <모닝 루틴> 그리고 <나의 하루는 새벽 4시 30분에 시작한다> 등 이른 새벽에 기상하는 자들의 각종 경험담과 팁을 탐독했다.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새벽에 어떻게 기상했고, 어떤 시간을 보냈으며, 기상을 힘들어하는 이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일찍 일어날 수 있을지를 소상히 기록했다. 하지만 한 가지 나에게 절대 적용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그들은 자신들이 일어나는 시간에 맞추어 거의 모든 시간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 보낸다는 것이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명상을 하고, 간단히 운동을 하며, 식사를 한 뒤 글을 쓴다(?). 그런 시간이 된다고요? 내가 아무리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도, 나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은 아무리 긁어모아도 겨우 1시간 30분이며, 그마저도 이미 깨어버린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차지하기 일쑤다. 예전엔 중년 여성의 체력 향상 이후의 성공담 에세이를 소개받은 적이 있었다. 결혼한 여성의 자기 계발 성공담? 순간 솔깃했지만 나는 심지어 그 책을 읽지도 않았다. 그렇다. 그녀 역시 육아를 하지 않았다. 아이는 친정이 도맡았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비뚤어진 나의 열패감은, 각종 유명인으로부터 주변인들에게까지 적용되었다. 하루 12시간을 연구하며 성공한 과학자? 애는 누가 키워? 부인이 성심성의껏? 출산 후 3개월 만에 돌아온 방송인? 애는 누가 키워? 프리랜서인 남편이 잠시 일을 쉬면서? 옆 자리 대리님이 출산휴가만 쓰고 돌아오셨다고? 그럼 애는요? 아... 친정 옆으로 이사 가셨다고요.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육아로 인한 타임로스는 일종의 약점이 되었다. 수면시간과 업무시간을 제외한 모든 내 시간은 육아에 투자되어야 마땅했고, 그러지 않는 이들을 부러워했다. 나는 아직까지 하고 싶은 게 더 많은데, 정말 문자 그대로 '시간이 없었다'. '애가 없었다면 내 인생 성공시대였을텐데(?)' 이런 생각은 당연히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계발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간조차도 부족한 것은 늘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세월이 흐르기를 기다리기엔 나는 여전히 젊으니까
아이가 다 크면 ~해야지,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해야지, 세월을 볼모로 한 버킷 리스트는 이미 양피지를 한가득 채울 만큼 차 버렸다.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세월이 지나 아이들이 자란다면 나는 늙을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이 젊음뿐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어제의 나는 오늘보다 젊었으며, 오늘의 나 또한 내일의 나보다 젊을 것이기에, 나는 더 이상 나를 위해 쏟는 시간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세상의 자기 계발서가 아무도 '당신이 스스로를 계발하고 있을 때 애를 어떻게 할 것인지' 알려주지 않더라도, 내가 열심히 땀을 흘릴 때, 또는 어딘가에서 지식을 흡수하고 있을 때, 또 아니면 그저 지인들을 만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을 때 나의 영원한 파트너의 안녕이 걱정되더라도, 젊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간절하다. 다시금 안방에서 쥐 죽은 듯 잠든 남편에게 다짐한다. 나의 젊음을 지켜줘서 고맙다고, 그대의 젊음 또한 내가 지켜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