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전성시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편의점이 국내 유통업계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백화점을 넘었다. 17.8%. 백화점 17.2% 비중을 뛰어넘었다. 올해 10월까지 누적 매출 역시 편의점이 앞섰다. 편의점이 25조 8000억 원을 기록한 것에 비해 백화점은 25조 4000억 원이다. 보통 백화점이 매출 선두에 서고 그 뒤를 이어 대형마트, 편의점들이 서던 것과 판이한 양상이다. 마지막에 위치했던 편의점이 이제 선두에 있다.
매출뿐만 아니라 트렌드를 이끄는 것에서도 편의점이 앞서고 있다. 보통 백화점에서 시작된 트렌드가 대형마트, 편의점으로 넘어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행은 상방에서 하방으로, 편의점 소비자는 끝물에 다다른 트렌드를 소비하는 것이 관행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반대다. 편의점에서 시작한 트렌드를 백화점이 흉내 내는 꼴이다. F&B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밤 티라미수’ 제품은 백화점에서 시작되었다. 올해 인기를 끌었던 디저트들 역시 빠른 상품 개발 과정을 통해 편의점에서 첫 선을 보였다. MZ세대들을 사로잡기 위한 기민한 변화는 편의점에서 시작되고, 편의점에서 끝난다. 다른 영업채널들은 트렌드에 편승하기도 전에 유행의 끝을 바라보는 것이 2024년의 현실이다.
다양한 서비스 역시 편의점에서 누릴 수 있다. 택배 서비스는 이제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약도 편의점에서 구매할 수 있게 되어 긴급 상황 시 약국 대신 편의점을 찾는 일도 이젠 흔하다. 고급 제품이라 생각되었던 와인도 이제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상품들을 보면 쉽게 구할 수 있다. 그것도 크게 떨어지지 않은 퀄리티로 구매가 가능하다. 심지어 ‘이런 것도 팔아?’라는 반응이 나올 만큼 굉장히 다양한 상품을 구비하고 있는 곳이 편의점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제 편의점은 ‘상설 팝업스토어’가 되는 것을 꿈꾸고 있다. 성수동에서 시작된 팝업 스토어 유행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많은 기업들이 팝업 스토어의 위력을 깨닫고 앞다퉈 팝업 스토어를 론칭하거나, 분기 혹은 달마다 팝업 스토어 ‘신상’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 편의점은 이런 트렌드에 발 빠르게 탑승했다. 팝업 스토어를 체험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팝업 제품을 대신 판매하는 수준을 넘어서, 본인들이 팝업 스토어를 열며 MZ세대들을 편의점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처음 공개한 ‘Z플립5’ 제품을 GS25에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편의점 내부에 팝업 스토어를 설치해 직접 Z플립 신제품을 체험할 수 있게 기획한 것이다. 넷플릭스 화제의 예능 ‘피지컬:100’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팝업 스토어를 GS25에서 선보인 것도 눈 여겨 볼만한 일이다. 팝업 굿즈를 비롯해 인기 있어 보이는 제품들을 자사 PB 상품으로 녹여내는 솜씨 역시 탁월하다. 숨 가쁜 트렌드를 꼼꼼하게 파악해 상품화하는 것에 있어 편의점은 가장 발 빠른 채널이다.
기존 유통 강자들을 이기고 편의점이 트렌드를 이끄는 것은 물론이고, 매출에도 최상위권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의 빈곤 덕분이다. 물론 이 이야기에 반대하고 싶은 분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1인 가구의 상승과 HMR 제품의 개선, 그리고 편의점 업체의 발 빠른 대응 등, 편의점 자체의 노력 덕분이라는 이야기를 들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만큼 편의점 경쟁이 치열한 곳도 거의 없기에, 생존을 위해서 편의점 업계가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신상품이 1년에 1000개 이상 쏟아지는 국가는 한국 외에는 없을 것이다(편의점 강국 일본도 이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편의점 성공의 본질은 개인의 가난에서 비롯된다. 한국인들이 경제적으로 가난해지면서 편의점이 매력적인 창구가 된 것이 포인트다. 과거 10년 전만 해도 가계에서 편의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비슷하다. ‘너무 비싼 곳’. 어쩔 수 없을 때나 상품을 사러 가는 곳이 편의점이지, 처음부터 물건 사기 위해 편의점을 찾는 이들은 거의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40대 이상 분들에게 과거 편의점 인식을 물어보면 비슷한 반응일 것이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는 좋든 싫든 사람들을 침묵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침묵의 끝은 생존이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소위 말하는 ‘살 만한 물건’들이 있는 곳에 손길이 닿기에는 너무나도 비싸다. 눈을 낮춰 보다 저렴한 가격대를 사람들은 찾기 마련이다. 예전과 다르게 편의점은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고 품질도 좋아졌다. 당연히 사람들은 가까이에 있는 편의점을 찾게 된다. '편리함'이라는 사이클을 타는 순간 이 사이클은 점점 더 공고해진다.
오프라인 유통마켓들이 축소되는 현상 역시 편의점을 도와주고 있다. 이동하려면 차가 필요하다. 쇼핑을 끝낸 이들이 짐을 싣고 돌아오는 수단은 보통 자가용이다. 그러나 차를 몰고 나갔다 오기에는 무서운 것이 현실이다. 기름값은 가라앉지 않고 유지비용은 점점 더 높다. 그리고 많은 물건을 살 필요가 없어진 것이 현실이기에, 편의점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1인 가구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4인 가구도 마찬가지다. 덜 먹고사는 것을 권장하는 이 시대에, 많은 물품을 굳이 사러 나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경제적인 압박은 사람들로 하여금 편의점을 향하게 만든다. 편의점의 호황은 다시 말하면 한국 경제의 몰락을 상징하는 것이다. 가난해진 개인들이 의탁할 만한 유일한 수단은 이제 편의점 밖에 없는 셈이다.
이미 일본은 이 사이클을 거친 바 있다. 잃어버린 30년을 외치고 있는 일본에선 편의점 매대에 다양한 상품이 많은 것으로 유명했다. 아예 일본 편의점 상품만을 리뷰하는 블로거들이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왜 한국은 일본처럼 다양한 상품이 없을 까? 어릴 때는 이런 생각을 품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경제 하락의 지표인 셈이었다. 편의점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순간. 일본은 이미 그런 시절을 겪었다. 2024년 일본 편의점은 무너지고 있다. 오랜 기간 서민의 지지를 받아 활황기를 누렸지만 이제 그것도 사라졌다. 가난해진 일본 국민들에게 이제 편의점조차 사치가 된 것이다.
한국도 이제 일본과 마찬가지로 ‘잃어버린 XX’를 쓸 시점이 찾아온 것으로 보인다. 피크는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시기였던 2021-2022년으로 보인다. 성장 동력이 꺾이고 모든 지표에서 끔찍한 신호가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지금, 2024년을 ‘잃어버린 2년’이라고 평가해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