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흔들리면 모두가 불안해진다.
1교시 종이 울린 직후였다.
보건실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숨을 헐떡이며 1학년 담임이 들어오며 소리쳤다.
“학생이… 화장실에 쓰러져 있어요.”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지만 손은 이미 구급낭을 어깨에 메고 휠체어를 끌고 복도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119를 부르면서 올라가야 하나? 머릿속으로 잠시 고민하는 사이 ‘의식은 있어요’라는 담임의 말이 뒤따랐다.
그래! 일단 올라가서 상태 확인부터 해보자.
‘쓰러졌다는 건 어느 정도 상황일까?’ ‘저혈당? 실신? 공황? 자해? 혹시 더 심각한 상황?’
몸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수십 가지 시뮬레이션으로 분주했다.
화장실 앞에 도착했을 때, 여학생은 문을 잠근 채 안에 있었다.
“혼자 있게 해주세요.”
여학생의 목소리가 안쪽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 말이 더욱 불안하게 들렸다.
문틈 아래로는 신발이 벗겨져 있었고, 흰양말을 신은 발은 축 늘어져 있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금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기다려줘야 하나, 강제로라도 확인해야 하나?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확신이 들어, 옆 칸으로 들어가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변기에 올라섰다.
학생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다.
그리고 그 아이를 조심스레 살펴 보았다.
학생은 변기를 옆에 두고 바닥에 누워서 후드티를 머리 끝까지 덮어쓴 채 몸이 축 쳐져 있다.
다행히 학생은 약간의 움직임도 있었고, 배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숨도 쉬고 있었다.
다시 화장실 문앞에서 “문 열 수 있겠니?”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부드럽게 말했다.
여학생은 잠시 후 스스로 문을 열었고, 나는 축쳐진 아이를 담임과 함께 부축하고 휠체어에 태워 보건실로 이동했다. 혹여 다른 학생들이 볼까봐 학생이 처음에 했던 대로 후드티로 얼굴까지 가려주었다.
보건실에 도착해 확인한 아이의 상태는 혈압이 약간 낮은 것을 제외하고는 산소포화도도, 의식도 정상 범위였다. 하지만 손끝이 차가웠고, 힘이 없었다. 나는 포도당과 따뜻한 물을 건넸고, 산소를 호흡하게 하며 상태를 조금씩 안정시켰다.
그 사이, 담임은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었고 나는 혹시 모를 응급 상황을 대비해 다리를 높이고 상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학기초 건강상태조사서에도 아이의 기저질환이 전혀 적혀있지 않았기에 119를 부르는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학부모와 통화하는 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 아이는 최근 뇌전증 진단을 받았고, 발작하는 모습을 들키는 게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근 채 혼자 화장실에서 경련을 한 것이었다.
아이가 경련 사실이 학교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서 학부모도 담임에게까지도 비밀로 했던 것이다.
혼자 경련을 한 후 다행히 의식은 돌아왔지만, 하마터면 경련하면서 크게 다칠 수도 있었던 위험한 상황이었다는 걸 알게되니 학생을 발견했을 때보다 더 긴장이 되는 것 같았다.
학생은 이내 안정이 되고 잠이 들었지만 좀처럼 나의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응급 가능성에 대비하며 계속 관찰하는 중에 학생 어머니가 오셨고, 학생을 가정에서 쉬도록 무사히 인계한 후에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보건실은 내가 가장 익숙한 공간이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선택이 쏟아지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나는 의료인으로, 교사로, 어른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역할의 이름은 결국 ‘책임’이라는 말로 수렴된다.
학교에서 단 한 명뿐인 의료인이라는 사실은, 매일같이 나를 긴장시키고,
특히 예고 없이 찾아오는 긴박한 순간에는 그 책임감이 압박감이 되어 어깨를 짓누른다.
혼자 판단하고, 혼자 움직이고,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현실은 나를 가끔 외롭게도, 두렵게도 만든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내가 흔들리지 않고, 눈앞의 아이를 바라보며 차근차근 조치하고 그 아이가 천천히 안정을 되찾는 모습을 마주할 때 나는 깨닫는다.
내가 우왕좌왕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면 아이도, 나도, 모두 더 깊은 불안에 빠졌을 것이라는 걸.
책임감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나를 짓누르는 쇠사슬이 아니라, 지탱해주는 척추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다시 웃으며 수업에 들어가고, 급식실 앞에서 친구들과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면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한다.
더 공부해야겠다. 더 정확히 알아야겠다. 더 침착하게, 흔들림 없이 있어야겠다.
그 아이의 생명을, 그리고 일상이라는 평온을 조금이라도 더 잘 지켜낼 수 있도록.
오늘도 나는 ‘책임감’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되새기며, 그 무게에 깔리지 않고, 그 무게에 의해 일어선다.