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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진 May 07. 2020

싱거운 우울

마음에 병 하나 없는 현대인은 없다.

나도, 당신도, 우리도, 뭐, 모두 다 우울하다. 간혹 전혀 우울해하지 않고 살면서 한 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스스로를 사무치게 싫어해본 적도 없는 사람도 있긴 하더라. 그런 사람들이 부러운 마음에 다시 우울해지곤 한다.


나에게는 우울증이라는 이름이 너무 거창하게 느껴지는데, 아마도 평생 느껴온 감정의 팔 할 정도가 우울함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울함은 늘 그 자리에 있어서 그것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행위 자체가 어색하다. 그저 나에게 팔이 두 개 달린 것처럼 내 기분에 우울함이 달린 것 정도.


어디 가서 우울하다고 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애인이 있을 땐 자주 그런 말을 했는데, 우울함을 알아달라기 보다는 관심이 필요했던 것 같다).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


원래 그렇다는 건 뭘까.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는 걸까. 나는 태어날 때 씩씩하게 울지 않고 시무룩하고 기운빠진 목소리로 울었던 걸까.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자랐는지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우울함이 기저에 깔려 있었음은 확실하다.


이상하게도 나에게 우울함을 토로하는 지인들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어떤 위로를 해줘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게 좋은 방식이었는지 점점 그런 일이 많아졌다.

때로는 심리상담가라도 된 기분이었고 또 이따금 지금이라도 내가 심리학을 전공하고 심리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 싶기도 했다.


몇 년간 상담을 받았고 때로는 약도 먹었고 뭐 갖은 노력을 하긴 했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아지는가 하더니 왜 자꾸 되돌아가는지.


지금 우울하다는 말을 용감하게 해보는 건, 다시 한 번 앞으로 나아가서 우울함을 떨쳐내보고자 하는 시도다.

어느 순간 우울함이 어깨를 짓누른다. 어깨 위에 올라탄 우울이 무거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잠이나 많이 잤으면 싶다.


그래도 뭐든 한다. 출근도 하고 일도 하고 밥도 먹는다. 친구도 만나고 웃고 떠든다. 우울한 사람이라는 관념으로 나를 보면 뻥친다고 할 게 분명하다.


너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너는 의욕적이고, 너는 꼼꼼하고, 너는 뭐든 잘하고, 너는 밝고, 너는 다정하고, 너는.. 너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내 우울은 항상 그저 그렇다. 대단히 요란하지도 않다. 무시할 정도로 가볍지만 그렇다고 우울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자전거를 안 타서 그럴까. 생각이 너무 많아진 걸까. 나한테 시간이 너무 많은 걸까. 술을 덜 마셔서 그런가.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붙여본다. 다 무슨 소용이겠냐만은.


꼭 무슨 이유가 있어야 우울한 것도 아닌데, 우울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온갖 이유를 다 댄다.


그래도 지금, 공공연하게 내가 우울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용감해진 걸까.

그것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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