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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뉴 Aug 27. 2023

내일을 기다리는 삶

아껴두는 하루에 대한 단상

일요일은 늦잠을 잔다. 운동도 하지 않는다. 먹고 싶던 빵, 과자 등 군것질거리도 일요일에 먹고 싶어 하루 이틀 미뤄둔다. 일요일 새벽, 문 밖이 소란하다. 아이들이 문을 두드리며 일어나라 소리치기에 내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일요일은 엄마아빠 늦잠 자는 날이야." 문 밖에서 첫째가 복창한다. "일요일은 엄마아빠 늦잠 자는 날이래." 만 다섯 살과 만 세 살에게는 딱 30분 정도의 인내심을 갖고 있다. 나는 최대한 시간을 꾹꾹 눌러 침대 위에서 시간을 쏟고는 남편을 대신해 일어난다.


기다렸던 하루, 미뤄뒀던 나태함


먹고 싶었던 빵을 꺼내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먹는다. 미 지난주에 구입했지만 괜한 죄책감에 먹지 못했던 칼로리 높은 머핀이다. 오픈 시간에 맞춰 방문한 카페에서 좋아하는 취향의 빵을 (또) 먹는다. 낮 끼니로 외식을 한 후 돌아온 집, 괜한 허기에 또 간식을 주섬주섬 꺼내 먹는다.


주 6일 동안 새벽 기상을 하며, 또는 새벽 기상을 꾀하며 열심히 보내뒀던 하루에 대한 보상으로, 일요일은 괜스레 더 게을러진다. 매일매일 읽으려던 책은 괜히 손이 가질 않고, 하루에 250문제씩 풀어대던 영어 퀴즈는 한숨만 나올 정도로 진도가 느려진다. 눈에 띄게 나태해져 버린 나, 괜한 죄책감이 밀려온다, 나... 이래도 되나?


치팅 데이, 가져도 되나요?


'치팅 데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 일주일에 하루는 먹고 싶은 것을 먹어도 되는 날로 정하는 날이다. 바로 이 날, 주 6일 열심히 노력해 온 다이어터들은 일종의 심리적 보상을 받는다. 많은 다이어트 관련 전문가(?)들이 '평범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에게 치팅 데이는 무의미하고, 주 7일 적당한 음식을 먹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라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6번을 참았다가 단 하루에 맛있는 것을 찾는 것은 의외로 한 주의 활력소가 된다.


원래부터 나는 먹고 싶은 것을 잘 참지 않는 편이었다. 좋아하는 음식의 편차가 좁고, 웬만한 음식엔 잘 질리지 않아 같은 음식을 매일매일 몇 달간(혹은 몇 년) 먹는 것도  한다. 애초에 뭔가 먹고 싶단 말을 잘 하지 않기도 하고, 가볍게 뱉은 '먹고 싶다'는 말엔 그다지 진정성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오히려 진짜 먹고 싶은 것은 몇 번의 가벼운 고민 끝에 '그래, 먹자!' 하고 결심해 버리곤 했다.

기존의 내 성정을 따르고 있자면 그러한 충동은 잘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육아휴직이 끝나 예정된 시기에 복직을 하고, 본능에 이끌려 음식을 다 보니 몸무게는 조금씩 우상향 하기 시작했다.


먹는 것까진 괜찮았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죄는 아니니까.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렇게 본능대로 식사를 끝내고 나면, 늘 죄책감과 후회가 밀려오는 것이었다.

그 음식을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또는 그 음식을 '또'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유혹이 많을수록 유혹에 굴복하는 날이 많았고, 그때마다 난 자책 섞인 반성을 거듭했다. 그렇지만 반대로 의문도 생겨났다. 이렇게 무언가 과하게 취할 때마다 후회해야 하는 것일까? 그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고 싶은 대로, 먹고 싶은 대로 지내면 안 되는 걸까?

그래서, 새벽 기상을 결심한 뒤 처음으로 '치팅 데이'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내 멋대로 하는 날, 내 맘대로 먹는 날.


나에게 일요일이란, 비단 먹고 싶은 걸 좀 더 먹는 것을 떠나 조금 더 제멋대로 보낼 수 있는 날이 되었다. 일주일 중 스스로가 정한 늦잠 자는 날. 조금 늦게 이불 밖을 나와, 아껴뒀던 머핀을 먹는다. 조금 느리더라도 하루를 공을 들여 영어 공부를 하고, 읽히지 않는 책은 과감히 덮어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그렇게 하고 싶은 대로 하면 할수록, 내일에 대한 결심이 더 돈독해진다. "오늘은 과자를 좀 먹긴 했지만, 내일 아침은 다시 샐러드를 먹을 거야." "오늘은 리스닝 문제를 좀 덜 풀었네. 하지만 내일은 15문제를 더 풀 거야." 우스꽝스러운 광경이다. 지금 하면 될 일을 굳이 굳이 다짐을 하면서 미룰 일인가? 그런데 의외로, 이렇게 내일의 계획을 쌓으면 쌓을수록, 다음날은 더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또다시, 내일을 기다린다


일주일 동안 일요일을 기다렸다. 일요일에는 늦잠 자야지. 일요일엔 먹고 싶었던 고칼로리 음식을 먹어야지. 일요일엔... 그렇게 일요일이 왔고, 마음껏 제멋대로인 하루를 보냈다. 일요일 저녁이 되자, 나는 다시 내일을 기대한다. 내일 새벽엔 또 일찍 일어나야지. 그리고 오늘 하루 푹 쉬어 찌뿌둥해진 몸을 펴고 운동해야지. 일요일을 기다린 만큼, 난 다시 내일을 기다린다. 그렇게 한 주가 끝이 나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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