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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진 Mar 19. 2020

바람이 분다, 집에 있어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폴 발레리의 시 중에 가장 유명한 구절이 아닐까 싶다. 드라마 <킬미 힐미>에서 차도현의 자아 중 하나인 안요섭이 자살시도를 하려고 옥상에 올라갔다가 읊었던 구절이기도 하다. 사실 그 장면에서는 황정음이 지성을 후드려 패던 게 더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 시로는,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유하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문학과지성사, 1991)"가 있겠다.


어쨌든, 바람이 분다. 바람 타고 압구정동까지 날아갈 수도 있을 만큼 바람이 세게 분다.

봄에 이렇게 거센 바람이 불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 봄은 이상하다. 정말 이상한 봄이다. 원래 3월 초면 쌀쌀한 날씨에도 목련꽃만은 활짝 피었다. 올해는 목련꽃도 겨우 꽃망울을 맺은 정도다. 이러다 벚꽃과 함께 개화할 판이다.


'캔사스 외딴 시골집에서 어느날 잠을 자고 있을 때 무서운 회오리바람 타고서'(멜로디가 떠올랐다면 나와 같은 세대 사람이겠다) 모험을 시작하게 된 도로시처럼, 오늘은 어쩐지 이 바람에 모든 게 날아갈 것만 같다.


하얀 눈나라, 파란 호수의 나라도 아니지만

목련이 꽃을 피우지 않고, 아닌 봄에 태풍급 강풍이 몰아치고, 사람들은 밖에 나가지 않고, 그나마 밖에 나온 사람들은 마스크로 중무장한 이상한 나라. 우리는 어쩌다 보니 이 이상한 나라에 와 있다.


바람이 불어서 어딜 갈 수가 없다.

자전거가 바람에 휘청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차분하게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바람을 거스르며 자전거를 타면 무척 힘들다.

황정음이 지성을 후드려패듯 얼굴을 강타하는 바람을 참아내기도 어렵고, 공기 저항 때문에 자전거가 잘 나가지 않아 힘들고, 연약한 자전거가 휘청거려서 불안하다.


문득 오늘은

인생을 아끼고 아껴서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을 했다.

조금 늦잠을 잤고, 오랜만에 연락온 친구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고, 밖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 을씨년스럽고, 오늘은 배달도 못간다.


인생을 조금 낭비하며 안 되나.

그렇다고 욜로 같은 걸 하겠다는 건 아니고. 우리나라의 욜로는 돈 펑펑 쓰는 개념이 되어버려서 안타깝다. 인생은 한번이니 돈 아껴서 뭐하리!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든 기준은 돈인가 보다.


너무 힘주어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끔 어이없고 대책없는 짓도 하고, 쓸데없는 거에 매료되기도 하면서. 누가 보면 할일도 없다, 그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같은 소리도 들어가면서. 그냥 그렇게 살면 안 될까. 물론 나는 이미 충분히 그렇게 살고 있어서 더 그렇게 살면 방종이 되겠으나.


바람을 거스르면서 남들이 가는 방향으로 가려고 바득바득 애쓰지 말고 그냥 바람이 나를 데리고 가는 대로 살면 좋겠다. 그러다 여기까지 왔겠지만.


남들이 일반적이라고 말하는 궤도에서 벗어나 살아온 지도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 시간에 일반적으로, 그러니까 취업해서 직장 다니고, 결혼하고, 그렇게 살았으면 지금보다 나은 삶이 되었을까. 사실 자꾸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관짝같은 방에 누워 오래된 냉장고의 덜덜거리는 모터 소리를 들을 때나, 집이 너무 좁으니까 자꾸 버릴 물건을 찾아야 할 때, 가까운 친구가 얼마를 모았다, 차를 샀다, 아파트를 샀다 할 때. 나도 그렇게, 엄마가 말하는 '평범한' 삶을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바람을 거스르는 자전거를 타고

억지로 앞으로 나아가도 결국에는 걸어가는 것보다 먼저 도착할 테니. 그곳이 내가 원했던 목적지가 아닐지라도.


삶이 나를 이끄는 대로 내버려두긴 하지만 잘하는 짓인지는 모르겠다. 10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내 모습을 상상도 못했듯이 10년 뒤의 내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다. 사람은 자기가 살아온 범위만큼만 알 수 있다.


다만 그때는 냉장고 소리가 안 들리는 집에 살았으면 좋겠다.

오늘같이 바람 부는 날에는 집에 있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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