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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뉴 Aug 19. 2023

공원 가는 첫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새벽 5시, 내가 타는 버스가 첫차인 것을 알았다

주말의 새벽 4시 30분 기상은 각별하다


새벽 4시 30분 기상을 시작하고 두 번째 주말이 되었다. 지난주에는 일정이 있어 본의 아니게 평일보다 더 빨리 기상해야 했지만, 일정 없는 주말은 사정이 다르다. 금요일 저녁, 나는 평소보다 좀 더 여유롭게 잠자리를 준비했다. 그렇다고 더 늦게 잠을 잔 건 아니지만(둘째가 유달리 자주 깨고 울어 남편이 수시로 불침번처럼 불려 갔고, 잠에 들지 못했던 나는 애써 모른 척했다. 이 글을 읽지 못하겠지만 무척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토요일의 이른 기상, 주말은 항상 내게 관용적 이게도 두 가지 선택을 주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날 것이냐, 늦게 일어날 것이냐, 물론 우리 집에는 기상담당 관리인이 둘이나 상주해 계시기에(?) 하찮은 부모가 결정할 게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이 깨기 전에 더 빨리 일어나 야외운동을 하거나, 또는 그들이 뭐라 외치든 간에 최대한 모른 척 이불속에서 비비적댈 수 있는 기회는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기회 속에서 나는 결단코 더 빠른 기회를 잡았다.

"내일도 일찍 일어날 거야?"

"당연하지."


도착 예정 시간 20분 전? 오히려 좋아!


전날 밤 조금 잠을 설친 탓에, 한 마디의 외침도 허용하지 않는 나의 알람 단속이 살짝 늦었다. 사정없이 울리는 알람을 두어 번의 헛손질 끝에 끄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새벽을 맞이했다.

새벽 기상 이후 야외 운동을 하는 것은 지난 공휴일 이후 두 번째가 되었다. 지난번엔 정류장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는 게 싫어 먼 정류장을 갔고(결과적으로 그냥 멀리 걸은 사람이 되었지만) 꽤나 음침한 새벽길이 무서웠기에, 이번에는 좀 기다리더라도 가까운 집 앞에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식탁 앞에 어정쩡 선채로 물을 마시며 휴대전화를 조작했다. 집 앞의 버스는 지금부터 20분이나 뒤에 온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의 준비 속도는 느려졌다.

최대한 지긋하게 준비해 나갔음에도,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의 여유시간은 15분이나 되었다. 4시 30분에 일어났는데 길바닥(?)에 버리는 시간이 15분이나 되다니.

... 너무 좋은데? 이런 자투리 시간이 내겐 최고였다. 나는 마치 맡아 놓은 시간이라는 듯 어제 시간이 없어 챙기지 못한 휴대폰 속 읽을거리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주말 새벽, 잠든 사람은 당신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알고 보니 내가 기다리던 버스는 오늘 새벽 어떤 버스보다 먼저 차고지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첫차였다. 첫차를 탄 경험도 많지 않을뿐더러, 대부분의 경우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던 내가 첫 버스를 타려고 이렇게 앉아있다니. 실제로 내 옆에는 조금까지도 거나하게 잡수셨을 듯한 어르신이 ㄱ자로 상체를 겨우 받친 채 때때로 무어라 소리치고 계셨다.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류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정류장 전광판에 떠오른 전자시계를 보았다. 오전 10시 36분? (당연히 고장이었다)


마침내 탑승한 버스, 시간은 5시를 조금 넘겨 있었다. 토요일의 버스는 공휴일의 버스보다 훨씬 생기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평일과 같은 스케줄로 토요일을 보내는 듯했다. 괜스레 산뜻한 느낌이 되었다. 세상엔 나보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이미 나만의 것이 아닌 듯한 공원. 자, 러닝 시작이다!


페이스가 늦습니다! 알람을 들으며 뛰는 이유


워밍업을 하듯 쉬엄쉬엄 발을 뗐다. 워치의 경고음이 내가 발걸음을 떼기가 무섭게 울려 댔다. '페이스가 낮습니다!' 나는 개의치 않고 같은 페이스를 고집했다. 비프음은 잠시 쉬는 듯하다가도 잊을 만하면 다시 울렸다.

조깅에 가까운 러닝을 할 때, 한때는 나도 아예 페이스 경고음을 끈 채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느리게 뛰는 것까지는 좋은데, 나의 속도가 도대체 어느 정도 늦어진 것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뛰는 내내 워치를 확인하며 뛰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느린 속도로 뛰든 빠른 속도로 뛰든 일정한 페이스의 기준을 맞추어 두었다.

치과의 우스운 괴담(?)을 들은 적이 있다. 치과에서의 '아프면 손을 드세요'라는 말은, '아프면 아프지 않게 해 주겠다'라는 뜻이 아닌, '제대로 신경 치료가 먹히고 있는지 확인하겠다'라는 뜻이라는 것. 손을 든다는 것은 치료가 잘 되고 있다는 뜻이니 의사 선생님은 오히려 흡족해하실 거라는 것. 나에겐 러닝의 비프음이 그랬다. 어느 정도 알람이 울리면 아 살짝 늦는구나, 내가 좀 느긋하게 뛰는구나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에 비프음이 울리지 않을 때면 몸이 좀 올라왔구나 느꼈다. 다만, 새벽 러닝만큼은 그 간극이 짧지 않게 유지했다. 어디까지나 새벽 러닝은 빨리 뛰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달리기를 나와의 경쟁으로 생각한다면 금세 지칠 것이다.


느리게 달리기, 새벽이 주는 여유에서 찾았다


빨리 뛰고 집에 가야지! 혹은 짧게 뛰고 얼른 집에 가야지! 육아의 바통을 넘긴 나는 늘 그렇게 조급했다. 내가 뛸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되지? 대부분의 경우 한 시간이 되지 못했고, 나는 긴 거리를 최대한 빨리 뛰어버리거나, 아니면 아예 짧은 거리를 정해 후다닥 뛰고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어떤 선택지를 고르든 마지막에 남는 감정은 초조함이었다. 나의 운동 후 사진첩은 의외로 허전한데, 그 이유는 흔한 '운동 후 인증샷' 도 느긋하게 찍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번듯한 사진 한 장 남기는 것조차도 내겐 시간의 사치로 느껴졌다.

10km를 지나 1시간을 채워 운동을 끝내고 나니 6시 15분이었다. 아이들이 조금 전 일어났으려나? 아니면 또 일찍 일어나 아빠를 괴롭히고 있으려나? 비우고 온 집안 사정이 못내 궁금했지만 그래도 서두르지 않았다. 가볍게 걸으며 쿨다운을 했다. 앞으로 좀 더 지나면 마무리 운동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첫차를 타고 떠난 러닝. 주변을 더 둘러보고, 스스로를 좀 더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었다. 촉박한 일정 속에서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것, 그것은 바로 새벽 기상이 주는 여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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