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와 이 영화의 호불호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친구는 호, 나는 불호 쪽인데, 친구는 이 영화에 불호가 있다는 점을 의아해했다. 왜 불호인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우디 앨런의 영화여서일까. 답답한 주인공 때문이었을까.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일까.
지난 주부터 다시 우울증 치료를 받는다. 너무 자주 시도해서 내성이 생긴 것 같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작년 7월, 알콜중독으로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병원을 다녔다. 그 병원은 별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의사선생님이 계셨으므로 나는 아주 마음 편하게 병원에 다녔다. 술을 완전히 끊지는 않았고 혼자 술 마시는 버릇을 고쳤다.
예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잘 안 쉬어지는 증상들이 있었다. 부정맥인가 하여 심장내과도 가보았고 갑상선 검사도 해 보았지만 나는 건강한 심장과 갑상선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번 다녔던 병원에서 교감신경 검사를 했는데 교감, 부교감신경의 밸런스가 무너지면 그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심리적인(혹은 뇌과학적인) 문제가 신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 혹시라도 자꾸 가슴이 빨리 뛰고 숨이 턱 막힌다면 집에서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에 내방해보기를 권한다.
이제는 격하게 우울하지도, 무기력하지도 않은데 나의 우울과 불안을 기록한 수치는 꽤 높았고, 의사는 항우울제와 진정제를 처방했다. 술을 마시고 싶지 않게 하는 약도 먹겠냐는 물음에 나는 절대 아니라고 답했다.
<블루 재스민>은 넷플릭스에도, 왓챠에도, 웨이브, 티빙, 뭐 어디에도 없다. 아쉽다. 더 많은 사람들과 호불호에 대해 나누었으면 좋았을 텐데. 주인공 재스민에 대해 해야 할 이야기들이 아주 많을 텐데. 지금 이 영화를 종로의 서울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영화관에서 보기 바란다.
출처: 네이버 영화
재스민은 여동생 진저가 사는 샌프란시스코가 간다. 비행기에 탈 때부터 계속 혼자 중얼중얼 말한다. 아무도 듣지 않는데 혼자서 계속 말한다. 재스민의 남편 할은 사기죄로 감옥에 가고, 재스민에게 거처가 필요했다. 진저는 할이 사기꾼이고 언니는 피해자라 생각하며 언니를 두둔한다. 하지만 재스민의 눈에 진저는 너무 궁상맞다. 불평불만도 너무 많다. 심지어 동생이 만나고 있는 새 남자(전 남편과는 이혼했다)도 성에 차지 않는다. 진저의 눈에 루이비통 캐리어를 끌고 일등석을 타고 온 재스민은 황당하기만 하다.
재스민은 원래 호화로운 삶을 살았다. 남편 할과 결혼하기 위해 대학도 그만두었다. 할이 데려온 아들 대니 역시 살뜰히 보살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다고 끝없이 자신을 세뇌시킨다. 재스민은 대학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할을 제외하면 인생에 아무것도 없다.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로 와서 동생이 남자도 소개시켜주지만 눈에 차지 않아 거절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 치과에 취직했다가, 의사의 추행으로 그만두고 나온다. 현실을 살아야 하는데 재스민은 현실에 있지 않다. 마음이 과거에 있어 끝없이 불행하다. 그러다 갑자기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예전에 집에 놀러온 손님들이 인테리어 감각을 칭찬해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돈이 없어 인터넷으로 수업을 듣다가 진저와 그 친구들이 시끄러워 공부를 할 수 없다고 히스테리를 부린다.
결국 컴퓨터 학원을 다니게 된 재스민. 거기서 만난 친구에게 남자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하고, 파티에 초대받아 동생 진저와 함께 간다. 진저는 엘이라는 남자를 만나고, 재스민은 드와이트를 만난다. 그는 외교관으로, 정계진출을 꿈꾸고 있다. 그에게 인테리어 디자이너라고 소개하는 등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둘의 관계는 급속도로 발전하여 결혼까지 약속한 단계. 반지를 보러 가는 길에 진저의 전남편 오기를 만난다.
오기는 복권에 당첨된 금액을 할에게 투자했다가 돈을 다 날리고 이혼했다. 오기는 재스민에게 모든 진실을 말한다. 드와이트는 충격을 받고 재스민과 헤어진다. 오기에게서 아들 대니의 소식도 듣는데, 재스민은 용기를 내어 대니를 찾아간다. 대니는 학교를 그만두고 중고 악기 가게를 하며 소박하게 살고 있다. 한때는 아버지와 같은 하버드대 동문이었던 아들이었다.
자, 모든 사건은 영화 후반부에서 휘몰아치듯이 풀려나간다. 남편 할이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기 빼고 동네 개도 다 알고 있음을 알고 분노한 재스민이 FBI에 남편을 신고했고, 남편은 감옥에서 자살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진저와 칠리는 관계를 회복해서 행복한 모습으로 놀고 있다. 그들에게 폭언을 퍼붓고 집을 나온 재스민은 벤치에 앉아 또다시 홀로 중얼거린다. 모두가 다 떠났다. 마치 <무간도>의 유건명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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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민은 과거에 묶여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를 현재라고 착각하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왜 저럴까 싶다가도 종국에는 처연함이 느껴진다.
재스민의 삶에서 재스민은 없었다. 견고하다고 믿어왔던 자신의 세계가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 그 안에서 자아만은 살려주어야 하는데 살릴 자아가 없었다. 대신 외부세계를 실제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세계와 다른 형태의 세계는 깡그리 무시했다.
세상에 믿을 건 나 하나뿐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의심하고 의심해야 한다. 마음이 아프면 병원에 가도록 하자. 생각보다 의술은 발달되어 있고 좋은 약들이 많이 만들어져 있다. 완전히 무너져내리기 전에 자신을 다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