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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Mar 10. 2023

호구선생님 6

교권보호위원회를 마치며..

담당교사는 학생과 학부모의 진술이 마무리되면 나에게 연락을 하겠다고, 보건실에서 조금만 기다려 주시라고 안내를 해주고는 바삐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안했다.  

교권보호위원회에 모인 교사위원이나, 학부모위원들의 시간을 내가 뺏는 것 같아서.. 특히 교사위원들은 오늘 방학식 날인데 나 때문에 잔뜩 쌓인 서류뭉치를 보며 어떤 결론을 내리고, 어떻게 보고서를 써야 하나 고심고심 하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더욱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  교감선생님은 상처받은 나를 위로하느라 계속 전화해 주고, 톡을 보내주셨는데 혹시나 "학생에 대한 조치 없음" 같은 결과가 나왔을 때 그 결과를 나에게 전달해 주기까지 얼마나 마음이 안 좋으실까를 생각하니 또 마음이 안 좋다. 


드디어 학생과 학부모의 진술이 끝나고 내 차례가 왔다.

한 곳에 있는 상태에서 내가 진술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진술을 마치고 귀가한 후였다. 아직 그 학생을 마주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기에 한 공간에 없다는 것이 확인되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내가 받았던 정신적인 충격과, 앞으로 보건실 진료를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나의 혼란스러운 마음들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단죄보다 용서가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믿었던 내 교육적 신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정말 찬찬히 얘기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따뜻한 선생님이고 싶었는데, 지금은 너무나도 차갑게 학생과 학부모를 교권보호위원회에 앉히고 있는 내 모습이 힘들다는 감정이 먼저 들어서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스스로 차갑게 느껴지는 내 모습을 변호라도 하듯 이 사안 자체가 '용서'를 떠올릴 사안이 아니라, 교육적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는 얘기를 열심히 했다.  교권보호위원회에 학생과 학부모를 앉히는 그 과정자체로도 학생 스스로가 자신이 한 잘못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 학부모위원이 지금의 나의 마음 상태에 대해 물어오셨다.

내 마음 중에서 가장 힘든 것은 학생들에 대한 배신감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사건 이후로 따뜻하게 대하고 싶었던 나의 마음이 처참히 짓밟혔다고 느껴졌고, 아프다고 얘기하고 있는 학생들이 수업이나 땡땡이치려고 혹은 보건실 확인증이나 받으려고 온건 아닌지 의심부터 들어서 힘들다. 

몸이 아픈 아이들보다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훨씬 더 보건실을 많이 찾았기에, 공감하고 위로해 주는 나의 마음이 너무나 필요한 자리인데, 지금은 그런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아서 또 힘들다. 


'학생에 대한 조치 없음'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허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학생이 끝까지 발뺌을 했고, 둘 밖에 없었던 한 공간이긴 했지만 커튼으로 분리가 되어 있었기에 혹여 스스로 배출행위를 했더라도 성희롱도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법률자문위원의 의견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였다. 

내가 원하던 결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사건을 피하지 않고, 절차를 잘 밞아서 객관적으로 마무리가 되었기에 후련한 마음이 컸다.  나는 나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다시 예전으로 잘 돌아갈 수 있겠다는 의지도 생겼다. 

또 앞으로의 나의 교직생활에 대한 태도도 어느 정도 다시 또렷해졌다. 그 학생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일반화해서 다른 학생들에게 까지 의심을 품거나 차갑게 대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나는 예전의 나로, 친절한 보건샘으로, 이름 외워서 불러주는 따뜻한 보건샘으로 살아야 스스로 행복할 것 같다. 다만 융통성이라고 포장했던 흐리멍덩한 보건실 규정은 잘 정비를 해서 친절하지만 단호한, 강단 있는 샘으로 거듭나고 싶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들은 언제든 일어난다. 

그러나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결하는지는 오로지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상황과 사람들과 스스로를 원망하면서 시간을 보내버린다면, 그 일은 그대로 내가 원하지 않는 나쁜 일로 남게 될 테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가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내 마음과 선택들을 다듬어 나간다면, 한 층 나아진 나 자신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어느 순간 바뀌어 있을 것이다. 


인생은 역시나 새옹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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