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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온 Feb 18. 2024

자주 우울하고 불만족스럽다면?

Ep4. 출퇴근만 해내도 잘하고 있는 거야: 잠과 운동, 쉼의 중요성

학창 시절 내 별명은 두 개의 심장이었다. 좋은 체력과 체격 때문에 친구들이 붙여 준 별명이었다. 뛰기도 잘 뛰었고, 공부할 때도 잘 버티는 편이었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고 나서도, 나는 생각보다 잘 버텼다. 남들이 10시, 11시면 피곤해하며 내일을 위해 잠에 들 때, 나는 밤 12시, 1시, 2시가 돼서야 잠에 들어 4~6시간만 자고 출근을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쭉, '야행성 인간'이었다. 늘 밤의 시간을 활용해 시험공부를 하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대외활동에서 맡은 일들을 해 왔다. 8 to 5라는 회사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이 패턴을 바꿔야 했다. 하지만 나는 이 밤의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낮 시간을 모두 회사에서 보내고 돌아오면 이미 해가 질 시간이었다. 밤 시간만이 온전히 내 시간 같았다. 잠을 자버리면 내 시간을 날려버리는 것 같았고, 일어나면 또 출근을 해야 했기에, 이 시간을 그냥 보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잠을 자지 않고 무언가를 해내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유튜브를 보다가 내려놓지 못해서, 드라마를 정주행 하다가, 짐을 싸거나 방을 치우는 등 금방 끝낼 수 있는 것들을 미루고 미루다 늦어져서 잠을 줄였다. 유튜브를 보다 보면 소위 '갓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간을 잘 활용하는 방법' 같은 것을 공유하며, 제 때 퇴근도 못하는 바쁜 일을 하면서도, N잡을 하고, 자기 계발을 하고, 투자도 하고, 수익도 내면서 열심히 사는 것 같아 보였다. 나는 밤에 잠 대신 대단한 사람들의 유튜브를 봤다. 보기만 했다. 이건 '애매한 성장욕구'와 '미루는 습관'이 합쳐진 최악의 결과물이었다.


열심히 사는 것에 '애매하게' 강박이 있는 나는, 퇴근 후에도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건드리려 했다. 직장인이 되고 나니 별 달리 할 일도 없었다. 이제까지 매년 그 해의 task만을 해 온 탓이었다. 때가 되면 수능공부를 하고, 때가 되면 시험공부를 하고, 때가 되면 취업준비를 해왔을 뿐이었다. 없는 할 일을 쥐어 짜내어 일을 만들었다. 회사에서의 업무가 당장에 나를 성장시켜주고 있다고 느끼지 못해 더더욱 성장욕구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서울에 있었다면 대학교 때처럼 새로운 모임을 찾았겠지만, 지방에는 그런 인프라가 적었다. 조금만 움직이면 회사사람들을 마주치거나, 회사사람들의 지인을 마주치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눈을 돌렸다. 이 브런치도, 가끔 건드리던 블로그도, 제2 외국어 공부도 그렇게 시작한 것이었다.


이게 내 몸을 갉아 사용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딱 1년이 걸렸다. 피곤하기에 카페인에 의존도가 높아졌다. 사내 카페도 없는 회사에서 맛도 없는 커피를 매일같이 들이켜면서 일을 했다. 평일에 내 체력을 갉아먹었으니, 주로 주말에 몰아서 잠을 잤다. 어떨 때는 12시간, 13시간까지도. 늦게 일어나면 주말이 너무 짧았다. 그럼 또 얼마 뒤 출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삶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우울했다.



이걸 인지하고부터 잠을 자는 시간, 운동하는 주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을 습관화하기 시작했다. 습관을 들이는 데에는 '욕심부리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당장 오늘부터 2시에 자던 것을 11시로 당길 수는 없었다. 작심삼일은커녕 이틀도 지키지 못하면 다음 날에는 더 쉽게 무너졌다. 그래서 욕심부리지 않고 목표를 세웠다.

1. 1시 전에는 잠들기 (아직 시계에 12시가 찍혀 있을 것)

2. 일주일에 한 번은 운동하기

3. 하고 싶은 것은 완벽하지 않아도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


그렇게 하는 데 의의를 두기 시작하자,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 시작을 하게 되었다. 시작을 하는 것에도 시간이 쌓이자 습관이 되었다. 늦어도 1시 전에는 잘 잠들기 시작했고, 1회 하던 운동은 2회로 늘었다. 아주 작은 결과물도 생겼다. 브런치 작가도 승인받았고, 처음으로 블로그 협찬도 받아 보게 되었다. 이걸 깨달은 지금도 사실 자주 미루고, 자주 강박을 가진다. 그래도 나는 이걸 인지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습관을 지키지 못했을 때도 스스로에게 "괜찮아."라고 위로하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있다. "삶이 너무 힘들고, 쉽게 우울해진다면, 혹시 잠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수면시간을 확인해 보세요." 아주 맞는 말이다. 당연히 우울감과 불안감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맞물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원인들은 당장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당장 극한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다면 무리해서라도 근본 원인을 제거해야겠지만, 무리하지 않고 해결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들이다. 나에게는 근무환경이나 지역, 안정감의 부족 같은 것. 그러나 잠과 쉼의 부족은 당장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나는 요즘 나 스스로에게, 회사를 잘 다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버티고 노력하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 잠에 들어도 괜찮다고 토닥이려 노력하고 있다. 이직준비가 되었건, 자기 계발이 되었건, 완전히 내려놓지는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대신 무리한 다음에는 나에게 쉼을 주려고 한다. 맛있는 것을 먹여 주거나, 찜질방에 가서 핸드폰을 내려놓고 잠을 자게 하거나, 어떤 평일에는 운동과 전화영어를 미뤄두고 10시에 일찍 잠에 들었다. 열심히 했으니 쉬어도 된다고 나를 달래보려 한다. All In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의 결과는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내가 그러하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회사를 놓지 않고 있지 않은가?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두 마리 다 빠르게 잡힐 리가 없다. 삶은 롱런이다. 당장 이직하고 퀀텀점프 한다고, 인생이 바로 꽃밭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는 그때의 고민이 생기겠지. 그러니 잠과 쉼을 줄여 체력을 깎아먹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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