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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잰니 Jun 26. 2022

소설을 써라, 소설을 써!

그래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두 달쯤이면 괜찮아진다더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요 며칠 상태가 좋았다, 좋지 않았다를 반복했다. 분명 감정이 전부 회수되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헤어짐은 축복'이라는 문구를 가슴에 새겼다. 꿈도 여러 번 꿨다. 사상 최악으로 졸렬한 캐릭터로 두어 번 나왔다. 그 후엔 평소 별 생각도 없던 연예인들이 누차 나와 로맨틱한 대사를 퍼부었다. 드라마 보고 설레서 쿠션을 마구 치기도 했다. 아, 이젠 정말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겠구나,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나 지금이 진짜 더할 나위 없이 좋아. 그래서 연애도 별로 안 하고 싶어. 지금은 그냥 나한테만 집중해서 보내고 싶어."


이런 말들로 친구들의 칭찬 세례를 받기도 했는데! 왜 새벽 1시 반에 그와 헤어진 공원에서 혼자 울고 앉아 있냐고!




사실 이유는 자명하다. 너무 많은 곳에 그를 끌여들였고, 그의 일상에 내가 너무 빠져들어 있었다.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여겨서 무방비하게 다녔다. 우리의 흔적이 가득한 곳들. 붉은 실로 연결된 대만 사랑 이야기를 본 영화관, 아침 출근길 발견해서 다음에 먹으러 가자고 말했던 젤라토 가게, 두 번째 만남에 갔던 피자집 골목... 분명 하루하루는 괜찮았는데, 독처럼 쌓여서 터지고 말았다.


"걔는 어떻게 지낼까, 괜찮으려나?"

한 번 본 적도 없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그의 안부를 묻는 엄마. 내가 어떻게 알아?! 워낙에 잘나신 분이니까 알아서 잘 지내시겠지. 매몰차게 대답했지만, 엄마가 질문하기 한참 전부터 멘털이 터지진 않았을지 걱정하던 나였다. 힘들 때 함께 있어주고 싶은데. 뭐, 안 힘들 수도 있지만.


그날은 오후 다섯 시 반부터 자정까지. 아주 신나게 놀았다. 근 1,2년 동안 없던 역대급 텐션으로 3차까지 이어진 술자리를 거쳐 귀가하는 길이었다. 전혀 다른 캐릭터의 두 사람과 연이어 통화하고, 각자 어느 날 어디서 만나자 얘기를 끝내 놓고. 그냥 스쳐 지나가면 됐는데, 공원을 본 순간 지나칠 수 없었다. 그와 내가 앉았던 벤치에 가 홀로 앉았다. 사람은 아무도 다니지 않았다. 나는 그가 앉았던 빈자리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눈물이 고였다. 다 끝났는데 왜 이 감정들엔 끝이 보이지 않는 걸까.


드라마였다면? 그는 마찬가지로 상심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취했을 거다. 미친 사람인 척, 택시를 타고 그 공원에 내려달라고 말했겠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냥 잠시만 앉아있다 오자고 생각하면서. 모자에 후드 티를 대충 뒤집어쓴 그는 터덜터덜 걷다 길 끝에서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한 여자를 만날 거다. 그들은 인사도 하기 전에 어이없는 웃음이 터질 거고, 동시에 꺼낸 "잘 지냈어?"라는 뻔한 대사에 다시 한번 웃음이 터지겠지.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고, 나는 혼자 공원에 앉아 있다 가는 흔한 취객 1로 그날을 마무리했다. 드라마가 나빴어. 나는 왜 그런 드라마를 많이 봐서. 그런 바보 같은 우연을, 운명적인 장면을 상상하나.




"너 같은 사람이 소설을 써야 해."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말했다. 스치듯 말했을 뿐인데 친구는 감지했던 것 같다. 내가 아직도 감정을 삼켜내고 있다는 걸. 본인은 이별이 쉬운 사람이라며. 이렇게 메마른 사람이 쓴 글을 누가 읽고 싶어 하겠냐고, 너처럼 감정이 넘치는 사람이 쓰는 글을 보고 싶어 할 거야. 그 말은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뭐 하나 어려운 게 있으면 수월하게 얻는 것도 좀 있어야지.


그래서 요즘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에 이천 자 정도. 쓰자고 다짐은 했지만 쉽지는 않다. 소설의 배경은 현대고, 따로 메시지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다. 평범한 로맨스를 담고 싶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내 소설의 주인공들은 '우연'에 기대지 않길.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사랑을 얻어내길. 노력이 만든 운명을 쟁취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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