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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뉴 Aug 16. 2023

진새벽엔 남남이면 좋겠어

오롯이 소망하는 혼자만의 새벽 시간

마이마운틴의 계기판을 뜯었다.


새벽 내내 삑삑거리는 <마이마운틴>의 버튼음이 못내 거슬렸던 나는, 결국 해당 회사에 문의글을 넣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새벽에 운동을 하는데 아이가 기계음에 자꾸 깨네요. 혹시 소리를 줄이거나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반나절이 지나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고, 문의글을 확인한 담당자였다. "죄송하지만 소리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고요, 계기판의 스피커에 스티커를 붙이면 소리가 좀 덜 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담당자는 친절히 속을 뜯은 계기판의 사진에 동그라미까지 쳐 보내주었다.


"계기판을 뜯어야겠어." 출장비가 4만 4천 원이라는 이야기에 역시 직접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혹시나 뭔가 잘못 건드려 멀쩡한 기기가 망가지면 어떡하나 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속전속결로 드라이버로 적지 않은 볼트를 빼냈다. 사진과 다른 계기판 모양에 남편과 나 모두 당황했지만, 비슷해 보이는 부품이 있었다. 테이프를 네 겹으로 붙여 위에 얹었다. 볼륨 조절이 되지 않으니 최대한 많이 붙이고 싶었지만, 얼마나 붙여야 기기에 최대한 자극이 가지 않을지도 알 수 없었다.


다시 전원을 꽂은 뒤 남편이 안방, 그리고 아이 방에서 기계 소리가 얼마나 줄어들었나 확인해 보기로 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맨발로 러닝머신을 걸으며 대중없이 버튼을 눌렀다. "삑- 삑-" 입을 막고 말하는 듯 막힌 기계음이 들렸다. 아주 소음을 막을 순 없었지만, 그래도 볼륨을 3 정도는 줄인 듯했다. 이걸로 된 걸까? 이로써 새벽에 아무도 깨지 않고(=나만 깨는) 보낼 수 있게 된 걸까? 무엇이든 해보아야 아는 법이다.


문제는 네가 일어날 수 있느냐가 아니야, 다른 사람을 깨우지 않을 수 있느냐인 것이지


나는 잠귀가 밝은 편이다. 남의 기척에도 잘 깨고, 그만큼 아침 기상에도 강한 편이다. 나의 기질이 유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애를 둘 낳고서야 알았다. 성별이 다른 두 아이들은 각자의 성향은 있었지만 기질은 원체 비슷해서, 하나가 부스스 일어나면 마치 분신처럼 따라 일어나곤 했다. 나는 아이를 낳고 알람의 필요성을 잃어버렸다.


새벽 4시 30분의 기상은 의외로 상쾌하다. 나는 내가 이렇게 하루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것은, 내가 벌써 10년 가까이 혼자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누군가의 기척이 있었고, 누군가를 기다려야 했다. 집이 비어 있는 이유는 곧 채워지기 위해서였고, '혼자'가 될 방법은 스스로의 부재로 인해서만 가능했다.

그러한 사실이, 그저 '일찍 일어나는 것'만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나에게는 적잖이 신선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장애물이 있었으니, '자꾸만 깨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깨는 것을 마구 채근할 수는 없었다. 각종 육아서에도 실수와 잘못을 구분하여 훈육하도록 가르치는데, '일찍 일어나는 것'은 실수도 잘못도 아니기에 사실 나무라기에도 머쓱한 부분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두 가지 대안이 있었다. '깨우지 않는 것.' 또는 '깨어나도 나를 방해하지 않을 것.' 가장 베스트는 역시 전자였다.


전날의 작당(?) 덕에, <마이마운틴> 은 이전보다 훨씬 작은 기곗소리를 냈다. 문득, 이 기계는 사실 가정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갖가지 음악과 소음으로 가득 찬 헬스장에서, 운동기계들은 굳이 묵묵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무엇보다도 새된 소리를 통해 사용자에게 존재감을 알려야 했으리라. 아무리 인터넷에서 '러닝머신 소음 줄이는 법' '운동기구 음소거'를 검색해 보았자 '층간소음 해결법'에 대한 내용만 나오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이 문제는 정말 나 혼자만의 고민 거리였겠구나, 하지만 누군가가 같은 고민을 갖고 있다면 꼭 얘기해 줘야겠다. "계기판을 뜯으세요!"


하지만 어제의 나와 남편이 멀쩡한 기계를 뜯으며 고군분투한 결과는 딱히 좋지 못했다.

(어차피) 내 자식은 또 일어났으니까. 그것이 운동기구 때문이든, 아니든.


육아 방임, 아니고요? 자기 계발 중입니다


나는 종종 이런 상황에 내 얼굴이 어떨까 생각을 해 본다. 마치 만화 속 주인공처럼 과장되게 턱이 떨어져 나가는 표정을 짓고 있을까? 미간에 내 천자가 그려지도록 엄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 무엇이 되었든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와 나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을 테니까.


"화장실 가고 싶어 일어났어요." 아이는 내 눈치를 살피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아이를 자극시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면 또 아이가 울어버릴 테니까. 그럼 내가 또 소리를 질러야 할 테니까. 아이는 의외로 얌전히 화장실을 들렀다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요즘 내가 매일 주문처럼 외웠던 부탁 때문일 것이다. 다시 자야 할 시간이야. 깨어 있을 시간은 아니라고.

10분 여가 지났을까? 또다시 인기척이 들렸다. 미친 듯한 기시감. 이젠 첫째와 둘째가 함께였다. 첫째가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적당히 손을 흔드는 수신호로 대신했다. 첫째와 둘째가 차례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았고, 아주 느린 속도로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놀랍게도, 집 안이 다시 적막해졌다.


아이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새벽엔 엄마를 모른 척해도 돼. 엄마가 대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인사 안 해도 되니까 혹시나 나오고 싶으면 그냥 나와서 가만히 있어. 그것은, 부모로서가 아닌 개인으로서의 부탁이었다. 그저, 혼자만의 시간이 갖고 싶다는 소망. 미취학 아동을 키우면서, 몇 번이나 이것이 정말 옳은 행동인가 고민했다. 학대인가? 방임인가? 나는 '깨어 있는 아이를 무조건 케어해야 할 의무'가 있는 부모인가? 누구에게도 해결방법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마침내 나는 아이에게 인정을 요구하는 것을 결심했다. 엄마의 시간을 돌려줘. 가끔은 서로 남남이어도 괜찮으니까.


혼자 있는 시간은 갖기 어렵겠지만, 혼자만의 시간은 갖게 해달라고


오전 5시 55분, 운동이 끝났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나는 거실 불을 켜기도 전에 아이들의 방문을 열었다. 역시 아이들은 더 이상 자고 있지 않았다. 방 안 무드등, 수면등, 램프는 죄다 켜 두고 있었다. 딱 하나, 방 불만 빼고. 그 모습이 마치 캠프파이어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짐짓 웃음이 났다. 다 깬 애들을 두고 난 지금껏 뭐 했나, 자조적인 감정이 들었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어차피 이제부턴 정말 육아의 시간이니까.

자기 계발에 대한 욕심이 들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주제넘은 생각은 아닐까? 하는, 아직까지 나만의 시간을 양보해 주어야 할 사람들이 내겐 너무 많았다. 독립을 장려하기보다는, 독립심을 심어줘야 하는 자녀가 있는 이 시점에, '독립'을 하겠다고 나서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그렇기에 정말 많은 해결방안을 찾아 헤멨다. 많은 것들을 단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젠 조금은 양해를 구해도 될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저 피하기보단, 너무 많은 희생을 구하기보단, 부모를, 나를 이해해 달라고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이.


진새벽엔 남남이면 좋겠어.

우리, 해 뜨면 웃으며 대화하기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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