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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잰니 Sep 05. 2017

거짓말쟁이, 은희

누가 우리를 내몰았는가 - 영화 '최악의 하루'와 '더 테이블'

은희는 거짓말을 한다.

영화 '최악의 하루'에서도 영화 '더 테이블'에서도.

 은희는 거짓말을 곧잘 한다. 능청스럽게, 그것이 정말 진실인양.

어쩌면 자기 자신조차 속일지 모른다. "사실 다 솔직했는걸요." 

그땐 그것조차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연극에 빠져봤자 결국 타인에겐 흔한 거짓일 뿐이라고.

진심이라곤 없는.


1년이란 시간 흐르고.

어떤 거짓말은 진실보다 더 진실에 가까울 수 있음을 알았다.

우리는 모두 편견에 빠져 산다. '어쩔 수 없이'라고 적었다 지웠다. 어쩔 수 없는 건 없다.

그건 자기변명에 불과하니까. 기울어진 시각으로는 진실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런 이들에 맞춰 조금은 진실에서 벗어난 시각으로 말해준들, 크게 문제가 될까.


감사해졌다. 그동안 나는 진실하게 살아온 것이 아니라, 진실이 가능한 처지였던 것뿐이구나.

당연하게 여겨온 것이 사실은 큰 특혜였다는 점.

어떤 사람들에겐 거짓말이 당연하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든, 타인을 지키기 위해서든.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려면, 자기 연극에 빠질 수밖에 없다. 물론 혹자는 용기를 내겠지. 쉽지 않은 일이다. 응당 그래야한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요즘은 계속 '거짓말'에 빠져 있다.

진실을 내비칠 용기 없는 비겁자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왔지만, 더 이상 그러지 않으려 한다.  

그것 또한 자신의 진심을 전하려 한 진실이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그런 점에서 영화 '더 테이블'의 은희 씬이 좋았다.

숙희는 계속해서 "크게 물었나 봐요", "돈 나올 구석이 있어요?" 묻지만,

은희는 명확히 대답하지 않고 빙빙 돌릴 뿐이다. 결국 거짓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녀에게 진심을 전하는 방법,

혹은 행복해지는 방법 역시 '거짓'일 수밖에는 없었다. 그게 슬펐다.


숙희 역시 거짓말쟁이다.

거짓 연극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돈을 받는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진심이 없는 건 아니다.

 은희를 보며 자신의 죽은 딸을 떠올리고, 진짜 누군가의 '어머니'로서 존재했던 순간 입었던 옷을 꺼내 입겠다 선언한다. 거짓말로 점철된 그들의 대화가 사실은 진심 투성이었음을. 알게 될 때 관객은 괜히 찡해지고 만다.


속이고 싶어서 속인 게 아닐 거다.

거짓말은 당하는 사람도 기분 나쁘지만, 하는 사람은 더욱 골치 아프고 여기저기 콕콕 쑤신다.

진짜의 나를 숨기는 일이니까.

그건 영화 '최악의 하루'만 봐도 안다. 그러니 그들을 욕하기 전에,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음을 알아주면 안 될까. 내가 갖고 있는 혹은 사회가 갖고 있는 가난에 대한 편견, 불안정한 가정에 대한 편견, 특정 성 정체성과 취향에 대한 편견 등이 솔직할 수 없도록 내몰았다고. 아주 조금. 이해하면 안 될까.



주. 어휘 사용 습관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그들'이라 써왔다. 이 역시 타자화다. 해서 '우리'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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