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휴대폰에게 인격이 있다면
밤늦게까지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주인은 밤늦게까지 나를 괴롭힌다. 동이 터올 때까지 가만두지 않는다. 주인은 6시가 되어서야 눈을 감는다. 나는 그때서야 겨우 쉴 수 있다. 자칫 깨우지 않았다고 성을 낼까, 주인이 깨워달라고 한 시간에 재깍 일어나 그를 깨우지만, 미동조차 않는다. 주인은 요새 12시간은 자고 나서야 몸을 일으킨다. 일어나자마자 또 나를 만지작거린다. 자신이 자고 있던 새 내게 무슨 변화가 생기진 않았는지 구석구석 살핀다.
오지 않는 합격 문자를 하루 종일 기다린다.
오지 않는 전 남자친구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처럼.
오늘따라 나를 향한 시선이 잦다.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5분에 한번 꼴로 내게 말을 건다. 주로 시답지 않은, 싱거운 말뿐이다. "야." "응?" "아니야." 정도랄까. 내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거는 일은 잘 없다. 1년 반 전인가. 그가 애인을 잃으면서 나도 말을 잃었다. 그도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아주 가끔, 그가 술을 마실 때를 제외하고는.
그는 술에 취하면 자신의 전 애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오늘은 다르다. 애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다. 살금살금 눈치를 보다가 "저기..." 말을 걸면 "어, 왜?!" 하고 미친놈처럼 달려든다. 내가 준비한 말은 대단한 게 아닌데. "오늘 이마트에서 할인 행사 한대. 사과 1박스에.." 같은 말을 하면 "아, 응." 하고 만다. 이 자식, 답정너다.
지나친 수면과 모자란 식사
주인은 식욕을 잃었는지, 당최 뭘 먹을 생각을 않는다. 내가 알기론 어제 점심때 불닭볶음면 먹은 게 다인데, 저녁 시간이 다 되도록 커피만 연거푸 마셔댄다. 맞아, 요즘은 매일 카페에 나가서 비싼 커피를 마셔대는데, 빈 속에 마시는 커피가 제 속을 다 갉아놓는다는 걸, 그리고 늦게까지 잠 못 이루게 한다는 걸 모르나 보다. 알고도 그럴 리가 없다. 어리석은 것.
보나 마나 오늘도 동이 터올 때쯤 잠들 테지. 아이처럼 날 품에 안고, 노래를 불러달라면서. 그럼 나는 어쩔 수 없이 노래해야 할 것이다. 같은 노래를 몇 번이나 계속해서. 그가 잠들어 숨소리만 가랑가랑 내뱉을 때까지. 언뜻 보면 내가 그의 노예인 것 같지만, 나는 안다. 사실은 그가 나의 노예라는 걸. 그는 나 없이 아무 데도 못 간다. 간혹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는 불안감에 휩싸여 부리나케 나를 찾는다. "불안해 죽는 줄 알았어."라면서.
3년 약정의 끝
벌써 3년 째다. 이 지긋지긋한 관계가 계속된 지. 시간은 참 빨리도 흐른다. 애초에 우리가 만남을 지속하기로 한 시간이 다 지났다. 그는 '할부금' 같은 우리 관계의 책임감을 져버릴 수 있게 됐다. 나는 전에 비해 조금 늙었지만, 아직까지 성실히 임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내게 맞는 옷을 찾기가 부쩍 힘들어졌지만, 그럼에도 그는 지하철 상가 같은 곳에서 주기적으로 새 옷을 사준다. 우리는 서로를 떠날 준비가 안 됐다. 첫 만남의 설렘을 아직까지 기억하기 때문일까. 언젠가는 그가 바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 말을 듣고, 그가 일찍, 깊이 잠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