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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뉴 Aug 14. 2023

야심한 새벽, 빌런은 누구인가?

알람보다 일찍 엄마를 깨운 아들? 자식 케어를 위해 남편을 깨운 아내?

다시 시작한 새벽 운동은 삶을 고무적으로 만들었다.


이틀간의 새벽 운동 후, 일요일을 맞이했다. 새벽 4시 30분 기상을 결심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음에도, 간만의 늦잠은 꿀맛이었다. 삼일 만에 늦은 기상을 했고, 운동도 쉬었다. 하루가 느긋하고 길게 느껴졌다. 요 며칠보다 3시간은 더 길게 잤으니 몸과 마음이 더욱 상쾌해질 법도 한데, 생각보다 그렇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새벽 기상의 타격이 심하지 않은가 했다. 기상 시간이 부담스럽다는 생각보다도, '온전한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뿌듯함이 더 컸으니까. 새벽 일찍 몸을 움직이고 나면 그날은 좀 더 활기차졌다. 힘차게 뿜어낸 심장의 피가 남은 하루를 생기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오늘 늦게 일어났으니 내일도 늦게까지 자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오늘도 일찍 자야 내일 일찍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울리지 않은 알람, 누군가 찾아왔다


주말 동안은 1박 2일간 지방의 시부모님 댁을 다녀왔다. 휴가를 내지 않은 짧은 기간 동안 왕복 6시간 여를 다녀오니 온 가족이 금세 지쳤다. 낮잠을 자지 않는 첫째는 8시를 넘기기도 전에 졸려했고, 쪽잠만 겨우 잤던 둘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을 얼른 씻기고 재워야지. 그리고 오늘은 느긋하게 보내야겠다. 귀가 후, 남편과 나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피곤하긴 어른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애들을 재운 8시 반 이후 나와 남편 역시 급격히 말이 줄어들었다. 꾸역꾸역 보고 싶던 TV프로그램을 반 토막 겨우 보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오늘은 자야겠어. 남편도 동의했다. 남편은 보고 싶던 유튜브를 좀 더 보고 자겠다고 하고, 나는 또다시 이른 시각에 시작될 다음날을 위해 10시를 마주함과 동시에 잠이 들었다.


잠이 들기 전, 첫째 아이가 말했었다. 무섭다고. 이번에 첫째가 읽고 싶다고 한 책 중 약간의 공포가 가미된 학습 만화책이 있었는데, 본인이 읽겠노라 했으니 아무 생각 없이 사줬지만 만 5세의 연령에는 꽤나 자극적이었던 듯했다. "보지 말 걸 그랬어." "엄마, 이거 무서워요." 나는 퉁명스레 내뱉었더랬다. "그럼 안 읽어도 돼. 무섭다는 것도 본인이 읽어야 알 수 있는 거니까, 굳이 안 읽어도 괜찮아." 그것이 복선이 될 줄은.

 

몸이 너무 피곤해서였는지, 오래간만에 빠른 속도로 잠이 들었다. 렘수면으로 모드가 넘어가면서 언뜻언뜻 정신이 돌아오긴 했지만, 휴대폰을 보거나 하는 일 없이 다시 수면을 취했다.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아직 알람 안 울렸지? 나... 괜찮지?' 하는 현실적인 고민에 맞닥드렸지만, 스스로를 믿기로 했다. 나는 귀 하나는 정말 밝으니까.


그리고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엄마... 너무 무서워요..."

안대를 확 까내리고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4시 10분이었다. 내 알람은 4시 30분에 울리는데!!


잠이 깬 아이에게 더 자야 한다고 말하는 부모, 아동학대인가요?


"무서웠어?" 한 마디 대신, 내가 아이에게 한 말은 이랬다.

"아직 새벽 4시 10분밖에 안 됐는데 지금 일어나면 어떻게 해! 엄마는 20분 뒤에 일어나는데!!"

그 말을 툭 뱉고선 아이를 앞에 두고 너무 자기중심적인가? 싶어 아차 했지만, 사실 이렇게 아이가 일어난 것이 처음이 아니기에(그 이야기를 쓰려면 이 글은 육아서가 될 테니 과감히 생략하겠다) 도저히 관대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아이의 마음을 보듬을 수가 없었다. "옆에 동생도 있으니까 괜찮아!" 나는 아이를 다시 방으로 데려다 눕힌 뒤 등을 몇 차례 도닥여주고, 이미 멈춰버린 선풍기의 취침 예약을 다시 맞춰 두고 나왔다. 나의 마음은 초조해졌다. 내 작고 소중한 수면 시간을 또다시 이렇게 방해받다니. 내가 6시까지 잘 예정이었다면 아이에게 덜 화낼 수 있었을까? 아니면 이럴 땐 과감히 내 새벽 시간을 포기하고 아이 옆에 누워있었어야 하는 걸까? 오만가지 생각이 오갔다. 하지만 일단 1분 1초라도 더 자야 한다는 생각에 이미 4시 15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애써 무시한 채 눈을 꼭 감았다. 또다시 수면이 아닌 기상을 기다리는 시간이 시작됐다(며칠이 더 지나야 상쾌한 4시 30분 기상을 맛볼 수 있는 걸까!).


카운트다운을 끝내듯 알람이 울렸고, 나는 마치 지금 일어난 것처럼(?) 느릿느릿 몸을 움직였다. 이게 다 무슨 짓인가 싶어 어이가 없었다. 마치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었다. 몸을 움직이기 전 생각이 너무 많아지는 것 같아 얼른 운동복을 입고 운동을 시작했다. 준비 운동은 괜찮다, 조용한 방 안에서 혼자 하는 거니까. 문제는 본 운동이다. 과연 이 소리를 들려주고도 아이를 깨우지 않을 수 있을까?


삐- 삐- 삑~


그리고 나는, 본 운동 5분 만에 문을 박차고 나온 첫째를 다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빌런은 누구인가?


"들어가, 들어가!!" 나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했다. 남편과 둘째를 깨우지 않기 위해서는 소리를 낼 수 없고, 아이에게 경고성 발언을 하기 위해선 큰 소리를 내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는 어둠 속에서 표정을 한껏 일그러뜨렸다. "무서워요..." 아이는 계속해서 그렇게 말했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기계 소리에 깬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다시 잠이 든 적이 없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은 그렇게 나와 아이가 실랑이를 한 시각은 새벽 5시도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의 첫 불호령에 잠깐 들어갔던 아이는 10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다시 뛰쳐나왔다. "엉- 엉-" 아이가 울기 시작했고, 나는 속상함과 분노를 참지 못하고 러닝머신의 손잡이를 세게 내리쳤다. "아직 잘 시간이야, 옆에 동생도 있고 엄마 거실에 있으면 무서울 게 뭐가 있어!" 목소리는 속절없이 커졌다. 아이는 큰 소리로 울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차에 결국 안방의 남편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남편과 나는 서로 아무 말도 섞지 않았고, 남편은 그대로 아이들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서 있는 것도 아니고, 누워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와중에도 <마이마운틴> 위에서 계속해서 팔을 흔들며 힘차게 걷고 있는 중이었다.


안 그래도 낮은 강도의 운동이 아니었는데, 남편에 대한 미안함, 첫째에 대한 속상함,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 등으로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었다. 이어폰으로 틀어막은 귀가 두근두근 심장소리로 시끄러웠다. 난 어떻게 해야 했을까? '애가 초등학교도 안 갔는데 부모한테 자유시간이 어딨어~' 4시 10분에 나타난 아이 앞에서 넙죽 엎드려야만 했을까? 잠이 깬 아이에게 "왜 일어났어!"라고 하는 것은 과연 맞는 질문이었을까? 일어난 사람이 애를 봤으면 좋았을 텐데, 잘 자던 남편을 깨운 나는 방임주의자인가?


과연, 빌런은 누구인가?


엄마도 한때는 스스로를 태양이라 생각했지


머릿속에서 연필 하나가 춤추듯 닳아 몽당연필이 될 때까지 나는 운동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목표한 시간인 1시간을 꽉꽉 채워서야 러닝머신을 멈추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무렵, 나는 아이들의 방 문을 열고 첫째를 불렀다. 아니, 방문을 열자마자 첫째는 나를 쳐다보았다. 6시가 거의 다 되었으니 나갈 수 있는 시간임을 기다리고 있을 테 였다. 내가 새벽 4시 30분을 기다리듯이, 아이는 새벽 6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는 태양이 아니야. 내가 말했다.


모두가 너를 위해 움직이는 것은 아니야. 네가 일어났으니 모두가 일어나 있어야 하고, 엄마가 에 있다고 항상 네가 함께 나와 있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너의 수면 시간을 지켜주기 위해서 엄마가 더 일찍 일어나는 거지, 엄마가 더 일찍 일어나는 것만큼 네가 일어나 있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야. 네가 거실에 나오는 게 싫은 게 아니야. 너를 못 나오게 하려면 아주 가둬 놨겠지. 다만 엄마도 엄마의 시간이 필요해. 그래서 6시까지만이라도 엄마를 혼자 있게 해 달라고 하는 거야. 이제 그걸 알 때도 되지 않았니?


나는 누구를 위해 기어코 새벽 4시 30분 기상을 결심했나


장기 이동으로 모두가 피곤한 다음 날, 또다시 벽두부터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시금 내가 지난번 새벽 운동을 포기했던 시기를 떠올렸다. 이유는 똑같았다. '아이들이 자꾸 일어나서.' 아직 아이들이 덜 컸어, 시기가 안 됐어. 이미 같은 이유로 아주 많은 것들을 미뤄 오고 있었다. 남편에게 아쉬운 말을 하는 것도 지긋지긋했다. 탓할 사람은 누구지? '그러게 더 기다리지 그랬어.' 새벽 4시 30분... 그 시간도 내겐 너무 늦은 시간이었나?


아무것도 원망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도, 환경도, 나 스스로도. 내가 선택한 시간이니까, 이 시간은 정말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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