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쯤 회사를 다니며 내가 면접에서 계속 떨어졌던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물론 내가 가진 장점도 참 많겠지만, 가끔 일을 하다 보면 떨어질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안맞는 게 티가 났을 것 같달까?
1. 대기업이라는 조직
내가 느끼는 대기업이 좋아하는 인재는 단순하고 말을 잘 듣는 사람이다. 상명하복.. 이랄까?
단순한 예로, 나는 '입수보행'이라는 단어를 회사에서 처음 들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 행위. 군대에서 쓰는 단어라고 한다. 우리 사업장에서 제일 높으신 분이 '사내 입수보행 금지'라는 명을 걸었는데, 막상 명한 사람도 추운 날 입수보행을 하시는 것을 봤다. 하하
나는 말을 잘 듣는 사람은 아니다.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은 말해야 풀리는 상당히 지랄맞은 성격을 소유했으며, 모든 일에 이유를 고민하고 이해하고 싶어 하고,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적용하고 바꾸고 싶어 한다.
회사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없는 답답한 일들이 많다. 높으신 분들의 결정을 이해할 깜냥 자체가 일단 안되지만, 이해를 해볼 기회 자체가 몇십년은 일해야 주어진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거나 갑자기 윗사람이 원하지 않는 이상 대기업에는 변화 자체가 잘 생기지 않는다. 체계가 많을 수록 변화의 과정은 복잡하고, 변화도 누군가에겐 추가적인 '일'이 된다.그 많은 실무자들을 설득하고 변화하는 것은 어려운 게 당연하다.
나에게도 이곳은 답답한 곳이라 나도 힘들지만, 나랑 일하는 사람은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하곤 한다. 이러한 성향과 모습은 면접에서 잘 보였을 것이고, 그게 내가 계속 떨어진 첫 번째 이유라고 생각한다.
2. 직무와 내 성향 간의 연관성
나는 생산직무로 지원해 입사했다.
보통 공장의 생산 업무는 공정을 현상유지하는 일이다. 무언가를 바꾸고 더 잘 해내게 하는 것보다, 현재를 유지해서 제품을 일정하게 만들어내는 게 더 중요하다. 즉, 내가 지원한 직무에서 해야 했던 일들은 개선이 아닌 현상유지였던 것이다. 내가 이 일을 맡았다면 답답해하고 오래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1번에서 설명한 성향의 나는 다른 팀으로 이동을 원하던, 퇴사를 하던, 변화를 하려 했을 것이고, 그것을 알아봤을 것이다.
해당 직무에 오래 남아있는 선임들은 그 일과 성향이 잘 맞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더욱 변화하려는 내 모습을 싫어했을 것이고 조금은 군대스러운 문화도 내게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때까지 우리 회사는 생산직무로 사람을 여럿 뽑아 여러 팀에 배치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조금 다른 성향의 부서에 왔다. 신입이 자주 오는 부서가 아닌 곳에, 다른 회사에서는 개별 직무로 뽑기도 하는 업무에 배치받아 일하고 있다. 본래 생산과는 약간 다른 성향의 사람이 필요한 곳이다. 아마도 이 부서가 아니었다면 뽑히기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마냥 대기업이라고, 유명하다고, 다 나와 잘 맞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학창시절부터 취업 전까지 평생 들어온 당연한 말들인데. 내가 이 조직과 잘 맞을지, 이직무와는 잘 맞는지, 이걸 고민해보는 것이 평생 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지표라는 것을, 이제서야 체감한다.
만약 누군가 취업에서 자꾸 미끄러지고 있다면, 당장의 돈이나 대기업의 타이틀 말고, 진짜 그 일이 나한테 맞고 하고 싶은 일인지, 그 근본을 고민해봤으면 좋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맞는 것 같은데도 계속 미끄러지는 것 같다면, 결국 기회는 분명히 어디엔가 있다. 심지어 이렇게나 안 맞는 길에 있던 나도 결국 운이 좋게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대신 기회는 준비된 자만이 잡을 수 있으니, 기회를 가만히 앉아 기다리기보다 꾸준히 준비를 해가야 할 것이다.
많은 고민을 하고 있지만, 좋은 기회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일을 하는 중인 것은 사실이다. 늦었고 잘못됐다 느껴지더라도, 덕분에 돈도 계속 벌고 있으며, 이런 생각 조차도 경험이 있기에 얻은 배움이기도 하다. 이 경험과 기회에도 감사할 부분은 감사하면서, 불평 불만보다 충분히 천천히 고민을 해나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