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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잰니 Jun 01. 2016

수국, 해바라기 그리고 스타티스

위로를 주는 꽃들

      Mrs. Dalloway said she would buy the flowers herself.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의 첫 문장.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다.

이 문구를 처음 접한 건 역시나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에서였다.



클라리사 역의 메릴 스트립 - 디 아워스(The Hours. 2002)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영화 소개를 잠깐 하자면, 빌리 엘리어트, 더 리더 등을 연출한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로, 영화제 최다 노미네이트 기록을 가진 메릴 스트립, 우아하면서도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매력의 줄리안 무어, 내 사랑 나의 사랑 니콜 키드먼이 모두 출연하는, 그야말로 연기력 구멍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작품 되시겠다.




영화에서 '꽃을 사는 댈러웨이 부인'은 하나의 장치다. 


세 여인이 모두 그 구절로 이어져 있다. 버지니아 울프 역의 니콜 키드먼은 직접 그 구절을 쓰고, 줄리안 무어는 그 구절을 책에서 읽으며, 메릴 스트립은 진짜 꽃을 사는 댈러웨이 부인이 된다. 그것뿐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거라곤 그게 다였다. 하지만 이 영화가 주는 알 수 없는 여운에 인터넷 서핑을 즐기다 영화 리뷰와 버지니아 울프의 삶, 문학사적 가치 등을 알게 됐다.



댈러웨이 부인이 직접 꽃을 사는 행위는

 일종의 '여성 해방'을 상징한다. 


너무 과한 의미 부여일까. 남자로부터 주로 받기만 하던 꽃을, 스스로, 본인을 위해 사는 것. 

이는 한 개체로서의 독립을 뜻한다. 여성의 행복은 남성에게 달려 있다는 낡은 관념이 부서졌다. 

남성에 대한 의존이 너무나 커, 남성 없이 살 수 없었던 여성이 달라졌다.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것. 

간단하지만 여태껏 쉽게 쟁취할 수 없었던 혹은 아직도 쉽게 쟁취할 수 없는 권리다. 

그리 수려한 표현은 아니지만, 그 함의 하나만으로 참 멋진 문장이 아닐 수 없다.




나도 꽃을 샀다. 

댈러웨이 부인처럼, 나를 위해. 


자줏빛이 곱게 물든 드라이플라워. 몇 달 동안 재활용 병 신세였던 '꽃병'에 꽂아 공부하는 책상 위에 올려뒀다. 벌써 네 번째 손님이다. 종종 꽃을 사 왔다. 꽃을 참 좋아하시는 엄마를 닮아서일까. 좌우 안 보고, 목적지만을 향해 걷는 내가, 꽃집 앞은 좀처럼 그냥 지나갈 수 없다. 어떤 꽃이 들어왔나 보면서 꽃이 나오는 철도 알고, 아름다운 빛깔에 유희도 느낄 수 있다. 일상에서 꽃은 그렇게 눈요기로 소비한다. 



가끔 꽃을 사는 순간이 있다. 

스스로, 조금은 더 성실한 삶을 살길 바랄 때. 


일종의 유인책이다. '책상 앞에 앉아 공부 좀 해라!' 같은. 썰렁하고 어두컴컴한 고시반은 참 가기 싫은 공간이다. 누가 믿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꽃을 두면, 그를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다닐 적, 좋아하던 남자애를 볼 때 마냥, 할금할금 꽃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게 되니까.  

벌써 3개월의 방황이다. 나름의 생활 스케줄 안에서 지내고 있지만, 방황하고 있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도, 마음 붙일 곳이 없다. 스터디를 새로 구할까, 오전 알바를 다닐까 고민하다, 결국 꽃집에 들렀다. 




놀랍게도 냉정, 무정, 거만, 바람둥이의 꽃말을 가진 여름 꽃의 여왕, 수국


화사한 수국은 몸 값이 비쌌다. 


그래서인지, 요구하는 환경도 귀족적이다. 못 해도 베란다에서 키워야 한단다. 베란다라니! 

내겐 다섯 번 구르면 이 쪽 벽에서 저 쪽 벽까지 닿는 좁은 원룸과 닭장 같은 고시반 자리 하나밖에 없다.

눈길을 돌렸다. 이름 모를 꽃들이 많았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고궁뿐 아니라 꽃에 대해서도 공부해보고 싶다. 

좋아하는 것은 더 알고 싶어지는 법이니까. 


지난달, 캐나다에서 1년 반 만에 돌아온 오랜 친구에게 선물한 드라이플라워에 시선이 꽂혔다. 

안개꽃보다 예쁜 종류가 있었는데, 지금 찾아보니 '스타티스'라고 한다. 안개꽃보다 꽃 모양이 잘 살아있다. 내가 산 스타티스는 분홍에서 자줏빛이 감돈다. 

친구에게 선물한 보라색이 더 예뻤다면, 남의 떡이 더 커 보여서일까.




예전에 내 꽃병을 채워줬던 꽃잎들은 참 곱고 부드러웠다. 

매일 아침 물 갈아주고, 조금씩 잎을 펼치는 모습에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 



태양의 꽃, 해바라기. 페루의 국화이기도 하다.


'해바라기가 피는 것처럼, 나도 활짝 피었으면 좋겠다.'
 

매일 속으로 되뇠다. 

해바라기는 꽤 오래 버텨주다 이내 시들어버렸다. 꺼슬꺼슬하고 메말라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 구겨진 해바라기를 쓰레기통에 버릴 때, 내 꿈도 함께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어쩌면 드라이플라워가 

내게 어울리는 꽃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시들대로 시들어버린 작고 소박한 꽃. 영원하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존재를 지켜내는 꽃. 

인위적으로 주입한 색깔,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불안함. 이런 것들이 드라이플라워를 선호하지 않게 만들어왔지만, 글쎄, 이제야 내 책상 위에 올려두기 알맞은 꽃을 찾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해서, 지금 내 책상 위에는 자줏빛 스타티스가 꽃병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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