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에서 비는 소원, 남해 보리암
해는 매일 뜨니까
아주 오래전, 누군가 내게 보리암에 가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그때 보리암이 어딘지 찾아보고는 남해까지 가서 소원을 빌면 나라도 이뤄주겠다, 하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그 말을 잊고 살던 어느 날, 소원이 간절해지는 순간이 왔다. 삶이 점차 힘들어졌고, 슬퍼졌다.
왜 인간은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더 큰 힘을 빌리고 싶어지는 걸까.
당장 어디론가 가서 소원을 빌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아서 서울에서 멀고도 먼 남해 보리암까지 굳이 굳이 찾아갔다.
남해 보리암은 일출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부처님을 뵈러 왔기에, 매일 뜨는 해는 언제 뜨든 상관이 없었다. 이런 내 맘을 알기라도 하는 듯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살다 보면 세상에 내 편이 아무도 없다고 느껴지는 때가 있다. 사람한테 기댄다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알면서도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사람의 마음에 모든 것을 기대고, 사랑하고, 버틴다. 그리고 그 끝엔 꼭 상처를 받곤 한다.
하지만 절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부처님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 믿는다. 수시로 변하는 사람보다 언제든 그 자리에 머무는 불상에 마음을 기대는 게 더 나을 때가 있다.
새벽 보리암에 가는 길은 플래시를 켜야 할 정도로 어두웠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걸으며 무슨 소원을 빌지 재빨리 정리했다. 점점 해가 떠오르고 세상이 밝아지자 절이 한눈에 들어왔다. 큰 절에 비해 에게, 싶을 정도로 작은 절이었다.
정말이지 웃긴 사실은 그토록 힘들어서 간절히 소원을 빌러 가놓고 돌아온 지금,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이렇게나 간사하다.
나는 또 어떤 일로 절을 찾고 소원을 빌게 될까, 어떤 마음으로 부처님을 간절히 찾게 될까.
부디 너무 힘든 일은 아니었으면, 이렇게 지나고 보면 다 잊히는 일이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