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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Feb 26. 2024

술과 러닝

둘 중에 꼭 택해야 하는겁니까ㅜㅜ

한강 10km를 다시 뛰었다.

며칠간 송별회와 회식으로 음주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체력도 떨어져 있었고 배도 볼록하게 나와있었다.

뛰고 싶은데 술은 안 마실수가 없고, 밥도 줄일 수가 없는 나를 보고 있자니 참.. 욕심이 많다.


뛰고 싶으면 술을 참던가, 밥을 줄이던가 해야 하는데

술도 먹고 싶고, 밥도 먹고 싶고, 떡볶이도 먹고 싶은데 또 뛰기도 잘 뛰고 싶으니

무언가 하나 포기를 해야 하는 게 맞겠지?


두툼해진 뱃살과 잔뜩 무거워진 다리를 보니 며칠간의 화려한 섭식이 후회로 밀려오면서

네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자괴감과 함께 이번주 계획했던  한강 10km는 자연스레

다음 주로 미뤄버리려고 했었다.





"회사에 차 가지러 가려고 하는데 같이 뛰어서 갔다가 올 땐 차 갖고 올까?"

남편이 툭 내뱉은 제안에 잠시의 갈등이 밀려왔지만

중간에 걸을지언정 조금이라도 뛰어야 다운된 기분이 회복될 것 같아서

주섬주섬 챙겨서 덕은지구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DMC자이더 헤리티지'에서 내려서 조금만 걸으니 한강으로 바로 가는 예쁜 육교가 있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조금만 걸어 나오면 바로 한강이라니 아주 부러운 동네다.

여하튼 덕은지구부터 뛰기 시작해서 가양대교를 지나 남편 회사가 있는 여의도까지

뛰어서 10km를 가는 계획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달리기를 하는 순간은 사실 그렇게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정말로! 너무나! 미친 듯이 힘들다.

특히 시작 후 3km 정도까진  

 "아.. 오늘은 중간에 포기하겠구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면서 숨이 차고 다리가 무겁다.

그런데 고비를 넘기고 나면 4km 정도부턴

"어? 뛸만한데"로 생각이 바뀌면서 그냥 뛰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가 다시 7km 정도부턴  

"아니야... 오늘은 안될 것 같아. 너무 심하게 힘든데... 그냥 걸을까?"

'러너정은' VS '걷는 정은'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된다.

그때 나를 다시 뛰게 하는 건 역시나 맥주다.

10km를 뛰고 나서 마시는 맥주를 상상하니

잔뜩 쪼그라든 나의 폐에 신선한 산소가 무한공급되는 것 같다.


또 페이스 조절을 하면서 심호흡을 하면, 손끝까지 전해지는 전율도 힘든 러닝을 완주하게 하는 힘이다.

러닝 하면서 흥분한 교감신경을 부교감신경이 진정시켜 주면 두 자율신경의 급격한 교차로 오는 일종의

'러너하이'가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맥주! 맥주! 부교감! 부교감! 심호흡! 호흡조절!

시계 보지 마! 페이스 보지 마! 느려도 괜찮아! 뛰기만 해!

맥주! 맥주! 끝내고 맥주! 포기하면 먹어! 맥주! 맥주!"


부끄럽지만 10km 러닝을 하는 한 시간 남짓 한 시간 동안 내가 계속 되뇌는 말들이다.

거의 맥주 찬양가를 부르면서 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맥주 찬양가를 부르며 겨우겨우 10km 러닝을 마치고 난 후의 그 성취감은

임용고시 준비생 시절 그날 공부해야 할 분량을 채웠을 때 오는 뿌듯함과 비슷하게

내 자존감을 뿜뿜 상승시켜 준다.




하지만 러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와의 치열한 한 싸움은 다시 시작된다.

비록 맥주찬양가 덕분에 완주를 했지만 좀 더 건강한 내가 되기 위해

집에 가서 건강식으로 마무리를 것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나를 위한 최고의 선물로 "애프터 러닝 비어"를

쏟아부어줄 것인가?




나는 아직 멀었다.

운동 후 마시는 맥주를 도저히 피할 재간이 없다. (마음이 없는 거겠지..--;;)

'그냥 마시는 거 아니고 운동 후 마시는 거야, 그냥 맥주만 마시는 보단 낫지

그래도 안주는 고단백으로 닭갈비를 골랐네..'

예전에 필라테스 다닐 때 이상하게 살이 더 쪘었는데..

러닝도 왠지 비슷한 루트를 타는 것 같은 느낌이긴 하다.


술도 안 먹고 러닝도 잘하면 최고겠지만

너무 무리한 목표는 언제나 나를 먼저 포기하게 만들었어.

술도 적당히 마시고 러닝도 그럭저럭 하는 것으로 허들을 낮게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겠어.


이상..

맥주마니아 초보러너의 변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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