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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lius May 02. 2016

〈해신의 바람 아래서〉, 프레드 바르가스

"프랑스 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프레드 바르가스의 소설을 국내 쟁쟁한 출판사인 민음사, 웅진(뿔), 김영사(비채)에서 내고 있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프랑스 국내나 해외의 인기만큼 붐은 아닌 것 같지만, 뿔에서 2008년 펴낸 <해신의 바람 아래서>가 지난 3월 비채에서 <트라이던트>로 다시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처음 바르가스 소설로는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라>(이 책은 <죽은 자의 심판>으로 재출간)를 읽었는데 앞부분만 보고는 저랑은 맞지 않는 작품으로 판단해 바로 포기했다가, 2번째 다시 한 번 도전 했던 작품이 <해신의 바람 아래서>입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꽤 두툼한 책으로 제목만 보고 해양 추리 스릴러인가?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연쇄 살인범 이야기라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추리소설과는 달리 사건이나 범인에 대한 부분과 거의 대등할 정도로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 각각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의 중심을 이루고 있어서 추리소설 요소를 기대한 저를 무척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소설의 초반부는 연쇄살인에 대한 단서나 수사 이야기는 조금 뒷전으로 밀려나고 프랑스 형사들의 업무 일상 - 경찰서 청사의 보일러 고장, 퀘벡으로 가는 과학수사 연수 - 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많이 나오는데 이게 더 재미있습니다. :-) 이런 일상과 소소한 사건, 각 등장인물의 성격 등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인간군상을 보는 재미가 있어서 "이런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잔뜩 나오는데 추리적인 요소도 있네!"하면서 역전된 기분으로 소설을 읽었습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삼지창(세발작살)으로 3군데 상처를 입은 시체가 발견되는데 이것이 연쇄살인이라는 것이 밝혀지지만 실제 유력한 용의자는 이미 사망한 후라서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난 것인가? 그 용의자가 죽은 것이 아니라범인은 90세 이상의 노인! 카피캣의 범행인가? 아니면 가정 자체가 잘못된 것인가 등등... 초기 일어난 연쇄살인과 관련이 있는 주인공 아담스베르그 서장, 그의 보좌관 당글라르 형사와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을 주는 할머니 해커 조제트 모두가 생생하게 자기 목소리를 냅니다.


흥미를 끄는 이야기 소재와 재미있는 캐릭터들의 만남이지만 분명 호불호가 갈릴만한 작품이긴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조연에 해당하는 당글라르 형사만큼이나 비중이 큰 비올레트 르탕쿠르 형사의 이야기나 활약에 큰 매력을 느꼈는데요, "나이 서른다섯에 키는 169센티미터, 몸무게가 무려 110킬로그램이나 되며, 똑똑하고 강인한 데다 본인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자신이 지닌 에너지를 원하는 대로 적절하게 배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이 대단한" 형사는 스스로를 "남자들은 못생긴 뚱뚱보 여자한테는 전혀 관심이 없는 법"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초연함을 가장한 채 쭈그리고 앉아"서 "상대방을 샅샅이 관찰"할 수 있는 "특권"을 지녔다고 묘사합니다.

 

타고난 영민함과 이런 관찰력과 기지가 결합하면서 사건 해결에 큰 역할도 하고 다른 추리소설들의 경감, 형사 등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부족한(인간적인) 주인공 아담스베르그 서장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지요. 아담스베르그도 "어디서든 적응력이 뛰어나며, 지적이고 전략적인 사고가 가능할 뿐 아니라 행정 처리 능력 또한 우수라고, 몸싸움에도 지지 않는 데다 사격 솜씨 또한 일품"이라고 말합니다.

  

전 이 소설은 르탕쿠르 형사 이야기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는 생각인데요(많이 나오지 않는 것이 안타까워요) 아래는 르탕쿠르가 주인공인 아담스베르그 서장이 살인범을 몰리는 궁지에 빠졌을 때 하는 말입니다. 바른말도 잘하는 르탕쿠르 형사 만세~

  

"저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직관을 높이 평가하는 편이지만, 그 직관으로 인한 거리두기는 좋아하지 않아요. 무슨 말이냐 하면, 서장님은 직관력이 뛰어나시기 때문에 보좌관들의 의견을 소홀히 하시거나 그저 반쯤만 흘려들으시곤 하죠. 전 그런 태평한 고립 상태랄까, 다른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무심함은 싫어요. 제 설명이 서투른 것 같군요. 사막의 모래언덕은 부드러워 보이고, 모래도 사실 부드럽지만, 그 모래밭을 가로질러 가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거칠게 느껴지죠. 인간들은 그걸 잘 아니까 스쳐 지나가기는 하지만 그것에서 살지는 않아요. 사막은 사람들을 끌어모으지 못하죠."
"그러니까 똑같은 이유에서, 제가 서장님은 그 여자를 죽이지 않았다고 말씀드리면 그렇다고 믿으셔야 해요. 사람을 죽이려면 적어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그 사람들이 휘말린 돌풍에 같이 휩쓸리기도 하고, 그 사람들이 집착하는 일에 같이 집착하는 시늉도 할 수 있어야 하죠. 사람을 죽인다는 관계의 변질 내지는 악화, 과민반응 내지는 타인과 자신의 혼동을 의미해요. 말하자면 타인과 너무 혼동이 되어서 타인을 타인으로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마음대로 희생시켜도 좋은 자신의 일부로 인식하는 거라고요. 그런데 서장님은 그런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요. 서장님 같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 진정한 괸계를 맺지도 않거니와 죽인다는 건 더더구나 말도 안 되죠. 서장님은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기엔 지나치게 소원한 관계에 머물러 있어요. 그렇다고 서장님이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죠. 하지만 적어도 노엘라는 아니죠. 어떤 경우에도 서장님은 그 여자를 죽였을 리가 없어요."

 

 

p. s. 제가 가진 책과 새로 나온 번역본을 미리 보기 부분만 확인해 보니 번역가는 같지만 조금씩 문장의 차이가 있습니다. 긴 문장이 좀 더 잘라진 것 같은데, 전반적으로 번역가가 같아서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래는  제가 찍은 예전 책 표지랑, 출판사 사이트에서 가져온 이번에 새로 나온 책 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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