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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잰니 Jun 11. 2024

청춘 옮겨심기

내 청춘은 내내 옮겨심기 중

침대에 누워 눈 감생각한다. 스무 이후 가장 오랜 거처구나. 


왔다 갔다 어리둥절한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스무 살부터 홀로 움을 턴 대학교 기숙사 시절부터 직장인 8년 차까지 난 참 많은 곳에 살았다. 오래된 기숙사를 헐고 새 건물로 옮겨가는 바람에 기숙사만도 두 곳을 겪었으며, 학교 앞 자취방도 순전히 도보를 이용해 서너 군데를 옮겨 살았다. 직장 때문에 자리 잡은, 오늘날 이 집에는 자그마치 4년을 살았다. 만기를 가득 채워서.


최초의 목격은 호수였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바로 보이는 곳. 온통 초록이 가득한 그곳에서 자연과 인공을 넘나드는 풍경을 만끽했다. '이런 데 살면 참 좋겠다.' 친구와 거닐며 그런 대화를 했다. 기회가 되면 이곳에 살고 싶다고. 그땐 계획에도 없는 막연한 바람 같은 거였다. 그저 '좋다'의 상위 버전 감탄이랄까. 의도치 않게 직장의 이전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이 동네가 떠올랐다. 이걸 우연이라고 할 순 없겠지. 홀씨 같은 바람이 내 안 어딘가를 떠돌고 있었을 터. 버스 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원룸을 계약했다. 새싹이 하나 피었다.


회색빛. 이사 오고 나서의 첫 감상이었다. 빌딩은 산 채로 건져 올린 혹등고래처럼 을씨년스러웠다. 단정한 차림의 동네 주민들은 모두 검은 머리칼을 지녔다. 기타 맨은 없었고, 몸 구석구석에 구멍을 낸 사람도 없었다. 대신 고급 자전거를 끄는 부부 혹은 저녁 산책에 나선 단란한 가족이 있었다. 식당가에는 온갖 종류의 고기 이름을 내 건 상호가 즐비했다. 다양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당시 나에게 이 동네의 단일함은 공포로 다가왔다. 영영 속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여기가 얼마나 살기 좋은데!"


친구가 말했다. 평생을 그 동네 부근에서 살았던 친구였다. 그때에 나는 그 말을 정말로 믿고 싶었지만, '너는 여기에서만 살아봐서 그런 거잖아.' 하는 못된 생각이 들었다. 이전의 거처에서 나는 불행했지만, 동시에 낭만적이었다. 옮겨 온 나는 이제 불행하기만 했다. 낭만은 먼지와 함께 털려 나갔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고, 한동안은 꽤 무기력하게 지냈다.


열여섯 번의 계절을 겪어내고 다시 오늘. 나는 이곳과 작별 중이다. 토익 시험을 준비하느라 한 달 남짓 다녔던 독서실, 한 달에 두어 번씩은 배달해 먹었던 마라탕집, 친구와 무작정 만나 각자 할 일을 했던 프랜차이즈 카페, 기분내고 싶을 때 책을 읽거나 할 일을 정리하러 가곤 했던 개인 카페, 프랑스식으로 실내를 꾸미고 썬드라이 토마토가 들어간 샌드위치가 맛있는 빵집, 연인과 헤어짐을 고했던 공원 벤치, 뜨끈한 매트에 누우면 창밖으로 빌딩이 보였던 요가원, 드라마 선배에게 전화하곤 했던 은행 건물 뒤 골목 가로등, 멀리서 친구들이 놀러 오면 코스처럼 데려간 호수 앞 카페, 언제나 완벽한 스타일링을 해준 미용실...


필요한 건 언제나 바로 떠올릴 수 있었던, 익숙한 공간을 이젠 떠난다. 내일이면 이 모든 것을 알아가야 한다. 그건 몹시 불편하지만 신나는 일이다. 진정 원했던 일이기도 하고.


며칠 후.


나는 또다시 새로운 곳에 짐을 풀어두었다. 부모님이 세상에 날 처음 꺼내놨을 때와 동일하게, 부모님과 함께 새 집으로 왔고, 동네 골목을 탐험했다. 혼자인 순간은 한 번도 없었다. 전입신고 차 주민센터를 갈 때, 코인세탁소에서 빨랫감을 건조할 때에도 아빠와 함께였다. 오래되어 보이는 귀금속 가게에서 아빠의 시곗줄을 갈고, 단칸에 운영하는 동네 슈퍼에서 어머니와 함께 감자 세 알, 오이 하나, 호박 하나를 샀다. 크루아상 맛집이라는 빵집에서 아빠가 좋아하는 소시지 크루아상이 다 떨어져 아쉬워하고, 커피 맛은 좋지만 나프탈렌 냄새가 지독한 카페에 다시 오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개나 고양이가 아닌 소동물이 거리를 쏘다니고 있는 것도 함께 봤다.


어느 정도 혼자 살아나갈 수 있는 환경이 되자 부모님은 고향 집으로 떠났다. 그리고 다시 나는 익숙한 혼자가 되었다. 터미널에 부모님을 배웅해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함께 탐험했던 골목과 가게를 눈으로 좇으면서 다시 어색해져 버린 혼자라는 감각에 목이 아파왔지만 끝내 울지는 않았다. 이것이 인생이노라고. 그것도 대단히 운이 좋은. 앞으로는 이 여행을 혼자 해야 한다. 이 동네와 친해져야 할 사람은 나다. 그동안 지나온 모든 동네들에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까 나는 지금 옮겨심기 중이다.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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