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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진 Mar 27. 2020

세상은 공정하니까

경기가 어렵다. 

나는 프리랜서라 불경기에 취약한 편이다. 4대보험이 안 들어가니까 당장 일이 뚝 끊겨 실직 상태에 가깝다 하더라도 그 누구의 지원도 받을 수가 없다. 


세상이 변해서 한 사람이 하나의 직업만 가지고 살아가는 시대가 아니라고 하지만,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는 직장이 있다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아무래도 올해는 영 돈 버는 재미가 없을 것만 같은데,

할 수 없이 배달에 집중해야 한다. 

그나마 할 수 있을 때 배달부가 되어서 다행이다. 


지금까지는 '운동삼아' 배달을 했다면, 이제는 정말 '생계'를 위해서 배달을 해야할 터.

하루에 몇 개나 해야 적당히 먹고 살 수 있을까?


한 달에 아끼고 아껴서 100만원을 쓴다고 생각해보면, 3,500원짜리 배달을 300번 가면 된다는 단순한 계산이 나온다. 한 달에 300번이면 하루에 10개. 

평균 3개 배달하는 데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리니까, 다섯 시간쯤 배달을 하면 되겠다.

운이 좋으면 세 시간쯤 걸릴지도 모른다.


하루에 다섯 시간씩 자전거를 타면 어떤 기분일까?

다리가 엄청 아플까? 배가 고플까?


나에게 배달을 많이 할 수 있는 도구가 있으면 좋겠다.

전동킥보드라든가, 전기자전거, 오토바이 등.

배달을 많이 하기 위해서 킥보드를 사야 할까? 그러면 한 달 동안 300번을 배달하고, 본전을 뽑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아지는 때다. 

그래서 아무것도 집중이 안 된다. 어떻게 벌어먹고 살 것인가.


경기에 취약한 비정규직, 계약직, 단기직 등의 노동자들이 일률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나만 그렇겠는가. 다 힘든데, 이런 노동환경에 처한 사람이 힘들다고 말하는 건 우리를 지켜줄 방패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한 제도도 없고, 당장 실직이 된다 한들 항의할 수도 없다. 

왜 애초에 정규직으로 들어가지 않았느냐고 힐난을 받을 게 분명하겠지.


멜빈 러너는 '공정한 세상이라는 편견'을 말했다.

이 세상은 내가 노력하면 그만큼의 보상을 받는다는 환상이 가득하다. 

과거에 '노오력'을 안 해서 그렇다는 말이 밈처럼 세상을 돌아다닐 때, 그게 아니라고 청년들이 발끈했다. 노력한다고 그만큼의 보상을 받는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누군가가 잘못되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세상은 공정하니까.


나쁜 일, 이를 테면 근래 수면 위로 떠오른 성착취 사건에 대해 피해자를 욕하며 2차 가해를 하는 것도 역시 '나쁜 일을 당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런 판단을 하는 건 '공정한 세상 편견'을 가졌기 때문이고. 그 이면에는 '나는 그런 일을 당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밑받침되어 있다. 세상은 공정하니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대거로 계약해지가 된다 한들,

사회적으로 큰 반향이 일어나겠는가? 세상은 공정한데. 


공정한 세상을 일 없이 살아가려면 그저 바짝 엎드려야겠다. 

살아간다기 보다 살아내는 방식으로. 


요새 경기가 안 좋다 보니 배달요청도 확 줄었는데,

그저 배달요청이 많이 와서 내가 배달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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